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s, The Tastes of Aubrac, Phaidon, 2022

Bras, The Tastes of Aubrac, Phaidon, 2022

2022년을 고전 중의 고전으로 닫았다면 여는 책은 새 백 년을 상징할만한 책으로 하겠다.

이 책의 제목은 미셸 브라도, 세바스티안 브라도, 공간의 이름-Le Suquet-도 아니다. 물론 대를 이어 가이드의 별을 지키는 가문이라면 픽家도 있겠지만 책을 펼쳐보면 왜 그들이 Bras인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오늘날 브라가 알려진 것이라고 하면 가르구이유나 쿨랑 정도이고, 이제는 야채만 늘어놓으면 다 가르구이유라고 우기고 있으니 모두가 브라의 이름을 들으면 아는 척을 참기 어려워하는 지경이다. 사실 이 가르구이유를 두고도 할 말이 많지만, 이 책의 진가는 그 전설적인 샐러드마저 브라의 세계관에서는 의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데 있다.

일단 브라 부자는 물론 미셸의 어머니가 되는 안젤레부터 브라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미셸, 그리고 그 이름을 잇고 있는 세바스티안까지 그들의 요리 세계는 모두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미셸의 부모는 원래 대장장이였다가 호텔업을 시작했으며, 미셸은 그곳에서 아무도 현실로 만들어내려 생각하지 않은 프로젝트를 떠올려내 1980년대 미슐랭 2스타와 고미요 4토크를 따내며 프랑스 요리계를 뒤흔들었다(브라의 3스타는 이미 혁명의 바람이 지나고 난 다음의 대관식이었다). 세바스티안은 현재의 폴 보퀴즈 인스티튜트의 전신이 되는 요리 및 호텔리어 학교를 졸업하고 가니에르와 게라르를 사사하여 전형적인 부르주아 퀴진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요리는 명확한 흐름, 그리고 지향점-바로 태도-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미 그 영향력 아래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브라를 비롯해 그들이 가진 별 세 개, 거대한 호텔 등에 마지못해 그 권위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그 권위를 이미 마음 깊이 받아들여 그들의 요리를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좋음으로 표현하곤 한다. 나는 이것이 아주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창작으로서 예술은 한동안 보편 가치를 찾아 좇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시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찾아낸 경우는 거의 없다. 동아시아의 보편가치인 忠, 孝는 물론 세계적인 보편가치처럼 보이는 善, 심지어는 愛마저도 진정 보편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두려움이 앞서지 않는가? 하물며 원시적인 감각신경에 의존하는 요리가 쉽게 보편적으로 만들어질 리 없다.

그 결과 나오는 이야기가 "브라가 처음으로 채소를 주인공으로 한 요리를 선보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다(그러므로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는 아무튼 유명 프랑스 셰프의 프랑스 요리라는 결론인데 그러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이런 책이 나왔다. 이미 다큐도 있는 판에 책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브라의 요리가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심지어 그의 레스토랑에 가는 것보다도 이 책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서 만족을 얻는 것과 어떤 인물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거나, 작가 글을 읽은 뒤 감상을 호오로 정리하는 것과 그것의 인류문화적 의의를 따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벤야민의 유령이나 잡으러 다니며 미술관에 가서 원작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술의 역사는 미술관의 역사보다 길다. 글도 마찬가지다. 사포나 호메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보다도 수백년은 앞서지 않았는가. 물론 그렇다고 미술관의 관객들을 조롱하거나 할 이유는 전혀 없고, 다만 목적이 다르고 자연히 그에 따른 방법론도 달라진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었다. 즐거운 하루를 보낼 목적이라면 즐거운 하루를 보내면 그만이다. 나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타인의 이름을 빌리고 싶다면 빌리면 되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삼키고 싶다면 삼키면 된다. 다만 내게 요구하지는 말아달라. 그들은 그들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산다.

이런 책이 그렇듯이 「브라」역시 따라하기 위한 레시피로서는 가치가 없다. 완성된 건축물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다고 그것을 똑같이 지을 수 없고,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럴 가치가 없듯이(라스베가스의 에펠탑이 인생의 꿈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브라의 책은 그 아이디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가치를 다할 수 있고, 그럴 수 없다면 티끌의 가치도 없다.

  • 브라의 수셰프는 이곳에서 요리를 하기로 결심한 뒤 평생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최대한 높은 직급을 다는 게 요리사의 가치를 보여준다면 이런 요리사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물론 그를 비롯한 브라 가족 중 누구도 그런 가치가 지배하는 차원 위에 좌표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 디저트 앞에서 말이 짧아지는 분들을 위해 하나 얹자면 브라를 대표하는 또다른 디저트 감자 와플은 피에르 에르메가 살면서 먹어본 최고의 패스트리 중 하나라고 극찬한 바 있는 물건이다. 이제는 여러분에게도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