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소주" 본격 비교 시음

몇 년 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유력 언론사의 문화란을 장식한 소주가 있었다. 그 이름하야 토끼. 미국의 증류소에서 일 년 하고도 반 정도의 경력을 가진 젊은 서양 백인이 한식의 매력에 푹 빠지고 보니 소주가 마땅한 게 없어 직접 증류하기로 했다는 스토리가 돋보인다.

그 토끼 소주가 충청도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전통주의 세제 혜택을 위함이리라. 국내에서 발행부수로 가장 앞서는 일간지에 앞다투어 소개된 만큼 발매와 동시에 아주 편한 유통 루트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화이트 라벨(23도)은 KRW 18,000, 블랙 라벨(40도)도 있었으나 가격의 메리트가 없으므로 23도를 선택했다.

한식에 곁들일 마땅한 증류식 소주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배경에 소개된 만큼, 한국에 존재하는 증류식 소주를 비교해보기로 했다. 본래 화요 25까지 섭외하려 했으나, 가격대에 기왕이면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두 가지를 비교하는게 어떨까 싶어 대장부만 준비했다.

사실 증류식 소주라는 이 말부터 이야기해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왜 소주를 희석식과 증류식으로 구분하는지 아십니까. 네, 주세법이라는 법률 때문입니다. LP가 현대 음악의 시간적 틀을 규정했듯이 술은 법에 의해 규정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주세법이 개정되어 이런 구분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냥 연속증류를 통해 주정을 얻은 뒤 그냥 물에 희석한다 해도 어쨌거나 구분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증류식 소주라는 용어는 굳어졌으므로, 우리는 누룩을 이용해 발효하고, 단식 증류를 통해 얻어낸 술을 증류식 소주라 부를 수 있다.

어떤 잔에 시음해야 할 지도 고민이었으므로 잔도 본래는 스피릿 잔(글랜캐런, 리델 비늄 스피릿)과 세라믹 잔(화요 잔과 도자기 등) 등을 준비해 보았으나 전부 치우고 "그린 보틀"에 가장 어울리는 소주잔을 준비했다. 30년 정도 이사를 다니는 동안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은 금복주사의 증정품이다. 두 가지 모두 냉장고에 보관한 후 다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약 10도 정도의 온도로 시음하였다.

향: 은 토끼 소주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대장부에게는 꽃이나 꿀, 배가 직선적으로 떠오르는 달콤한 향이 있다면 토끼는 백후추, 익은 곡물향이 있어 한층 복잡한 매력이 있다.

맛: 은 백중세다. 토끼 소주쪽이 조금 더 촘촘한 질감의, 묵직한(full-bodied) 느낌이지만 대장부의 것이 묽거나 부족하여 나쁜 수준의 차이는 아니다. 대장부의 단맛이 생각 이상으로 점잖아 놀랐다.

여운: 은 토끼 소주가 앞선다. 엿기름의 향이 점잖은 끝매무새가 있다.

전반적으로는 토끼 소주는 대장부보다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지녔다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샷잔에 담은 뒤 마시기에는 음용성의 측면에서 어울리지 않으므로, 튤립 형태의 잔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서 끝나면 너무 허탈하지 않은가? 대장부는 비록 하프 보틀 사이즈이지만 2천원에 동전 한 닢 더해 구매할 수 있고, 토끼 소주는 KRW 18,000원이다. 동급의 선수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준비해 보았다. 본인이 접객용으로 항상 구비하고 있는 하우스 스피릿인 풍정사계 동이다. 1만 6천원~2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가격면에서 거의 동일하다. 토끼 소주와 달리 냉장 보관을 하지 않았으므로 두 술 모두 상온에 맞추어 기다렸음에도 병의 컨디션이 시각적으로 달라 보일 수 있음에 양해를 구한다.

향: 풍정사계의 완전한 승리다. 갓 지은 밥부터 달군 숯, 후추 등의 향신료가 떠오르는, 그야말로 소(燒)주라는 생각이 드는 특징들의 존재는 유사하지만 강도에 있어 풍정사계의 그것이 한 층 높다. 순서를 달리하면 토끼 소주의 향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이다.

맛: 풍정사계가 무난히 승리한다. 토끼 소주의 향은 한국식 누룩의 느낌이 있는데 비해 입안에서는 그 향이 두드러지지 않는 대신 단맛이 감싸는데, 풍정사계 쪽은 입안의 점막을 강타하는 누룩취가 이어진다. 불쾌한 누룩취가 아닌 익은 곡물의 그리운 향이 감싼다.

여운: 여운의 길이또한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천원 언저리의, 용량을 같이 생각하면 5천 원 정도일 대장부 21과 맞수이나 풍정사계 동에게는 접바둑을 두어야 할 체급 차이를 느꼈다. 나는 이것을 전액 내 돈을 주고 구매했다. 그만하면 됐다. 한식에 어울리는 술이 정말 없는가? 그 술의 자리에 위치해야 하는 게 왜 증류주인가?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겠지만, 그런 것들을 a priori로 생각하더라도 토끼 소주에게는 놀랍게도 놀라움이 없었다.

그렇다면 토끼 소주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미국의 백인이 제조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것에 관심이 전혀 없거나, 한인 사업가와의 합작으로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는 곧 시큰둥한 주제가 될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맛이다. 토끼 소주는 맛있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다시 마시겠습니까? 아니오. 그럼 남은 것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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