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i by Jereme Leung - 2025년 여름


철저한 대칭 구조와 아치에서 오는 그리스-로마에 대한 동경, 그러면서도 넓은 폭으로 열대 환경에 적응한 이 독특한 양식의 옛 건물은 싱가포르의 환대를 상징한다. 물론 소유나 운영 주체 모두 싱가포르와 무관한 자들로, 각 대륙마다 환대를 상징하는 호텔 중 이제 해당 국가의 기업이나 가문 소유로 남은 곳은 없다시피 한 현실에서(리츠의 소유주는 다이애나비 사건으로 잘 알려졌고,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중국 안방보험 소유) 그 시절의 추억을 찾는 것은 헛된 일 같기도 하지만, 얼치기 관광객으로서는 놓칠 수 없다.
롱바와 함께 래플스의 F&B의 역사를 상징하는 시설이라면 티핀 룸이겠지만, 롱바가 현대 믹솔로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린 것처럼 티핀 룸의 커리 역시 이상하리만치 흥미가 가지 않았다. 결국 이날 밤의 저녁을 먹게 된 곳은 Jereme Leung(양자경, 梁子庚)이 프로듀스한 식당이었다.
컨설턴트 셰프나 방송인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고, 가게를 중화권에 너무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조리의 질에 대한 걱정이 있었고, 중국 매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보니 내가 중국의 중화 요리에 전혀 관심이 없을 시절, 상하이에서 탕수육에 볶음밥이 그나마 아는 요리라고 찾아다녀야 하던 시절 황포회의 요리사였다는 기억만을 가지고 그의 주방으로 향했다.




금박을 입혀낸 오리 구이는 여러 레스토랑에서 그가 선보이는 대표작 중 하나인데, 껍질의 조리는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로 좋았다. 중국의 이런 오리 구이 요리가 추구하는 질감이 흔히 바삭하다는 말로 표현되는데, 더 따지고 들자면 단순히 말라서 부서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열이 직접 닿지 않는 피하 부분을 어떻게 보존하며 조리하는가가 기술의 관건이 된다. 일단 껍질이 두터운 오리인 것이 좋고, 그것이 잘 살아있는 것이 좋다.
문제는 제렘 룽의 스타일, 흔히 이노베이티브로 표현되는 여러 요리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방식인데 이 요리에서는 그것이 좋아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일단 새로워야 한다는, 프로듀싱 방식의 주방에서 흔히 나오는 강박성이 느껴졌다. 대표적으로 피에르 에르메의 이스파한에 사용되는 장미수를 이용해 소스에 향을 입히고 단맛을 크게 당겨냈는데 차나 술을 곁들여도 버거울 정도로 균형이 흔들린다. 다행히도 소스의 대체재가 존재하지만, 장미꽃 소스를 곁들인 취지는 무색해졌다.

꿀을 발라 구운 은대구는 2010년대 이후의 유행을 제대로 반영한 요리로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작은 요리라 할 수 있다. 육류가 아닌 바에야 꿀은 졸이는(蜜蒸) 방법 정도로 쓰이고 그마저도 생선과 친한 조리법이 아님을 감안하면, 중국 요리에서 꿀을 발라 굽는 것은 육류의 방식을 적극 차용한 일종의 크로스오버라는 측면이 있다. (베이징 카오야에 바르는 양념, 蜜汁火方같은 요리에 쓰이는 양념이 꿀 베이스) 소스를 발라 굽는 방식의 장점을 훌륭하게 살려내 겉은 강한 조미와 선명한 질감으로, 속은 멈출 때를 아는 촉촉한 정도로 그림같이 만들어냈다.


건패류에 게살까지 넣고 호화롭게 만들어낸 볶음밥은 고급 볶음밥의 역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중화요리의 볶음밥은 우스운 요리로 저렴하고 훌륭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화려할 수록 그 본질적 매력을 드러내기는 어려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합리적이다. 비트로 식욕을 돋구는 색을 내고(맛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개성이 강한 재료를 썼으니 간을 낮춰 그들을 돋보이게 한다. 달걀마저 노른자를 뺄 정도로 해산물의 존재감에 신경썼다. 흩날리듯 제대로 볶고 식감을 살릴 아스파라거스에 가니시까지 더했다.
하지만 흔한 실수 하나로 무너지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동그랗게 담는 시간이다. 당연히 틀 노릇을 하는 용기에 담아낸 다음 얹어내는데 뜨겁게 볶아낸 밥이 뭉치면서 안쪽이 빠르게 프라임 타임을 지나게 되고, 자칫 모양을 확실히 내기 위해 담는 과정에서 누르면 문제는 더 커진다. 양념을 바깥으로 뺄 정도로 간을 약하게 볶은 볶음밥이다 보니 하자가 있는 부분이 더 눈에 띄게 된다. 사실 이 문제는 예쁘게 담지 않고 흩뿌려내듯 담아서 쉽게 예방할 수 있는 문제라서, 볶음밥의 몸값이 올라갈 때만 생기는지라 나는 이를 '고급 볶음밥의 역설'이라 생각하고는 한다. 이른바 호텔식 중식(나는 이 표현을 참으로 싫어한다)을 드시는 날이면 한 번 생각해 보시라. 국내 호텔 중 이것에서 자유로운 주방은 거의 없다.
입구에서 소셜 미디어 포스팅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해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이 레스토랑은 물론 래플스 호텔 전체가 현대적으로 요구받는 역할이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물론 카메라를 소지한 나도 뻔한 관광객이겠지만, 나는 래플스가 새롭기를 바라지 않는다. 전통적인 환대를 상징하는 공간임에도 공간부터 요리까지 새로움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객실과 기념품점만이 래플스의 반동적인 19세기 향수가 남아있다는 느낌이다. 싱가포르의 요리사인 그라면 좀 더 자신있는 요리들이 있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