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드라- 요리의 정체성과 평가

세드라- 요리의 정체성과 평가

서울에서는 그다지 존중받지 않지만 본래 고전에 요리의 경우 통상 그 요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겉은 바삭하되 속은 촉촉한Crispy outside, soft inside"같은 아포리즘이 있다. 질감에 한정한 표현처럼 보이지만 질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형성하는 풍미의 수준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준은 특히나 빵이나 과자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우연이 아닌 철저한 필연의 산물로 반복 가능한 것들이기에 기준은 명확하며, 역할 또한 또렷하다. 케이크를 식사에 곁들이거나, 식전에 먹어치우기 위한 빵같은 아이디어들은 전형적인 서구식 정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바브카에서 옮겨왔다는 흔적도 남지 않은 바바는 이러한 전형적인 기준을 갖춘 고전의 대표적 예시에 속한다. 구운 바바 반죽은 표면에서는 그윽한 향기를 풍길 정도로 완성되었어야 하되 반죽 내면의 질감은 일관적으로 부드럽되 전체적으로 흠뻑 젖을 정도의 관용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풍미에 있어서는 혀 위에서는 지방-당이 일차적인 역할을 맡지만 빨아들인 액체가 전체적인 관능 경험을 지배하여 인상을 완성한다. 따라서 이 셋을 어떻게 배치하고 표현하는가, 그리고 시럽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판단의 기초적인 척도가 된다.

르 피가로같이 팔자 좋은 곳에서 취재할 수 있다면야 고전적인 바바만 가지고도 편하게 취재를 이어나갈 수 있지만, 서울에서 프랑스 제과를 내세우는 곳에 방문하더라도 일단 종류를 불문하고 바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만일 있더라도 KRW 9000~10000이라는 다소 불쾌한 가격대를 형성한다. 뺑 스톡 바바 정도가 예외였다. 결국 레스토랑에서나 만날 수 있는 디저트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 와중에 마음을 흔든 물건이 「세드라」의 모히또 바바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줄세우지 않고 선예약을 받는다. 둘째, 고전적인 바바가 아닌 모히또를 표방한다.

여느 때 가게 앞에 북적이는 인파를 보고는 한동안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세드라」는 지옥같은 골목 안에 주차를 하고 나서도 기다릴 여유가 있을 만큼 한가로웠다. 그러나 계획한 일이 있으므로 매장에서 먹지 않고 얼른 들고 나왔다.

둘째 이유, 모히또라서. 그게 대체 왜 중요한가? 고전적 바바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미 앞서 고전적 바바의 개략적 기준에 대해 논했는데, 결국 방점을 찍을 풍미라는 측면에서 나는 바바가 럼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도의 술인 럼과 열대과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는 하지만 이는 럼이 오크통 숙성을 짧게 거치고 여과되거나(대표적으로 바카디 수페리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마무리한 화이트 럼(대표적으로 플랜테이션 3스타, 캐스크 원액이 블렌딩이지만 증류-여과-희석 원액의 뉘앙스가 또렷하다)의 경우와 오크통 숙성을 통해 풍미를 한껏 머금은 럼을 쓰는 경우에는 각기 이야기가 달라진다. 프랑스 제과인 만큼 가장 전형적인 짝은 사탕수수 주스를 크레올이라 불리는 증류탑에서 뽑은 AOC 마르티니크 럼, 그 중에서도 최소 vieux(3년) 기준을 만족하는 종류다. 그러나 스카치 위스키에 비해 헐렁해 빠진 럼 세계에서 이러한 요건들을 갖춘다고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불가하며, 주방에서 자신의 럼을 잘 이해하고 레시피를 짤 수 밖에 없다. 통상 훌륭하게 숙성된 마르티니크 럼은 프렌치 오크가 주는 전형적인 바닐라와 담배 등의 향이 아름답게 꽃피우므로, 여기에 오렌지-애프리콧-레몬 등 열대과일의 향을 더한 럼 시럽이 고전적인 레시피의 기본이고 이 요리의 기본적인 풍미의 값이 된다.

물론, 이는 가장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해서 바바에 럼이 부여할 수 있는 풍미의 세계는 한껏 넓다. 알랭 뒤카스같이 주방 예산이 좀 더 넉넉한 경우에는, 발효와 숙성 기간 모두 넉넉하게 잡아 시럽으로 더하기 전에도 열대과일이나 시트러스 종류의 노트가 있는 마르티니크 럼에도 접근해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통용되는 럼들은 속편하게 고전적인 풍미에 기대기에는 주방의 지혜를 필요로 한다. 제과제빵용으로 유통되는 네그리타는 무던한 물건 정도는 만들 수 있지만 씁쓸함을 다스리는게 숙제다. 이는 스미스 크로스 위시의 국내 유통 영국-자메이카 럼들에게도 해당 사항. 론 디플로마티코, 론 자카파를 위시한 론 계통의 럼들은 단맛 이외의 특징을 강하게 보여주는 부분에 대해 추가적으로 손을 써야만 한다. 지혜가 풍성한 주방이라면 아예 럼들의 다양한 풍미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몰라세를 증류하면서 얻는 독특한 '훵크' 향, 긴 캐스크 숙성에서 나오는 오크나 토피, 캐러멜 등의 향 등, 전형적인 바닐라향-단맛 이외의 요소도 요리를 만드는데 적극적인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럼에 대한 담론은 서울에서 완전히 공상 수준에 머물러서, 바바를 먹는 사람도 무슨 럼을 쓰는지 관심이 없고 파는 사람도 알려주지 않는다. 애초에 제과제빵용으로 나오는 럼과 리큐르로 이런 술을 먼저 접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며 다양한 럼의 수입은 커녕 기본이 되줄 스테디셀러들도 가격이 형편없기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럼을 개선하는 대신 생각의 방향을 틀어 선보인 세드라의 모히또 바바가 눈에 띄었다.

화이트 럼이 기본적인 적신 바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운데 풍미의 빈자리는 민트와 라임이 풍미의 축을 메운다. 쉽게 떠올릴 수 있으면서도 재밌는 발상이다. 그러나 상쾌한 감각이 핵심이 되는 모히또와 지방-알코올-당이 선사하는 전형적인 바바의 풍미는 상극으로 보인다. 이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세드라의 모히또 바바는 모히또와 바바를 각각 몇 가지 요소로 분해한 뒤 짝을 맞추는 방식으로 이를 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바바 반죽에서는 럼 가운데 허브의 향기가 살짝 돌고, 크림과 콩포트가 개입하면 라임의 쓴맛이 더해져 전체적으로 모히또의 풍미를 모사하고 있다.

고전적인 바바 오 럼(KRW 8500)에 동전 한 닢 더해서 즐기는 재미라고 하면 큰 불만이 없는 가운데, 나는 고민했다. 적절한 반죽과 적절한 굽기, 그리고 적절한 적시기, 적절한 젓기와 적절한.. 적절한 바바를 넘어 잘 만든 바바의 단계에 돌입했다. 반죽이 쪼개지는 감각과 단맛이 좋다. 그러나 예약한정으로 판매되는 '모히또'바바에게는 고전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어떠한 주제를 형상화한 요리로서 이러한 정도의 창작이라면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 향의 측면에서 모히또라는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누군가 이건 모히또가 아닌 다이키리라고 시비를 걸게 될 경우 뭐라고 답해야할까? 두 음료의 차이점은 명료하다-글라스를 타고 따라오는 sip의 감각과 빨대를 타고 들어오는 drink의 감각적인 차이에 있다. 비교적 더 저온에, 더 묽게, 민트향이 지배적인 모히또는 정서적 경험으로서 청량한 느낌이 주요하다. 세드라의 바바는 결론적으로 이 정서를 재현하지 않고 있었다. 크림을 더 많이 먹게 될수록 신맛-쓴맛의, 모히또의 맛 프로필에 가까워지지만 이러한 응용법은 패션프루트-파인애플로 이어지는 열대 과일들을 얹어내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아 궁극적으로 칵테일이라는 주제에는 닿지 않는다. 바바 반죽에 들어가는 달걀과 버터, 그리고 마지막에 올리는 크림까지 풍성한 지방을 생각하면 이치에 맞는 결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모히또 바바라는 주제의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모히또를 마시는 즐거움이 영감이 아니었다면, 생각건대 그는 또 다시 주방에서 럼을 쓴 제과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조악한 서울의 환경이 진정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적인 제과의 고전적인 외형, 그리고 기본적으로 정해진 풍미의 좋고 나쁨을 논하고 싶지 않거나 논할 수 없는 소비자의 지형이 고전적인 럼 시럽을 바깥으로 몰아내는건 아닌가.

잘 만든 바바를 만나기 어려운 환경에서, 유희를 위해 약간의 위트를 더한 것에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비판을 예상하지만 앞서 링크했던 르 피가로에서 조사했던 바바들중 최고가에 필적한다는 점을 감안하라. 조사에서 최저점을 기록한 크리스토프 미샬락의 바바가 7유로로 최고가. 서울의 많은 사정들을 고려해야겠지만 결국 소비자가 받아드는 결말은 일단 여느 제과점을 가더라도 세계에서 최고라고 칭송받는 이들에 걸맞는 가격대를 지불하는 현실이다. 재료 선택의 현실과 주방 인력의 현실은 먹는 사람도 아는 만큼은 감안한다. 결국 그 가격대를 설득해낼 수 있는 건 생각하는 셰프의 탁월함이다. 「세드라」의 바바는 「뺑 스톡 」의 KRW 7000대 바바가 쇼케이스에서 사라진 이후 거의 유일하게 남은 가능한 선택지인 가운데, 고전적인 역할 수행에 있어 대체하기 어려운 선택지임은 분명하다. 지금의 상태로도 여러 공허한 케이크 가게들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훌륭함을 갖추고 있다고까지 본다. 그러나 서울을 지독하게 뒤덮은 이스파한과 페티시 인피니멍 바니의 안개를 걷어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다. 결국 또 지나가는 한정판으로, '제과 사전에는 그런 것도 있었지'로 내년을 기약하게 될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손에 달렸다.

  • 추신 : 스페이서를 쓰고 양옆에 보냉제를 붙이는 등 포장에 기본적인 디테일이 있지만 케이크가 홀수인 경우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자가용을 이용해 운송했고 급하게 제동을 거는 등의 상황이 없었음에도 두 케이크가 마치 다른 운명을 겪은 듯 차이가 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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