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촌 - 네오 보신 문화의 필요성
한국에서만 즐길 수 있는 스페셜한 식사에는 무엇이 있을까? 명절의 부침개와 전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이들은 일상의 음식, 특히 술안주로 꾸준히 소비되고 있으니 특별함을 지닌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김치가 스페셜티 푸드라고 소개하지만 이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이다. 물론 김장철에 갓 담근 김장김치는 시간적 제약 속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중한 행복이지만, 김장김치는 변화를 염두에 둔 음식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한 소비 지점이 다르므로 김장철을 위한 요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큰 명절은 기념하는 설날의 떡국, 추석의 송편 정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송편은 간식의 영역에 가까우며, 떡국은 외식 메뉴로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를 찾기가 극히 어렵다. 대부분 있다고 하더라도 분식짐 명부의 일원이거나 만두 전문점의 구색 갖추기인 경우가 크다. 그렇다면 특정한 시점을 기념하는 요리로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바로 보양식이다.
사실 한국에서 가장 그 뿌리가 민중에게 가장 깊었던 것은 이쪽보다는 개장국이다. 개는 적어도 조선 초기~중기 이후 한국의 육식 문화의 확실한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았으며, 결코 가난한 사람만 먹는 대체품 따위의 지위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이 들여온 축산업의 서구화와 함께 빠르게 서양 육종 등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개고기 문화는 대부분 실전되게 된다. 물론 개장국이 근본이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 따위의 입장을 가지고 싶지는 않다. 개는 오늘의 핵심 주제는 아니므로 넘어간다면, 어쨌거나 그 뒤를 이어받은 음식으로 닭이 있다. 물론 계보상 개장국의 정신적 후계자는 육개장이 맞겠으나, 육개장이 동남 지역의 스페셜티로 자리잡은 데 비해 삼계탕은 더욱 빠르게 전국적인 보양식의 지위를 얻었다. 분명 짚고 넘어갈 것은 삼계탕은 근현대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최광의의 삼계탕, 닭을 삶아 삶은 물을 버리지 않는 음식은 아마 불과 그릇, 닭이 준비된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겠지만 한 명에 한 마리라는 영계의 문법, 대추와 인삼의 조미라는 독특한 보양적 발상은 분명 20세기적이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대부분 일제시대 중상류층의 민간요법이 지목되는 것이 다수설이나, 더 따지고 들자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식용으로 취급하게 된 연계(軟鷄)의 등장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육계 산업이 발달하며 어린 닭의 잉여가 발생하게 된 상황, 그리고 인삼을 달여 먹어 자양강장 따위를 노리던 보양 문화가 만난 지점이 해방 후 삼계탕으로 탄생한 것은 아닌가.
그런 어두운 과거사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수 있다. 심지어 오늘날의 우리 민족은 그 적용을 더욱 관대하게 처리하여 튀기더라도 닭을 먹으면 족한 것으로 복날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각종 기업들이 레토르트 사업에 뛰어들 만큼 삼계탕의 입지는 공고하다. 그 음식에서 어떤 가능성과 미래를 엿볼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찾기 위해 서울,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삼계탕집 토속촌을 다시 찾았다.
토속촌의 음식에 대해 가타부타를 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미 토속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위력이다. 복날을 피한 쌀쌀한 겨울의 토속촌은 만국에서 몰려온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다양하다. 경복궁을 한껏 즐기고 온 듯한 한복 차림의 무리들부터 점잖은 양복 차림에 약주 한 잔 걸치는 베테랑 주재원과 간단한 접대 모임까지, 토속촌의 삼계탕은 세계인에게 한국의 맛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브라함계 종교의 어떤 금기도 위반하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니 이제는 삼계탕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아니라고 무르기도 너무 늦은 셈이 되어버렸다. 물론 일전에 다룬 하동관류 곰탕과 달리, 토속촌류 삼계탕은 모조품이 없는 독보적인 아이템이다. 뽀얗게 낸 국물에 누르는 대로 무너질 정도로 삶아낸 중평아리, 그리고 갖은 견과류는 갖은 풍파를 이겨내고 마지막까지 남은 삼계탕 전문점이 내놓는 삼계탕에 대한 최종적 결론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식사와 보양 어느 측면에 비추어 만족스러운지는 의문이다. 반대로 냉혹한 겨울에 먹으면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할 이 고깃국 한상이 어째서 한국인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가. 물론 토속촌은 성업하고 있지만, 냉면이나 곰탕 따위가 이미 강을 건너 메가 시티 담론을 앞서 경기권 신도심까지 나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삼계탕은 영등포께의 호수 정도를 제외하면 사대문 밖을 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나는 그 약점이 일단 이 뿌연 국물의 배신에서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토속촌 삼계탕은 닭 요리치고 저렴한 음식은 아니다. 기본이 20,000원으로 경우에 따라 점심이라면 두 사람 몫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비용이다. 물론 닭이 저렴하다고 해서 닭 조리품이 저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삼계탕의 국물은 부가가치를 지불하고 탐닉하고 싶은 짙은 인상이 없다. 무엇보다도 맛이 묽다. 밑간의 여부를 떠나 국물의 높은 탁도에 비해 점도는 낮고 맛의 밀도는 옅다. 조금만 끓여도 바스러지는 수준이 되는 영계로는 국물을 오래 우려낼 수 없으니 따로 국물을 내더라도 결국 국물에 더 큰 비용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견과류의 힘을 빌어 국물의 두께를 더했다지만 1980년 기준에는 두터운 것일지 몰라도 현주소에서는 엷기 그지없다. 국물을 러프하게 나누어 맑은 국물과 탁한 국물로 나누자면 후자에서 두터움을 기대하는 경우 핵심이 되는 것은 고형분이다. 당장 경복궁을 가운데로 맞은편의 오레노라멘의 닭백탕 육수를 떠올려보라. 물론 파이탄의 두께를 잡는 것도 닭을 뭉개넣는 것부터 감자 등 전분의 힘을 비는 법, 핸드블렌더 등을 사용해 인위적인 질감을 조성하는 것까지 방법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어느 쪽도 현행의 애매한 삼계탕 육수보다는 직관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가운데 자리잡은 닭고기의 경우 이사람 저사람 한 마디는 했을 것 같아 길게 따지고 들 것이 못된다. 넉넉하게 잡아도 30분이면 오버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닭가슴살의 체면은 이미 말이 아니다. 건강한 맛의 흰색 고기를 한 종류의 소금과 두 종류의 김치에 의지해 완주하는 것은 벅찬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삼계탕에서 가능성 또한 보는데, 무엇보다도 대추와 마늘, 인삼이라는 독특한 향신의 조합이 내는 시너지이다. 스터핑을 넣고 채우는, 사실 국물에 삶는 것보다는 오븐에 굽는 영양통닭 쪽에서 훨씬 합리적으로 보이는 조리법 때문에 취식의 방향은 국물에서 닭, 그리고 찰밥과 마지막의 삼의 순서를 거치지만 스치듯 베어있는 삼의 향은 반대의 방향일 때 가능성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삼이 가진 의문의 효능을 제외하더라도, 특유의 향은 그것이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분명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올 여지가 있다. 식사에 쓴맛을 사용하는 데 탁월한 우리가 아닌가. 천하의 아토믹스가 뉴욕 한복판에서 시금치부터 녹찻잎까지 갖은 푸성귀들로 뛰어노는 마당에 뿌리라고 언제까지 땅 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다만 기름진 국물과 '달콤쌉싸름'한 대추와 인삼이라는 대들보만 남겨놓고 대대적으로 손볼 필요를 느낀다. 놀라운 것은 사실 과거 삼계탕의 원형이 되는 요리에서 이미 그러한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동아시아의 주요 교역품의 지위를 내려놓은 적이 없던 고려인삼의 가격 문제가 컸겠지만, 이미 일제시대 문헌에는 인삼을 가루로 처리하거나, 채 쳐서 넣거나 하는 등 대안적 조리법이 다수 등장한다.
물론 삼계탕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상 그 다음을 수행하는 것은 결코 이곳의 몫은 아니다. 합리성을 넘어서는 그 존재 목격의 가치를 위해 보존되어야 할 음식들도 있으니. 다음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요리사들의 손에 달렸다. 나는 그 누군가가 삼계탕을 초월한 삼계탕을 조리할 수 있는 시대를 꿈꾼다. 온전한 닭 한마리, 온전한 삼 한 뿌리, 온전한 탕반 한 그릇 그 어느 것도 없지만 완전한 그런 삼계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