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디그리 노스 성수 - 광동식 오리

원 디그리 노스 성수  - 광동식 오리

전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곳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중화 요리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그만큼 중화 요리의 하위 분류가 되는 중국 요리에 대해 정확히 알기는 매우 큰 노력을 필요로 한다. 당장 중국 요리는 중국의 국경이라는 지정학적 경계를 넘나들고 있어 중국이라는 기준도 잘 작동하지 않거니와, 그 안에서 다시 너무나도 크게 갈라지고 만다.

수많은 자원 중에서 굳이 우선 순위를 꼽자면 역시 칸톤 요리(광둥 요리)가 앞선다. 식재광주와 같은 진부한 표현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홍콩/마카오와 대만/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본토 외의 화교 사회와의 잦은 교류로 가장 빠르게 세계의 음식으로 나아간 것이 중국 요리 중에서는 칸톤 요리이기 때문이다. 북미/서유럽 여행자와 동아시아 여행자가 교차하는 번화가나 호텔이라면 대부분 프랑스 요리와 칸톤 요리, 일본 요리가 마련되있을 정도로 칸톤 요리의 위상은 공고하다.

오늘은 그 칸톤 요리 중에서도 오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본토에서는 크게 난징식과 베이징식이 나뉘는 오리는 남에서 북으로 정치적 권력이 이동하는 중국의 중근세 역사를 보여주는 식재료라 할 수 있다. 베이징 카오야의 역사를 600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편의방부터가 영락제의 베이징 천도와 함께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겨온 역사를 시작으로 하고 있으며, 베이징의 문헌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는 오리 구이의 이름 역시 베이징 카오야가 아닌 진링카오야(金陵烤鸭, 금릉고압)다. 칸톤식 오리구이도 큰 틀에서는 같은 진링 카오야에서 파생된 요리있지만(속을 채우는 등 일부 기술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세 요리가 향하는 방향성은 모두 독자적으로 발달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국제도시로 재건된 홍콩을 중심으로 발달한 시우메이(燒味) 문화는 황실이나 기인과 같은 집권 세력의 입맛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존의 중국 요리와는 다른 독자적인 색채를 띈다. 홍콩을 포함한 광저우 일대는 원래 오리보다는 거위를 주식으로 삼는 문화권으로, 광저우에서는 거위를 먹고 난닝에서는 오리를 먹는다(广州吃烧鹅,南宁吃烧鸭)는 말도 있을 정도로 거위에 대한 선호가 뚜렷한 지역이었으나 긴 전쟁과 일제강점기 끝에 폐허가 된 곳에서 '꿩 대신 닭'으로 오리가 큰 인기를 끌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다시 본토의 광저우와 홍콩식이 분리되는 시기도 있었을 테지만, 오늘 다룰 주제는 그 중에서도 홍콩식 씨우메이로 분류되는 홍콩식-칸톤식 오리 구이이다.

이 요리의 생명이라면 물론 씨우메이라는 조리방식에서 형성되는 고귀한 껍질의 질감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만, 그 다음으로는 최대한 밀어넣은 듯 베어든 향신의 맛 또한 중요하다. 껍질을 살리기 위해 속을 텅 비우다 못해 공기를 더 불어넣는 베이징식과 달리 칸톤식 오리는 속에 각종 향신료와 양념을 채워 넣은 채로 익혀 살코기에 양념을 베어들게 하는 진링 카오야의 양념 문법을 따른다. 그 점에 있어 양념 하나는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차슈, 양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편인 씨우욕에 비해 원 디그리 노스의 칸톤식 오리는 아직 미생이다. 모자란 양념의 쾌락은 딥 형태의 소스로 채워야 하는데, 나는 이것이 어떠한 타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베이징 카오야를 친숙하게 생각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감안한 것일 수도 있고, 이런 형식의 조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그레이비를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쪽은 소스의 맛을 볼때 그다지 아닌 듯)일 수도 있다. 하여간 결과만 따지고 보았을 때는 아직 맛이 전부 베어들지 못한 오리, 그리고 그것에 대응하기 위한 딥. 안전하고 합리적이지만 내심 기대했던 방향은 아니었다.

씨우메이와 중국식 바베큐 요리가 가진 매력은 거위나 오리와 같은 게이미한 가금류의 적극적인 채택, 소홍주같은 이국적인 양념이나 단맛의 채용 등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조리 과정에서 보이는 독특한 디테일도 있다고 생각한다. 칸톤식 오리 구이의 경우에는 불에 굽기 전 껍질을 말리고, 굽는 과정에서 기름을 끼얹는 등 특유의 과정으로 완성되는 특유의 질감과 불에 대한 섬세한 감각으로 끌어내는 겉과 속의 오묘한 결과물을 빼놓을 수 없다. 바베큐 따위에 그렇게까지 따지고 드냐 싶겠지만 중국 요리에서 씨우메이/시우라(烧腊)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요리인 만큼 그 세계는 깊고도 넓다. 물론 서울에서는 가타부타를 따지기 어려운 음식이기에 이 식당에게는 가혹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그만한 자격을 갖췄다. 이야기를 떠받칠 힘을 가진 식당인 만큼 더욱 정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생활의 달인' 명판이 있는 식당 중 내가 가는 정말 몇 안되는 곳이라고 한다면 나의 진심을 담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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