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장 볶음밥과 한국식 중화요리

영화장 볶음밥과 한국식 중화요리

이문동 「영화장」에서 볶음밥을 먹고 울 뻔했다. 웍헤이가 잘 스며들어서? 이른바 고슬고슬해서? 노포의 상징이라는 달걀 후라이가 없어서? 아니, 짜서였다. 영화장 볶음밥의 소금기는 더도 덜도 말고 정확했다. 자포니카 쌀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각 문화권마다 리조또, 파에야, 덮밥 등 답안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웍을 이용해 한번 조리한 밥을 다시 볶아내는 차오판은 중화권의 명답이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한 소금의 양. 그것을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다니, 마치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를 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이제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한반도의 볶음밥이 걸음마를 할 줄 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볶음밥을 따지는 사람들의 기준이야 다양하지만 나는 특유의 조리법에서 나오는 재미에 앞서 나는 보편적인 식사로서의 기반이 갖추어지는게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쌀을 물에 불리고 고열, 고압에 익히는 이유는 전분 등을 소화 가능한 형태로 변형하기 위해서이다. 제대로 익은 쌀에 대해서는 이러한 절대적인 이유가 기준이 되며 타협이 불가능하다. 스스로 완성된 요리로서 가지는 맛(taste)의 영역 역시도 그렇다. 인사치레로 단무지나 국물이 깔리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스로 끝낼 수 있어야 하는 한 그릇 음식이다. 기타의 열조리들이 그렇듯이 볶음밥의 볶음이라는 과정 역시 이러한 맛을 불어넣는 과정이고, 열을 이용하는 조리가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감각은 흐르는 듯한 통일성이다. 예컨대 파스타를 먹을 때, 심부의 단단한 부분까지 소스가 동일한 정도로 스며들 수는 없지만 표면의 소스가 입을 자극하기부터 심부의 씹는 감각에 이르기까지 흘러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급박하게 흘러간다면 어떻겠는가? 사람은 당연히 그 변화가 천천히, 은근히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바탕이 되는 탄수화물과 조미료를 함께 가열하는 조리를 한다면 그 결과물이 바라는 그림은 충분히 조미된 탄수화물이라는 절대적인 목표를 향해야만 한다.

물론 기본이 되는 달걀 볶음밥의 재료들은 지방(라드 혹은 식물성 지방), 달걀, 향신을 위한 파 등을 감안하더라도 단맛이나 신맛 등을 더할 수 없어 결국 짠맛이 전체를 감싸므로 이러한 조리결과물 자체를 만족스럽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요리가 지구 전역에서 거둔 승리, 아니 이제는 우주까지 진출한 이 승리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그것이 결코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로 당근 등 단맛을 내는 야채를 더하거나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는 등 차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구성은 이미 범인류적인 승인을 얻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닿기가 어려운 현실이 나를 눈물짓게 만든다. 소금의 양과 조리의 정도 등은 기본에 불과하다. 언제 조미할 것인지, 무엇으로 조미를 할 것인지-소금만 해도 과연 종류가 몇 가지인가-, 부재료를 넣는다고 하면 서로 다르게 되는 조미상태에 어떻게 일관성을 부여할 것인지 등등 쌓인 과제는 많고 여기에 고유의 조리방식이 내는 웍헤이, 파와 달걀 등이 지닌 맛(flavor)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볶음밥은 현대 요리의 방식으로 다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걸음에 앞서 많은 볶음밥들이 속된말로 부러진다. 적절히 조미되지 못한 밥은 볶음밥이 아닌 볶음-밥으로 떨어지며 볶음-밥의 세계에는 단지 열악한 푸젠식만이 존재한다. 짜장을 부어 식탁 위에서야 조미가 시작되는 풍경은 천태만상이지만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궁여지책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여러분이 짜장밥이라는 메뉴를 과연 드시는지를 생각해보시면 쉬우리라. 짜장밥으로서 볶음밥의 영역은 현재 거의 미개척지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짜장을 덮는 볶음밥은 새로운 형태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다. 기존의 볶음밥과 다른 방향에서 개입하는 짠맛, 짜장면의 맥락 속에서 더해지는 단맛 등은 맥락 없이 뒤섞이는 가운데 볶음이라는 과정으로 얻은 결과물은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영화장에서 KRW 9000을 지불하고 먹은 볶음밥에서 그간 대한민국 곳곳에서 먹고 또 먹어온 볶음밥의 그림들이 지나갔다. 영화장이 너무 잘해서? 혹은 다른 곳들이 너무 못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세월의 부질없음 때문이었다. 짜장을 덮어먹는 한국식 볶음밥이 한국 볶음밥의 디폴트값이 된지가 벌써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과거를 넘어설 낌새마저 보이지 않고 있음이 내게 가장 큰 슬픔이다. 이쯤되면 누군가는 짜장과 밥의 관계에 대해서 더 나은 대안을 보여줄 수는 없는가? 이렇게 자주 먹는 음식이 이렇게 발전하지 않다니. 영화장은 세월을 내세우는 주방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요리를 하는 것으로 족한 곳이다. 완전히 일상의 음식이다. 대학 정문 앞이라는 위치와 가격, 공간의 운영방식 등이 모두 일관된 일상 음식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바깥은 어떤가? 과연 한국에서 볶음밥이라는 요리를 이끌고, 비전을 보여주는 주방이 어디 존재하기는 했는가? 서울 곳곳에 사부니 대가니 써붙은 곳들부터 pseudo-광동식을 보여주는 KRW 30000+의 요리들은 과연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이베리코니 킹크랩이니 내세워서 식재료에 의탁하는 것만 기억나지 요리사의 지혜는 정말 아무것도 보여준게 없었다. 오히려 후퇴를 부추기고 있다고까지 하겠다. 이러고도 어찌 슬프지 않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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