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 - 결국은 특별식

우래옥 - 결국은 특별식

고기국물을 차갑게 먹는다는 행위부터 참으로 비일상적이다. 짠맛 영역(savory)에서 차게 먹는 액체라고 하면 가즈파쵸, 흘로드니크chlodnik, 오이냉국 등 통하는 코드가 있기 마련인데 냉면은 그것을 거스른다. 우래옥의 냉면을 두고 고기 냄새가 강하게 올라온다 갈채를 보내곤 하지만 고기를 마시기 위해서 차가울 필요는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래옥 방식의 해결에서 우선하는 것은 고기인가, 차가움인가, 혹은 둘 다 아닌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래옥의 냉면은 뭇 서울 사람들에게 공고한 특식의 위치를 지닌다. 끊임없이 자리를 채우는 객들도, 정말이지 충분히 불친절한 접객 때문도 아니다. 음식 자체가 그렇다. 가정에서 구현하기에는 극한의 장벽이 존재하며, 애초에 메밀 자체가 도시인의 식문화에서는 이탈한 재료다.

이 차가운 고기국물과 역시 동일하게 차가운 메밀을 먹기 위해 온갖 노하우가 총출동한다. 단맛의 배, 신맛의 김치에 정서적 만족감과 시각적인 안도를 주는 고기까지 썰어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젓가락 이내에 입이 지친다. 향에 이끌려 들이키고 나면 맛보는 자극이 빈 속을 드러내므로 자연스레 새로운 자극, 곁의 양념통을 찾는다.

그리고 그 양념이라는게 이렇게 되어있다면 나는 고민에 빠진다. 우래옥의 냉면은 스스로는 물론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한 단계 높은, 비일상의 특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보적인 주차장으로부터 거창한 중앙 계단을 오르도록 만들어진 공간이, 스스로 설정한 가격과 육수를 통해 드러내는 맛내기의 콘셉트가 모두 그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그 맛을 완성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라니.

냉면 한 그릇에 과연 절정의 감각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존부를 논할 생각은 없다. 존재하지 않더라도, 외식업은 그러한 판타지를 좇는 것만으로 도시인들을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러 과연 냉면이라는 음식은 그러한 꿈을 좇고 있는가, 나는 되묻는다; 계절불문 썰어 올리는 배는 물론이요 식초와 겨자는 맛(taste)의 완성에 필요하지만 맛(flavor)의 얼굴은 없다. 비용과 불쾌함의 한계선을 찾아 설정한 데에 어떤 얼굴이 있겠는가. 그런 것들을 쌓아올린 음식이 과연 비일상의 특별함이라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가? 과거 모 와인 유통업자가 "훠어어어어얼씬" 고급의 버터와 생크림을 쓰지 않으면 생파스타를 만들면 안된다 따위의 주장(원문은 삭제되어 인용한 글을 링크한다)이 떠오르는데, 반대로 냉면 역시 육수 빼는데만 한우니 뭐니 집착할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까? 심지어, 그 한우라는 동물이 과연 육식문화에 어느정도 효과적인지 성찰해볼 수는 없을까? 서양 음식에 대해서는 모든 관행 하나하나에 대책없는 찬양과 섬세한 성찰이 달라붙는데 반해 한식은 그저 원래 그런 것으로 내던져져 있다. 물론 몇 년 전까지 이 조악한 양념들마저도 활용을 하네마네로 멱살잡고 싸우던 세상이니 그 이유는 알 법도 하다. 결국 정서적인 익숙함 따위에 기대어 있는 탓이며, 그 흐릿한 도시인들의 기억 바깥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니 발전 역시 어려운 셈이다.

그래서 냉면이 어디로 가야하냐고? 생각해보자. 앞서 예로 든 세 가지의 냉국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그중 스페인이라는 무대의 혜택을 입어 특별식의 수준에서 자주 보이는 가즈파쵸가 그 경지에 이르는 방법이 무엇이었나? 스페인에 난다 긴다 하는 요리사라면 자신만의 가즈파초를 하나는 냈으니 두루 살펴보라. 인류 혓바닥의 기능은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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