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살롱 - 이제는 제발 그만

우수 살롱 - 이제는 제발 그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은 주말의 나른한 오전이었다. 온전히 나에게 배당된 얼마 되지 않는 여유이다. 그 시간을 이렇게 소비하는 데는 당연히 많은 고민이 따른다. 그렇기에 카드사의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결제금액을 다시 확인했다. KRW 12000. 내가 지불한 금액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좋은 점부터 이야기해보자. 한 명 뿐인 점원의 접객은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완벽이었다. 과연 서양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한다는 그 이름값이 느껴졌다. 만 이 천원정도를 소비하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작별 인사를 포함하여 넓은 공간을 부족한 인원-한 명-이 관리하고 있었음에도 그의 프로 정신이 돋보였다. 비록 짜투리 시간은 다른 객들보다 중요해보이는 이를 위해 쓰이고 있었으나 그것 또한 업장의 역할이 아닌가.

이제 "그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글의 제목 말이다. 대체 무엇이 중단되기를 바라는가. 첫째로는 이 매장에 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상권이나 목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입구 말이다. 입구에는 친절하게도 메뉴를 미리 알 수 있는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입간판에서 스스로의 아이스크림을 "현지에서도 극소수만이 전수받는 오직 천연재료로 만드는 수제젤라또"라는 문구로 소개하고 있음을. 내가 순간 정식착란이 왔을 수도 있으므로 타인의 촬영물을 링크한다. 나에게도 귀책사유가 인정되는 순간이다. 그런 소개문구를 보고 매장의 문을 열었나. 나도 잘못했다.

매장에 들어서면 '락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외벽 앞의 칠기의 조화에 과연 다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으나, 오직 먹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나은 상황이므로 그런 부분은 모두 이해하도록 하자. 다루고 싶지도 않다. 이곳의 아이스크림 메뉴는 크게 세 가지이다. 소르베또, 젤라또, 그리고 젤라또 칵테일. 젤라또 칵테일? 직업정신을 가지고 하는 일이었다면 주문해보았을 것이나 가격이 가로막는다(KRW 14000). 아이스크림의 가격만 해도 이미 국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 가지 단일 맛이 KRW 6000. 두 가지를 선택했고 KRW 12000을 결제했다. 아이스크림 두 스쿱의 가격이다.

좋다, 그런 가격까지도 좋다. 중요한 것은 역시 맛이다. 매장의 바깥에서는 저런 소개문구를 보았다면 매장의 입구와 메뉴판에서는 이탈리아의 Grosseto에서 서양의 식문화를 연구하며 한국 식재료에서 답을 찾았다는 소개를 다시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젤라또의 클래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바닐라, 초콜릿, 헤이즐넛, 피스타치오와 같은 것 말이다. 유일하게 있는 것이 내가 선택한 두 가지 중 하나인 '소금'맛이다-그 실체는 바로 우유맛Fior di latte일 테니 말이다. 나머지의 선택은 과연 국산 식재료 연구의 결과인지, 아니면 국내에서 새로 배운 맛들이 그것 뿐인지 하는 의혹을 들게 하는 것들이었다. 땅콩 버터와 체리, 애플 망고와 백향과같은 맛들은 가게의 소개와 정면으로 배치되며 흥미롭지도 않다. 흑임자와 쑥과 같은 것들이 한국의 식재료라는 주제에 흔적기관처럼 남아있으나 이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제들일 뿐이다.(찾아보라-쑥맛이 없는 곳이 요즘은 더 적다) 황도 복숭아는 스스로를 익숙한 맛-아마도 통조림을 뜻하리라-으로 소개하는 탓에 선택이 불가능했다. 포제띠는 아이스크림 가게의 얼굴이다. 어떤 맛들을 하는지가 곧 그곳의 생각을 보여주고 맛에 대한 해석론을 보여준다. 고전에 오른 맛들을 배제하고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 직선적인 맛의 한 두 가지 과일에 의존한다. 이외의 것들 또한 더 높은 가격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

좋다, 맛보지도 않은 나머지에 대해서 불평불만 하지 말고, 결국 스스로 선택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첫째로는 함초소금이다. 이름은 그렇지만 생긴 것도, 구성도 우유의 꽃이다. 유제품과 대단히 잘 어울리는 바닐라까지 제외하고 만드는 극단적인 이 맛은 이탈리아식을 표방하는 아이스크림의 상징과도 같은 맛이다. 마르게리타 피자가 그렇듯이, 우유 고유의 풍미와 단맛, 그리고 훌륭하게 잡아낸 질감만을 느껴야 하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는 맛이다. 수많은 고전을 배제하고 이 맛을 선택했다면, 과연 그 정수가 담겨있을 것이다. 나는 이탈리아 노인이 아니므로 뭐 소금을 넣었다고 불순물이고 이런 타령은 할 생각이 없다. 맛으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는 곧 좌초한다-애초에 출발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리라. 국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제품의 환경의 영향이다. 우유에 꽃이 펴기에는 원래도 맛이 지나친 물건을 쓰므로 곧 우유의 향이 꽃피우지 못하고 우리가 잘 아는 국산 흰 우유를 먹듯 밋밋함만이 남는다. 짠맛과 단맛의 균형만은 올바름에 가까운 편이나 설계 자체가 잘못되었다. "극소수만이 전수받는 비법"같은게 있으면 뭐하는가. 국내의 식재료에 대한 연구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 맛의 차이를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국내의 지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적당히 마무리했다. 수입품이 해결해줄 수 있는 초콜릿이나 바닐라였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고의일까 과실일까, 사법관계에서 둘은 구별의 실익이 없다.

건무화과? 무화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설마 무화과는 전남에서 주로 재배되므로 한국의 식재료라는 해답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지역명이 붙는다고 아르데슈 밤, 피에몬테 헤이즐넛 같은게 되지 못하는 현실이 엄연히 실재한다. 국내에 재배되고 있는 무화과들은 거의 전부 해외에서 개량된 품종이다. 지중해에서 먼저 즐긴 과실으로 개량도 대부분 그 인근에서 이뤄진 것들이며, 종마다 향도 천차만별이다. 일단 무슨 무화과인지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으므로 가장 넓은 경지면적을 가진 '승정도후인'이라 추측한다. 그냥 무화과는 맛이 옅어 건무화과를 사용한다는 설명에 동의한다. '승정도후인'이라면 그럴 테니.
무화과는 말렸음에도 진한 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음용성이 위험한 수준에 이른 단맛이었다. 설명에는 단 맛을 반으로 줄였다고 했음에도 버거운데, 이는 단맛이라는 게 단순히 sweetner의 사용량에 곧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맛들이 균형을 전혀 맞추지 않고 단맛만이 혀에 감돌기에 혀는 지치고 맛은 곧 침몰한다. 하나의 비극이였다.

이제는 이런 눈속임이 지겹다. 극소수만이 물려받는 비법? 자연주의? 천연? 도대체 다 알게 뭔가. 아이스크림은 첨단 과학의 산물이다. 대두에서 온 레시틴, 양배추에서 온 잔탄검같은 것을 쓰면 화학주의인가? 천연? 그 천연 재료를 재배할 때 내추럴 와인처럼 비오다이내믹 인증이라도 하고 있는가? 나는 그것조차 별로 바라지도 않지만 그렇지도 않은 게 국내 농업의 현주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농업은 그런 서구 담론과 별로 친하지 않다. 연구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하는 말인데 정말로 연구를 했던 사람이라면 서양의 지적 전통은 숨기는 게 아니라 밝히는 데 있음을 알 것이다. 서구의 지적 전통은 정기간행물과 단행본 위에 있다. 왜 인용하는 방법을 그렇게 따지고, 피어 리뷰를 거치도록 하는가. 누가 자꾸 이런 눈속임을 전도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몰아세운 감이 있지만 가격만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먹을 만한 지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벤 앤 제리스의 팝업이 사라진 뒤 연남동의 큰길에 남은 것은 빙그레의 「소프트랩」같은게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무더운 날씨 근방에서는 유일한 선택지마저 되줄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우유의 꽃을 보면 관심은 없지만 관성에서 나오는 기본기(또는 전수받았다는 레시피의 힘?)가 남아있는 메뉴가 또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곁들이기 좋은 과일 종류나 땅콩 버터나 쑥처럼 어렵지 않은 맛을 선택한다면 감동은 못해도 실망은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가격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이런 거짓말들이 나를 실망시킬 뿐이다. 가격대를 감안하면 스스로가 위치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베스킨 라빈스의 곁이 아니라, 서울의 유명점들일텐데, 그렇다면 소비자 또한 다르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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