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점 임오반 - 잘 가 임오반
이 글을 성북구 돈암동 모처에 영업하던 과자가게 임오반에 바친다. 嗟嗟 日月이 밝아도 밝은 날 가을이 왔음을 느끼는구나. 歐陽先生 이르매 秋聲 불면 제 아무리 푸르른 푸성귀도 色變하며 제아무리 울창한 숲이라도 葉脫을 면치 못한다 하더라. 匹夫 되어 자연의 상서로움을 어찌 탓하랴 하겠냐마는 조그만 객잔에도 가을바람 불 일인가? 한 바람에 쓸려간 낙엽을 덮고 자란 씨앗이 거목으로 자라듯이 봄바람 불 날이면 그대 역시 더욱 단단하게 자랄 것임을 의심치 않으니 당장의 가을을 원망하지 말 것이나, 마음 한 켠 쓰린 것은 감출 수가 없다.
병과점 임오반이 문을 닫는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간에 그것만이 남는 사실이다. 2018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오 년 남짓이지만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한식당이나 학원 등에 묶여있던 한국식 제과를 양과와 같이 독립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간식의 단계로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들었으며, 그나마도 떡 위주, 명절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 한식 디저트에서 개성 약과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거의 유일한 가게였다. 틀에 찍어 만드는 약과로는 의정부의 장인한과와 같은 가게가 있기는 하지만 켜켜이 쌓인 반죽 사이로 스며든 단맛, 부스러지는 감각을 느끼는 개성약과와는 서로 대체할 수 없다. 거기에 게절마다 나오는 정과와 음료를 두고 있노라면 가히 반도 사는 맛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당분간 그런 날은 없을 모양이다. 5년이라고는 하지만 감염병 덕에 좁은 공간이나마 걸어 잠근 때를 생각하면 너무나 금방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가 돌아오리라 믿는다. 아직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고, 그의 뒤에는 따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