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츠동야 즈이초 - 가츠동

가츠동야 즈이초 - 가츠동

많은 조리법 중에서 튀김은 독보적으로 근현대적인 조리법이다. 이보다도 현대적인 조리법이라면 냉동이나 냉장과 같이 열을 빼앗는 조리법이나 겔화 등 분자 미식학의 영역에 속하는, 조리법보다는 테크닉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종류밖에 없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수축하지 않는 탄수화물을 튀기는 경우를 제외하면 튀김 조리에는 반죽의 사용이 권장된다. 전통 방식의 터키 프라이어 따위가 예외로 있긴 하지만 맛으로 권장되는 방식은 아니다.

재료에 부족한 지방을 더해줌과 동시에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있다는 바삭거리는 질감까지 확보할 수 있으므로 튀김은 물을 이용하는 열조리에 비해 우등해 보이지만, 조미가 어렵다는 점에서 약점을 지닌다. 끓는점의 차이로 인해 튀김유는 족발을 담그는 간장이나 일본요리의 이치방다시와 같이 맛을 내는 열원으로 사용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도 결국 조미는 외주화된다.

가츠동은 이러한 태생적 문제와 마주해야 하는 음식이다. 기본적으로 강하게 조미된 단백질에 기대 한 그릇을 비워야하는 설정임에도 돈가스는 강하게 조미하기가 어려운데, 서양식 소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간장 바탕의 육수로 조미해야 하니 기껏 튀겨낸 재료를 다시 육수에 넣고 조리하는 이중의 우회를 선택하게 된다. 이를 통해 조미를 얻었지만 다시 튀김이라는 조리의 강점을 잃는다.

즈이초의 가츠동은 다시 물로 조리하는 과정을 바꿈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일면 합리적이다. 하다못해 달걀 하나도 물에 풀어진 느낌보다는 기름에 부친 느낌이 좋으며, 양파 등 모자란 맛을 채워주기 위한 부재료가 없음에도 어느 정도는 양념의 맛에 기대 밥을 딸려 보낼 수 있다. 발상이 좋고 실행에서도 고민한 모습이 보이는 한 그릇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래서 이 형식으로 남을 필요가 있나 하는 고민은 계속된다. 자세한 기원은 몰라도 편의성에 기대어 탄생한 양식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빔밥이나 규동과 달리 조미/단백질을 균일하게 분배하기 어려워 편리한 음식이 편리하지 않다. 조미 문제의 경우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우스터를 쓰는 양식이 있지만 여전히 비주류에 머무르는 이유는 밥에 우스터 소스라는 조합이 문화적인 거부감을 넘기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방향을 정해 바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편리성을 좇을 것인가, 혹은 맛을 좇을 것인가? 가츠동이라는 음식은 그 기로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