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참 - 2021년 여름 리뷰
서촌의 「바 참」과 자매점인 「바 폼」을 포함, 두 곳에서 아마도 대여섯 번을 마셨다. 일정하지 않은 주기로 창작 칵테일을 내는 메뉴, 이번 시즌의 「나무」에 포함된 일반 칵테일과 논알코올-사진의 '전기의자'-, 클래식 칵테일도 숏과 롱 모두를, 방문의 방법 또한 홀로, 또는 이성과, 그리고 동성과. 리뷰를 위한 배경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찰스 H.」 리뷰가 당연히 먼저 아니냐고 하겠지만 찰스 H.는 일신상의 이유로 인해 바 전체를 리뷰하는 일은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없을 것이고, 지금처럼 굳이 해명이 필요한 경우 일부 메뉴에 대한 단편적인 글을 싣는 것으로 그칠 예정이다.
「참」의 메뉴 구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칵테일 르네상스로 불리는, 21세기 초의 서구 바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게 가장 우선적으로 눈에 띈다. 워시나 인퓨징 등의 기법의 채택, 앙고스투라가 아닌 비터스와 향신료 등의 풍미의 새 기원의 대두, 음식이나 식재료를 연상시키는 전형적 창작품의 존재 등이 그렇다.
빛나는 점은 바의 전반적인 경험이다. Fine tuning을 위한 눈썰미가 적당히 갖춰져있는 가운데 경험은 대부분의 경우 불쾌하지 않다. 바텐더가 구애하거나 바텐더에게 구애하거나 바에서 구애하는 불행한 장면은 적게 연출되는 가운데 바의 본질, 즉 음료를 통해 즐기는 분위기가 있다. 음료를 권하는 프로세스부터 마시는 때까지의 설계는 처음, 혹은 때때로 자리하는 객들에게는 훌륭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 보인다. 또한 창작 메뉴들의 기술적 수준이 적절하다. 바텐더의 셰이크가 몇 포인트냐, 스터할 때 손목을 움직이냐 이런 기술 말고, 술에 풍미를 더하는 새로운 방식들의 용례의 측면에서 그렇다. 기술이 앞서 맛과 어울리지 않는 등의 문제는 적다.
물론 극복해야할 점, 혹은 단점이라 부를만한 것 또한 존재한다. 클래식 칵테일 혹은 모던 클래식으로 정의되는 칵테일 르네상스 시대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수정한 것들은 창작이라고 부르기에는 안전해 보이는 가운데 수정의 이유를 읽기 어려울 때가 있다. 차박이 대표적으로, 페니실린을 초월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제주 네그로니와 같이 매우 명확하고 좋은 그림을 보여주는 음료도 있다. 네그로니가 둥굴레를 위한 무대가 되는 멋진 한 잔이다. 그러나 개별 음료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러한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그림의 혼탁함은 고민해볼 지점이다. 물론, 현실 속에서 어떤 것들은 반드시 자의에 의한 결정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런 한계를 감안하고서라도 음료를 만드는 일에서 이러한 설정들은 나름의 설득력을 지녀야만 한다. 여러분이 믿지는 않겠지만 이 바에서 사용되는 전통주-주세법상의 분류에 불과하다-중 적지 않은 종류를 집에서도 구매하고 마셔보았던 경험이 있다. 그 안에 무슨 광명이 들어있기를 바라며. 일품진로 몇년이니 경주법주 초특선이니 하는 고가품들부터 막걸리까지 찾아 마셔봤다. 대부분의 결론은 이런 형태의 일상에 녹아들 생각이라고는 없다는 쪽이었다. 소나무와 학이나 토끼 소주, 추사 40 등 일반적인 음용의 상황을 감안할 때 반드시의 이유를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이다. 파인 다이닝 셰프들이 고조리서의 귀신에 홀렸다면 바에서는 전통 없는 전통주가 가장 큰 문제인데 한국인에게도 이국적인 한국적인 무언가라는 목표의 목적은 다소 멀게만 느껴진다. 특히나 기주의 경우 같은 범위 내에서의 세밀한 특징이 액체 속에서 맛의 층의 역할을 하게 되는만큼, 특정 기주의 사용은 바로 그 기주의 본질까지 드러낸다고 할 수 있는데 몇몇 선택은 눈에 띄게 두렵다.
물론 클래식 칵테일의 제조 장면을 보다보면 주방에서는 이 지점을 아주 잘 알고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 칵테일은 기대 이상으로 치밀하게 만들어진다. 극단적인 곳들과 비교할 것은 아니겠지만 음료에 대한 열정은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는 무엇 하나가 아쉬워 보인다. 칵테일 르네상스와 현대적인 칵테일의 움직임이 왜 탄생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저질스러운 보드카 기반의 맛없는 술들과 롱티에 대한 반동이 스피크이지, 클래식을 다시 세웠듯이 만드는 과정에서 주관이 드러나야 한다. 물론 그 주관이 반드시 나와 같기를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영향들이 뒤섞이는 가운데 질서를 잡아줄 무언가가 아직 전부 드러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