To Øl City - 크래프트의 의미

To Øl City - 크래프트의 의미

한국에 대동강 맥주를 위탁생산하고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진 투올은 북유럽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아무래도 동일하게 집시로 시작한 브루어리중에는 미켈러가 세계 더 넓은 곳으로 뻗어나간다고 느껴지지만, 반대로 말해서 미켈러는 서울에서도 구색이나마 만날 수 있고 심지어는 공항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배웅하러 나오는 수준이므로 무언가 관광 상품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미켈러의 모든 맥주가 나쁜 건 아니지만, 분명 미켈러가 유명한 이유와 당장 마시게 되는 미켈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품질과 다양성,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크래프트 맥주는 애호가들을 위한 전문점의 선반 위에서 경쟁하기 위한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제품군 내에서는 사용하는 원료부터 공정까지 비스무리해 수평 비교가 무의미할 때가 있는 반면, 제품군 간에는 지향하는 바가 너무나 달라 비교가 무의미해지는 것이 크래프트 맥주다. 스타우트 계통이나 몇몇 사워 맥주와 같이 기호품이나 수집품의 반열에 오른 것도 있지만, 크래프트 맥주도 결국 맥주의 본질을 회피할 수는 없다. 맥주는 끊임없이 소비되어야 하는 일상의 동반자다. 매번 무게를 잡고 긴장하며 맛보기 보다는 뜨거운 태양 아래 들이키는 쾌감이 어울릴 때도 있는 물건이다. 누군가는 맥주에 대한 편견이라고 하겠지만, 가격과 접근성, 그리고 우리가 그간 향유해온 문화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굳이 덴마크에서는 미켈러보다 투올을 찾아가고 싶었고, 간다면 코펜하겐 복판에 있는 브루펍이 아닌 본진을 직접 찾아가고 싶었다. 그게 크래프트 맥주 운동의 핵심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크래프트 맥주란 애호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웃돈을 주고 거래되는 맥주도 아니요, 평가 사이트에서 최고 점수를 획득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크래프트 맥주는 무엇보다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단순한 음료를 넘어선 공동체의 상징이자 자랑이 되는 것이 크래프트의 꿈이며, 지금까지도 몇몇 상징적인 브루어리들이 그 맥주를 바깥으로 유통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물론 품질 문제도 겹치지만).

그래서 Svinninge라는 세상에 갈 일 없는 한적한 마을까지 집념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오늘 글을 통해 그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 다시 한 번 걸어보려고 한다.

역에서 가까운 곳에 묵었다가 빠른 기차를 타고 떠날 예정이었으므로, 전날에는 코펜하겐 로얄 호텔에서 밤을 지샜다. 침대보다 의자가 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무래도 물욕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면 빈속에 맥주만 채워넣을 생각이므로 먼저 위장에 기름을 좀 바르고 기차를 타러 나선다.

투올 시티로 가는 길은 기차로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거리도 거리지만 결코 빠르지 않다. 스웨덴~덴마크에서 계속 시차를 타고 다니며 가장 많이 본 풍경 중 하나가 이런 장면이다. 풀을 뜯는 말과 소, 가끔은 그들을 지키는 개도!

내리고 나면 황량한 풍경이 맞아주지만...

가는 길은 더욱 고요하다. 맥주를 마실 것이기 때문에 운전은 불가하고, 택시가 쉽게 잡히는 동네도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거리(기억하기로는 약 2km 이상)를 걸어주어야 한다. 주말에는 대부분의 가게가 닫기 때문에 한층 더 고요하다.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면

횡단보도를 보았을 때 쯔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 앞 뒤의 일행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술꾼들이라는 것도.

오솔길로 들어서면 이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지만, 애석하게도 바로 입구에 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내를 따라 다시 걷다보면

족히 30분은 걸었을 즈음 제대로 된 입구를 마주하게 된다.

여정을 지루하지 않게 도와준 사나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들어서면 이 거대하고 투박한 공간이 곧 낙원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실감할 수 없는 느낌이다.

계산대 앞의 전경. 좌측 냉장고 뒤에는 숙성 중인 캐스크로 가득하다.

이렇게 맥주를 고르고 나면...

햇살과 이웃의 따스함을 안주 삼아 시간을 보낸다.

소나기 내릴 때에는 잠시 안으로 피해도 좋고,

감자와 함께 유이한 안주거리인 아이스크림도 빼놓을 수 없다. 참고로 이것마저 비스무리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인데 솔직히 맥주에 비해 맛은 평범하지만, 어울리는 맥주를 추천해주기 때문에 거짓말처럼 만족하게 된다.

덴마크 크래프트 맥주의 영혼을 보여주고 있었던 포스터. 브루어리는 록을 좋아하는 수염 기른 아저씨들의 천국이다. (추신: Brand New의 The Devil And God Are Raging Inside Me 앨범 자켓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의 'Not The Sun'을 즐겨 듣는다)

내부의 캐그를 구경하자면 이런 느낌.

꿈같은 시간을 마치고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오는 열차 시간이 걱정될 무렵이면...

잘 있어라, 스비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