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 2022년 여름

가온 - 2022년 여름

레스토랑 가온의 여름 메뉴에 대해서는 2020년에 다룬 바 있는데, 다시 한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같은 자리에 앉았다. COVID-19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식당들은 우후죽순 확장을 거듭, 감히 위기라고만은 할 수 없는 2년이었는데 한식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 그리고 이곳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그것을 가볍게 살펴보도록 한다.

방문 전

가온의 예약은 전화, 자체 웹 사이트, 그리고 써드 파티 웹사이트(네이버 등)을 통해 가능하다. 다만 직접 운영하는 웹사이트와 전화를 제외하면 예약 여부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는 번거로움이 있으며 안내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서만 관리된다. 확인 전화는 따로 하지 않는다.

요리

레스토랑 가온의 식사는 여전히 한 입 거리의 나열-단품 요리의 나열-한상차림-아이스크림과 미냐디스라는 양식을 따르고 있다. 특기할만한 사항이라면 마켓 컬리의 식재료를 사용했다는 안내 카드가 놓여있었다(그리고 그에 대한 언급은 식사 내내 한 번도 없었다).

도피누아즈를 모방한 감자를 제외하면 주제는 전부 동일하지만 와송 정도를 제외하면 실행과 경험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으므로 다시 논할 이익이 있다. 기본적으로 손으로 집어먹는 오로되브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모습인데, 가온의 메뉴판이 가진 것처럼 재료와 향으로서의 한식에 더해 조리법으로서의 한식으로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데 대하여 가온이 내놓은 대답은 부각이었다. 비채나의 부각은 썩 흥미를 불러오는 것이었지만 그것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담는 틀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많은 '이른바-모던-한식'에서 보여주는 도로아미타불 타르틀렛, 혹은 마키즈시의 아류가 되지는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숨기기 어렵다.

먼저 북쪽분홍새우Pendalus Borealis라는 재료 자체가 과거 한식의 역사에는 존재가 없던 재료인 만큼 첫 걸음부터 "한식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 스스로도 대답을 어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음식으로서의 합리성은 갖췄다. 표면은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정도로 부서지며, 갑각류 살에 기댄 속은 다른 맛, 다른 촉감으로 입안을 덧칠한다. 다만 두 종류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레시피가 유출되었는지 외부에서도 볼 수 있는 특유의 약밥부각은 씹는 횟수를 아슬아슬하게 초과하지 않는 덩어리 질감 사이에서 스며나오는 장맛과 참기름 향을 통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한식을 먹는다는 기쁨을 줄 수 있는데 반해 김말이의 경우 각 재료가 합쳐져 완전히 마키즈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가운데 부재료만으로는 같은 맥락을 유지하는데 역부족이다. 가온의 음식은 정형화된 레시피나 익숙함 속의 한식인가, 혹은 00년대까지 흔히 주장되었던 한국 재료로 하면 한식이라는 신토불이식 한식인가? 앞선 두 요리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백합은 이런 프레젠테이션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가히 도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주저할 수 있겠지만 영락없는 만두소였다. 만두소를 만두피로부터 분리하는 불경을 저지르고 피안에 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가? 만두와 찜의 관계를 생각해서 피가 없어도 찜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무리가 없다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발상은 생경하기는 하되 놀랍지는 않았다. 사실 피보다도 뼈아픈 부재는 생각건대 조미였다. 만두에 으레 따라오는 간장이 없이 만두소가 홀로 서겠는가. 물론 다진 것 치고 관자는 관자만의 촉감이 오롯이 살아있었지만 버터에 표면을 지지는 것처럼 맛이 여러 단계로 발달하지도 않았고, 두부 등을 같이 다져넣었긴 했지만 인상을 더해주기보다는 만두소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하는 기능이 강하다. 현대 요리의 손길을 빌렸지만 만두의 핵심을 대체하기는 역부족이다. 만두라는 음식을 완성하기 위해 얼핏 간장만 들어가는 것 같지만 통상 간장의 짠맛/감칠맛에 더해 식초의 신맛, 고추가루를 통한 향신료의 터치까지 들어가는 과정을 돌이켜보라. 이 만두소에는 너무 많은 것이 제외되고 있었다. 그렇게 차게 먹는 음식이 아님에도 차가움을 연상케 하는 프레젠테이션 역시 이유를 알기 어렵다. 물론 일반적으로 만두와 백합이 친한 관계는 아니므로, 조개껍질 정도의 파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이미 우리는 먹지 않는 껍질을 위해 조개를 먹고 있는 셈이 된다.

지난 게시글에서도 허상에 가까운 궁중요리가 아닌, 현대 한국인의 음식으로서 한식으로서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요리 중 하나로 이 콩물을 꼽았는데 보다시피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콩국수, 콩물의 정당성에 대하여는 지난 글에 이미 분소한 바 있으므로 굳이 이 자리에서 재론하지 않겠다. 변화와 인상을 위주로 다루자면 가장 우선하여 보이는 것은 콩국수로서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오이 대신 맛보기의 합리성에 기댄 남반구의 윈터 트러플으로 마무리했다. 하나 집고 넘어가자면 이걸 송로버섯이라고 부른다고 한식이 되는게 아닌데 왜 송로라고 부르는지 레스토랑의 단순한 대처에 매우 실망이 크다. 당장 송로(松露)라는 이름을 쓰는 버섯은 원래 따로 있으며 한국균학회에서 붙인 학명은 덩이버섯과 덩이버섯속이다. 과거에야 낯선 존재에 유사한 물건의 이름이 붙을 수 있었겠지만 과학적으로 규명된 차이가 있는데 굳이 남의 것의 이름을 계속 쓸 이유가 하등 없다. 송로라는 명칭이 언중 사이에서 썩 들리는 것은 현실이나 그렇다고 하여 레스토랑이 그 기류에 편승하는가? 이런 디테일 하나를 못 잡는 것이 전체를 흔든다고 본다.

말이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맛이 중요한 독자분들도 많으리라. 콩물의 채도가 달라보이는 것은 생각건대 접시의 효과가 큰 가운데 묵은 그야말로 묵중의 묵이었다. 완전히 가루가 되어 연속된 액체를 먹는 듯한 젤리같은 식감이 있으나 콩맛이 들어차 먹는 기쁨이 있었다. 삶은 콩의 텁텁함이 부드러움으로 승화하여 콩 요리가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향의 밀도가 썩 별로인 트러플은 단순히 얹어내는 것으로는 떠올린 그림이 현실이 될 수 없었다. 마침 수프와 트러플이라고 하면 우리는 자연스레 보퀴즈를 떠올리지 않는가? 트러플 향이라는걸 연출하려면 그런 정성이 필요하다. 콩과 트러플을 이어서 하나의 그림을 연출하겠다는 의도는 다가왔지만 트러플은 방점을 찍어주지 못했다. 콩물의 점도를 높이고 트러플 향을 녹이는 방식이었다면 기왕 추구한 맛의 합리성에는 더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전형적인 그림과 나름의 독창성 사이에서 어느 쪽도 완벽한 해답을 보여주지 못했다.

abalone

지난 글에서 익숙한 레퍼런스(요시타케)를 언급했는데 그 자리에 보양식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물론 홍삼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양은 아니다. 외려 나는 홍삼이 가진 맛의 프로필에는 쾌락적인 측면마저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복과 홍삼 그리고 이 멀건 비주얼은 하나가 되어 보양식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jus)라고 하기 어려운 맑은 스톡을 뿌리는 정도에서 조리는 끝을 맺는데 이미 백합에서 보여주었던 패류 씹기의 의식이 다시 시작된다. 꽃잎(기억컨대 아마란스)을 씹을 때 잠깐 지나가는 강렬한 쓴맛이 홍삼 힌트와 적절히 선이 연결되고, 스톡은 최소한의 지방을 머금고 있기야 하지만 이 전복에는 쾌락은 없고 건강만이 있다. 쾌락이 있다면 전복이라는 식재료가 가지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더 많이 나올성 싶다. 외려 식사로서의 충만함을 주는 것은 측면의 이른바 '죽'이었는데, 실상은 죽이라기보다는 말아낸 잡곡밥이었지만 스톡이 가진 힘에 더불어 잡곡의 그리움을 썩 상기시켜주는 힘이 있었다. 딱 적절한 수준으로 말아져 있기도 하거니와 탄수화물 없이 상당한 시간을 보낸 차에 밥이 반가울 수밖에 없기도 했다.

croaker and striploin

일제시대 문헌에 레퍼런스가 있는 사슬적은 이 레스토랑의 상징이자 개인적인 견해로는 난해한 문제로 자리잡고 있는데 레퍼런스의 당위의 문제를 떠나 요리의 합목적성에 대해 고찰해본다. 민어와 채끝이라는 뻔하지만 각각 정서적으로도, 쾌락의 크기로도 정점에 가까운 단백질을 조리하고 있는데 함꼐 조리된다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물론 민어의 그러한 정서적 위치에 대한 당위 역시 재고의 대상이나, 아무렴 한우도 마찬가지이므로 어쨌거나 민어와 한우가 고급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기정사실fait accompli로 두고 그렇다면 그러한 수준에 맞춰 결과물을 낼 수 있는가? 살이 무른 민어는 말려서 먹거나(조선의 드라이에이징이라 하겠다) 숙성을 통한 내부 정렬을 거친 뒤 강하게 조리하지 않는 식으로 연약한 촉감, 대비되는 짙은 맛으로 승부를 본다. 그러나 다진 쇠고기는 햄버거 패티와 같은 이유로 완전 조리를 추구하므로 둘은 같은 불을 쐬면 그르칠 공산이 크다. 그리하여 민어는 굳이 민어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기 어려운 단계에 진입하기 시작한 상태가 되고 말았으니. 미약한 단맛을 지닌 떡갈비는 나름 그럴싸하기는 하지만 다시 햄버거 패티를 떠올려보자. 다진 고기의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햄버거 패티는 지방을 더하고(일반적으로 fat-to-lean이 2:8) 치즈의 강렬한 짠맛으로 완성하는데, 본래 지방이 많은 부위를 다진 모양새인 떡갈비는 외려 패티에 비해서도 한껏 부드럽지는 못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소금을 기피하는 모양이 되니(위의 가루 역시 그런 짠맛을 내고 있지 않았다) 이 사슬적이라는 요리는 과연 미식(gastronomy)에 해당하는 것이긴 한가? 나는 아니오라는 답에 가까워진다. 사슬적이라는 조리법부터 민어까지 조선이라는, 그것도 진짜 조선도 아닌 조선에 대한 현대인의 환상이 이 요리의 몸통이 되며 나머지 역시 한우의 고가 부위에 얽매인 현대인의 그림자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이런 것들도 미각에는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바라보아야 할 방향은 아니다.

tilefish

썩 휘어진 모양을 낸 옥돔찜은 앞선 요리의 비극을 말끔하게 씻어낼 정도의 파괴력이 있었다. 간장을 따라낼 때부터 약간의 점도가 보여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담뿍 찍은 채로 입안 가득 넣으니 그 파괴력에 압도되고 말았다. 보양과 담백이라는 모종의 공포에 쌓여있던 한식이 쾌락과 행복의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적절한 짠맛과 단맛보다도 풍성한 감칠맛과 두세 겹으로 들이치는 향의 흐름에 스스로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처빌, 생강, 방아까지 진풍경을 연출하는데 역할을 보태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완성한 그림에서 한식보다는 칸톤이 그려졌다는 점은 뼈아프지만, 아무렴 음식으로서의 자격은 앞선 두 요리보다도 확실히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릇에 대해서는 조정이 필요해 보이는데 기울기가 모자라다. 좋은 소스를 남기지 않고 먹으려면 이리 긁고 저리 긁어야 하는데 접시 끝자락으로 계속 도망하니 야속하기만 하다.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그 흔적일랑 마주했길 바랄 뿐이다.

jin-ji

이 형식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거대한 의문을 품고 있지만 아무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지나가면 독자도 실망할 수 있으므로 짧게 다뤄본다. 첫째로는 밥과 국의 경이로운 완성도이다. 눈개승마는 분명 철이 반쯤 지난 나물임에도 강한 생명력, 즉 향을 피워내고 있었는데 정말 그에 취해도 좋을 정도였다. 특유의 쓴맛은 적당한 정도로 다스려져 밥과 멋드러지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밥의 상태 역시 밥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된장국은 육수를 뺀 것에 된장을 타지만 탁해짐이 거의 없어 마치 된장을 걸러낸 듯한, 그렇지만 된장의 맛은 걸러지지 않은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나물밥에 된장국, 이것만으로 이미 한식이 가야할 길은 뚜렷하게 제시되고 있었고 가온의 요리는 기본적으로 그 위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고생은 하되 과연 모든 지점에 있어서 최선인가? 그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은 이 애호박이었다. 보기에도 씨가 완전히 발달한 애호박이었는데 매우 두껍게 썰어낸 가운데, 거의 무르지 않은 것을 보니 무친 뒤 시간을 별로 두지 않고 그날그날 나가는 반찬으로 보인다. 이러한 반찬 의례는 한식 요리사로서 거쳐야만 하는 과정으로서 정서적인 측면도 있지만, 과연 모든 것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이다시피 조리는 초인의 단계에 접어든 수준으로 요구되고 있지만 오히려 맛의 핵심적인 부분은 관성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건대 애호박무침이라는 음식의 위대함은 애호박의 단맛과 새우젓의 짠맛, 그리고 감칠맛의 상호보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애호박은 그러한 특징을 살리기 위한 조리를 하고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식사 시간의 대부분을 정서적인 사치품에 할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으려면 자신부터 공명정대해야 하지 않을까? 애호박은 과연 적절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애호박 네 조각을 먹으며 나는 과연 이것이 최선인지 거듭 묻고싶었다.

pat bing su

개인적으로 가장 큰 기대를 하고 기대에 걸맞은 놀라움을 주는 것은 디저트인 이 팥빙수였다. 아이스크림 한 크넬로 디저트를 갈음하는 가온의 과거에는 큰 불만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스크림을 두고 빙과라 부르는 연극을 그만두고 진정 실재하는 개념을 주제로 채택했으니, 그것이 빙수였다. 여름마다 한국의 미식가들이 물고 뜯지만 악화일로만을 거듭하고 가격만 비싸지는 그 빙수. 아무리 되짚어도 아이스크림은 커녕 그라니타보다 우등하다 할 수 없는 그 문제의 양식이다.

가온의 빙수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아이스크림을 갈아내듯이 먼저 몸통이 되는 얼음에 맛을 가득 채우고 빙수의 질감만을 모방하는 방식을 내세웠다. 우유빙수 따위가 물 얼음에 모자란 지방 등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더했다면 가온의 빙수는 완전히 빙수 얼음 자체로 완성체가 되어 있었다. 연유를 뿌리는 의식을 모방하듯 콩물을 뿌려주는데 실제로도 빙수를 입안에 넣자마자 번뜩 떠오르는 것은 식사 처음에 만났던 콩물의 고소함이다. 단맛을 더한 콩물이라니 설탕을 친 콩국수 생각이 나면서도 콩가루가 원래 단맛과 썩 어울리는 물건인 만큼 즐거움에는 지장이 없다. 콩과 팥이라는 시골 풍경같은 맛과 서양 디저트를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움 일변도가 만나 빙수라는 난제를 탁월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단언컨대 빙수로서는 가장 먹을만한 물건이었다. 다만 중앙의 아이스크림 크넬은 고형분의 과다로 인해 끈적임을 넘어 숟가락을 거부하는 정도의 점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의도한 바라기보다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한 모습으로 이해된다. 팥껍질 따위가 제거된 미래적인 팥앙금이긴 했지만 팥을 쏟아넣지 않고서는 나지 않는 팥맛과 쏟아넣고 나면 발생하는 이런 질감의 문제를 해결해야 완전한 결론을 낼 수 있으리라.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결론을 내자면 가온의 팥빙수는 빙수를 먹어야만 하는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키면서도 빙수가 가진 근본적 문제를 극복하는 맛있음이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아 마땅한 요리이다.

peach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통조림에 레퍼런스를 두고 있는 이 복숭아의 맥락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좋은 복숭아에 스테비아나 바질잎을 씹을 때의 감각이 썩 재미는 있었지만 앞선 요리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지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감히 내리기 어려워 보류. 식사 말미에 갑자기 무가리츠가 되려고 하는가?

이 즈음 되면 "좋은 젓가락"을 쓸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옮기는 데에만 써야 하지만.

식사 마무리로 메밀차를 내는데 물 대신 나오는 옥수수 수염차도 그렇고 왜 한식의 차는 곡차 일색에 머물러야 하는가 나는 또 다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옥수수는 한식의 전통 재료 따위도 아닌데). 곡차는 협의의 차를 대신할 수 없다.


총평: 가온의 요리는 분명히 진보하고 있다. 과거에 스스로를 가둔 건강식 프레임과 고조리서, 궁중 일변도의 레퍼런스를 떠나 프랑스와 일본은 물론 칸톤에 이르기까지 레퍼런스를 확장하면서도 맛의 말미에 한식의 정서적인 흔적을 남겨 이들을 한식이라는 범주에 포용하는데 도전하고 있다. 또한 팥빙수, 콩물 등에서 보이듯 민속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 요리를 주제로 하면서도 그 단점을 극복하고 한계를 넘어서는 실행을 보여줌으로서 한식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도 충실하고 있다. 백합찜(만두소)이나 복숭아숙(황도 통조림)과 같이 급진적인 요리들마저 등장하고 있으니 당분간 가온의 요리는 변화를 거듭할 것으로 보이며, 썩 환영하는 바이기도 하다. 다만 흐름상 절정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작은 요리들이 나오는 단백질 코스는 여전히 굴레에 메여있으며, 한국인들의 보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한상 차림의 식사는 몇몇 단품에서 보이는 날카로운 신선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왜 오로되브르는 창조적이지 못해 안달인데 반찬은 제자리에 주저앉으려만 드는가? 가온의 주방은 그 간극을 좁혀야만 한다.

누군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해할 것 같아 남긴다면, 그래서 가온의 요리는 만족스러웠는가? 레스토랑 스스로, 또 서울이라는 지역에 비추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지적한 지점들에도 불구하고 가온에서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분위기: 한국의 악기들이 연주되지만 잘 들어보면 선율이 수상쩍다. 분명히 인식한 한 곡은 오지 오스본의 Crazy Train이었다. "I'm going off the rails on a crazy train"이라며 시원하게 울어주는 오지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는데,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무슨 플레이리스트 비슷한 것을 쓰다보니 의도 바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하다.

가격: 점심 13만원, 저녁 26만원의 단일요금. 참고로 COVID-19 이후 점심 가격이 한 번 내려온 뒤에는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

음료: 얄쌍한 리스트에서도 실제로 주문할 수 없는 와인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논할 이익이 없다. 개편 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페어링으로 제공되는 주류의 흐름과 리스트의 주류가 보여주는 경향이 다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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