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아라리

나는 낯선 음식을 찾아 길을 떠날 때 항상 속으로 기도한다. 제발 맛있으세요.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는 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부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요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가. 이날도 같은 기도를 올렸기 때문이다. 화창한 날씨 북촌의 꼭대기를 향하며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부디 좋은 요리를 만날 수 있기를.

네이버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식 오픈 전의 홍보물 뿐이었다. 멋진 케이터링과 더 멋진 사진들을 전혀 믿지 않기로 하고, 'BY GAON'이라는 조그만 문구만을 찾아 북촌으로 머리를 돌렸다.

(가온: 가온 2020년 여름 , 가온 2020년 가을, 가온 2022년 여름 등 한때 가장 열정적으로 찾았던 한식당이다.)

홍시, 산딸기, 말차의 세 가지 달걀형의 디저트를 수정과나 아이스크림에 곁들이는 설정이다. 정서적인 반감을 주는 모나카もなか―最中를 빼고 나머지 두 가지를 맛보며 (주)가온소사이어티가 내세우는 한국적 미, 광주요의 미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집중했다.

먼저 설정의 핵심이 되는 정체불명의 알갱이는 분자요리 기법 중 하나인 구형화(spherification)를 사용한 것이다. 알긴산나트륨의 반응을 이용해서 무언가 주스같은 것을 굳혔다. 처음 맛본 홍시 수정과에서는 살짝 꺼끌거리는 것이 있지만 감 섬유질의 느낌은 아니어서 가공 과정의 부산물에 가깝게 느껴진다. 말차 역시 비슷한 꺼끌거림 속 묽은 질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가공용으로 나오는 퓨레나 파우더의 익숙한 성질과 단맛이다. 이로 가르건, 입천장으로 누르건 압력이 가해져 버티지 못한 쪽이 찢어지는 식이 되는데, 묽은 액체가 입안을 빠르게 적시고 나면 껍질만이 남는다. '캐비어'라는 이름을 붙이던 작은 형태의 구체화 조리법에 비하면 껍질의 질량이 커서 불유쾌하다. 맛도 영양도 없는 것을 씹어 삼키는 찰나의 순간이 무더위 속에서는 반갑지 않다.

그러한 점에서 입을 움직일 명분을 주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그림 자체는 조금 더 그럴싸하다. 입이 얼얼하도록 차갑고 찌르듯 단맛이 높은 아이스크림에 기대어 잠시 감각을 잃은 사이 그깟 껍질 따위를 잠시 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온'의 빛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수정과다. 조그맣게 띄운 배의 상태가 좋았다. 사시사철 훌륭한 김치, 그리고 아름다운 배를 맛볼 수 있는 '가온'의 위대한 일관성이 떠올라 정겹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둘 다 낙제점이다. 먼저 아이스크림. 애초에 아라리의 이 이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생각되는 느낌이 아니다. 업소용 소프트아이스크림 믹스에서 토씨 하나 바꾼 티가 나지 않는다. 특이한 토핑 하나 생각해 내서 기성품에 얹는 것. 마치 관 주도로 개발된 관광지의 특산품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친절일 뿐, 본 게임은 수정과겠지. 하지만 수정과도 수정과의 아룸다움이 모자라다. 계피는 옅고, 생강은 더 옅어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것에 반해 단맛은 높아 슬프게 달았다. 맵거나 쓰기 위해 단 것이 아니라, 그냥 달았다. 레퍼런스가 되는 곶감을 띄운 수정과를 떠올려보라. 한껏 말려 다시 띄운 곶감을 씹다 보면 처음에는 계피가 강하고, 곶감을 씹어가며 말린 감의 단맛이 긴 서사를 가지고 퍼져든다. 아라리 서울의 홍시 수정과는 한 편의 영화를 몇 초 짜리 숏폼 동영상으로 만든 듯 하다. 알갱이 속 홍시는 즐길 새 없이 찰나에 사라지고, 수정과는 높은 단맛에 비해 선예도가 떨어지니 굳이 이런 형태로 가공할 이유는 낯섦 그리고 편의성 둘 뿐이다. 아직도 이런 단순한 수준의 분자요리가 낯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라리 서울의 요리는 전혀 '가온'의 요리같지 않다. 두유빙과부터 팥빙수까지 쌀을 사용해 높은 수준의 질감을 보여준 가온의 디저트 주방이 보여준 솜씨는 온데간데 없고, '분자요리니까 고급이고 분자요리니까 좋은 것'이던 2000년대, 2010년대 초 셰프테이너 시대 서울 요리의 암흑기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베누부터 가온까지 담는 것의 위대함을 노래하던 광주요의 아름다움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회용기와 우글리니社 주스기의 빨간 디스펜서까지, '가온'스러운 섬세함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끊임없이 드나드니 내가 영업의 걱정을 대신 하지는 않아도 되겠다.
'가온'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덮어놓고 보면, 솔직하게 말해 이건 투어리스트 트랩에 더 가깝다. 요리는 물론이고 서비스마저도 '가온'의 영혼이 전혀 남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직원이 분투하는 환경에서 그녀는 이미 내면의 감정을 외국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무인 판매기 앞에서 한글을 읽지 못하는 서양인들, 이 둥근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중국인들은 무더위 속 홀로 일하는 서비스직이 겪는 내면의 고통과 무신경함을 적절히 수용해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비울 타이밍을 놓쳐 더 이상 닫히지 않는 쓰레기통, 명령형이 익숙한 영어를 보며 직원이 '가온'에서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짐작하기 충분했다. 아마 이 가게를 위해 새로 뽑은, 그야말로 아르바이트 아닐까. (주)가온소사이어티의 부활의 계기가 되기에는 너무 작은 프로젝트고, 완결편을 방영한 본편의 팬들을 위한 서비스로는 완성도도, 원작과 개연성도 너무 떨어진다. 팬들을 위한 것이 아닌 영화의 시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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