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ngut Peter Jacob Kühn, Oesterich Klosterberg, Rheingau 2016

Weingut Peter Jacob Kühn, Oesterich Klosterberg, Rheingau 2016

요새 좋은 요리를 먹기 가장 쉬운 곳은? '내추럴 와인 바'가 아닐까. 이탈리아 요리부터 타파스, 한식에 이르기까지 내추럴 와인 바의 기세는 엄청나다. 그런데 내추럴 와인이 뭘까?

딱히 식품업계에서 환경 운동 따위가 큰 인기를 얻어본 적이 없는 국내에서 내추럴 와인이 인기가 있다고 하니 진실인지도 잘 모르겠다. 데메테르 인증을 받으면 내추럴일까, 하지만 무려 파인 다이닝을 자처하는 곳들도 '내추럴이다' '비오다이나믹이다' 이런 설명을 당당히 곁들인다. 소비자가 와인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 기본값인가. 논쟁적인 개념인데 너무 막 쓴다. 비오다이나믹이라 좋다. 이런 주장은 특히나 비오다이나믹이 뭔지 엄밀한 정의가 가능할 때만 해야 한다. 돈 받고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이런 모든 고민들을 넘어서서, 어떤 형태로던 포도 재배와 양조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특정한 가치들을 지지하고 실현하는 작품들은 생산되고 있다. 그 중 페터 야콥 퀸의 리슬링은 단연코 빛나는 존재이다.

리슬링 100%, 리슬링같이 상업적으로 발전된 품종을 키우는게 왜 자연주의냐고 반문이 들어오겠지만, EU 유기농 인증과 채식 와인 인증을 달고 나왔다. 데메테르 인증도 붙어있고, 바이오다이나믹 및 내추럴 와인, 테루아 중심 양조자 연합인 라 르네상스 데 아펠라시옹의 회원이기도 하다. 기관들이 인증해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존중은 꾹꾹 눌러담은 셈이다. (이런 인증보다 철학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 할 수도 있는데 피어-리뷰되지 않는 철학은 그냥 상업적 거짓말일 뿐이다)

벌써 오픈한게 슬프지만 하루 내내 함께하기에 행복한 와인이었다. 나눠서 기쁜 와인. 돌부터 매콤한 향신료, 허브향, 캐모마일과 같은 꽃향마저 감도는 묵직한 풍미가 천천히 풀린다. 신맛 리슬링 계통이지만 결코 신맛이 불쾌하지 않다. 와인 스스로 빛날 정도로 신맛은 절묘한 수준에 머무르며, 탄닌계가 형성하는 무게감이 전체를 조화롭게 아우른다. 한 병의 와인에서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고, 하나하나 뜯어서 음미하는 재미가 있다. 홀로 설 수 있는 와인이며, 라인가우의 와인을 다시 찾게 될만한 매력을 지녔다.

이렇게 잘 만든 와인을 두고 무슨 철학에는 관심 없니 마니 이런 이야기를 감히 할 수 있을까. 라인가우의 대지가 주는 풍성한 미네랄리티와 늦가을의 햇살까지 담긴 잘 익은 과실미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를 담기 위해서 나무는 넉넉한 간격으로 심어지며, 나무의 영양소를 조금은 빼앗더라도 주변의 동식물들과 마음껏 공존한다. 그게 비오다이나믹이다.

와 그렇다면 비오다이나믹으로 이렇게 맛있는 와인이 나오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비오다이나믹을 믿겠어요. 그럴 리가 있는가.(이 블로그의 논조는 항상 기분이 나쁘다!) 반대로 비오다이나믹을 유사과학pseudoscience로 몰아가야 하는가. 그것도 석연찮다. 현대 과학철학의 논의의 위치를 와인 애호가들도 알 것이다. Mclean v. Arkansas에서 Overton 재판관이 '법정의 과학'의 공식을 제안했을때, 이는 라우든과 같은 새 과학철학자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과연 우리가 영원히 믿는 과학의 기본 원리들은 절대적인가? 그들이 물었고, 솔직히 나는 대답할 자신이 없다. 좋은게 좋다 식으로 물러서고 싶은 욕구가 한가득이다. 그러나 과학성을 위한 반증 시도는 인류 진보의 동반자였으며, 주방에서도 그랬다. <모더니스트 퀴진>이 없는 주방은 상상하기 어렵다.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우리가 거짓을 믿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것이 유사과학이다라는 아직 흐릿한 믿음보다는, 증명을 위해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내어야 한다. 사랑하는 것이라면 감히 의심하고 또 반증을 시도해보자. '내추럴 ''바이오다이나믹'과 같은 개념들의 정의를 번역하고, 논쟁하며, 반증하자. 우리가 좋아하는 와인을 생각하며 결코 멈추지 말자. 위대한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을 완성하는 이들은 인간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취향이나 주관이라는 말로 이러한 열정들을 뭉개지 말자. 애초에 진짜 주관의 영역이라면 남이 뭐라던 왜 뭉개려 드는가. 기호는 주관적이겠지만 맛의 원리는 객관적이다. 유리병에 나무를 잘라 마개로 쓴 이 한 병의 술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이게 어떻게 자연의 선물인가. 위대하게 맛있는 와인을 위하여 와인에 대한 논쟁을 멈추지 말자. 한바탕 저지르고 난 다음의 저녁에는 한 잔 마시고 잠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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