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 라즈베리 콜링

찰스 H. - 라즈베리 콜링

영어에 "civilized"라는 표현이 있다. 라틴어 civis를 어원으로 둔다. 로마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고, 고문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중받는 인간을 뜻한다. 로마 시민은 로마의 법과 힘이 보호했다. 로마 어느곳에서나 스스로를 로마 시민이라고 선포하는 순간, 로마는 그를 보호했다. 말만 보면 아름답지만,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인간만을 보호한다는 이 단어의 의미의 아래에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간의 존재의 전제가 있다. 로마가 더 이상 보호하지 않는, 벌거벗은 인간Homo Sacer이다. 제물로 바칠 수 없는 천한 존재, 죽여도 벌받지 않는 존재. 이러한 배제된 존재들은 로마의 권리보장이 꼭 아름다운 이념만을 뜻하지 않음을 방증한다.

당초부터 인간과 시민이 분리되기 시작한 이래부터 이런 한계가 있었으니 이 표현은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 권리의 보장이 아닌 권리의 침탈의 무기로 사용되었다. 세계 제국이 무너진 이후 보편세계가 아닌 곳에서도 이러한 보호를 강제하고자 하는 무력 시위들이 등장했다. 보호를 가장한 civis Romanus sum이라는 경구는 로마 대신 영국의, 때로는 프랑스의 것으로 바뀌어 그 역외에서도 관철되었다. 다만 그들은 자격을 갖춘 자국민들만을 보호했고, 식민지에 포섭된 이후에도 식민지인들에게 이러한 보호는 무상이 아니었다.

그런 연유로 무언가가 civilized하다는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면, 제3세계 인간으로서 다소간 껄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 맥락 안에 정치적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칵테일 한 잔 두고 왜 갑자기 또 빌어먹을 도둑질인가, 바로 찰스 H. 베이커 주니어가 이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까지도 이러한 콧대 높은 표현은 지금보다도 더 자주 사용되어서, 칭찬의 느낌을 담아 쓰였다. 더욱 서구적이고, 현대적이고, 그래서 즐거운... 대체 무엇이 그렇게 문명 세계의 느낌이라는건가?
찰스 H. 베이커의 술 격언(Words to the liquid wise) 열 여덟 번째다. 교재인 「The Gentleman's Comapnion」 1946년 Crown Publishers판 기준 123쪽을 펼쳐보라. 없다고? 바에 가면 실물이 있다. 정답은 셰리 와인이다. 훌륭한 드라이 셰리, 혹은 셰리와 비터스Sherry & Bitters, 두 종류만 섞어서 만드는 간단한 칵테일.
인류에 의해 즐겨지는 음료중 가장 문명화된 음료로 칭송받는 이 셰리에 대해 그는 crisp과 pungent 두 형용사를 이용해 그 풍미를 묘사한다. 지금도 와인 테이스팅에 쓰이는 노트들인 만큼 그 의미가 와닿는다. 그러나 그가 권하는 셰리는 모든 셰리를 포함하지 않는다. 캐스크에 오래동안 숙성된, 드라이한 셰리만이 이러한 찬사의 주인공이며, 여물지 않았거나 들큰한 종류는 아니다.

「찰스 H.」에서는 베이커의 세계 여행이라는 주제 속에서 영국을 전통과 변화가 뒤섞이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국적인 음식에서 어떻게 그런 주제를 표현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더 비숍에서 그 즐거움을 겪었다. 전형적인 전통 음료가 현대를 만난 모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단지 진을 썼으니까 영국, 도회적인 칵테일이니까 마티니 글라스라는 이런 한심한 발상에 머무르지 않고 몇 발자국을 더 밟는다.

라즈베리 콜링은 런던의 밀크 & 허니에 뿌리를 둔 칵테일, London Calling이라는 점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셰리 때문이다. 베이커가 격찬해 마지않았던 그 음료가 무엇인가. 드라이하고, 잘 숙성된.. 피노 셰리라면 그 자격을 갖췄다. 런던 콜링은 진에 드라이 셰리와 레몬 주스, 그리고 당으로 완성하는 칵테일로 현대에 만들어진 레시피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르게 견고한 입지를 굳힌 칵테일이다. 과장 섞어 Modern era classics에 속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더럿 있다. 진 사워에 단지 피노 셰리가 더해진 것 같지만, 진과 시트러스의 풍미에 셰리의 점잖으면서도 아름다운 톡 쏘는 감각에 더해 견과의 힌트까지 더해져 한 잔 가득히 당과 산, 알코올을 모두 마셔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칵테일이다.

라즈베리 콜링은 이러한 런던 콜링의 맛의 무게를 라즈베리, 즉 복분자로 탈바꿈한 음료였다. 아마도 복분자주를 일종의 리큐르로 이용한 듯 싶은데, 베이커의 조언에 따라 페이셔드 비터스를 더한 뒤 신맛과 톡 쏘는 감각보다는 단맛에 치중된 음료인 만큼 달걀흰자로 거품과 비단같은 질감을 맞춰낸 듯 싶다.

주니퍼베리와 비터스의 주장은 또렷하지만, 질감을 이렇게 바꾸어내니 셰리의 캐릭터는 죽는다. 더 이상 이 칵테일은 셰리에 헌신하고 있지 않으며, 복분자가 무대위에 선다. 과연 이게 런던의 맛일까, 런던 콜링에 대한 좋은 답변일까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한다. 과연 이 복분자 리큐르는 셰리만큼 civilized한 음료인가? 이 표현에 걸맞는 음료라 하면, 알코올의 화학적인 성질 덕분에, 또 인체에 미치는 영향 덕분에 마셔온 이래 그 부작용을 덜고자, 또 기왕에 맛있게 먹고자 하는 지혜가 집약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셰리가 어떤 음료인지를 떠올려보면, 앞서 밝혔듯이 짜증나긴 하면서도 납득은 간다.

이미 런던 콜링은 현대 영국의 식문화의 좋은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좋은 레시피다. 셰리 와인이라는 주제를 통해 베이커와 이 칵테일, 그리고 서울을 이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감각이 날카로운 첫 한 두 모금에서는 런던 콜링 레시피의 빼어남을 조금씩 감지할 수 있지만, 잔을 비울 즈음에는 바로 그 복분자주의 지루한 끝맛이 기억에 남는데, 이것이 과연 본인들이 주창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올바른 결과물일까? 이 칵테일은 서구의 대도시가 연출하는, 간문화적인 것들이 뒤섞이는 곳 속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여러 문화가 충돌하는 기분이 들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슬럼으로 내몰리듯이 선택받지 못한 맛 셰리는 서서히 사라진다.

런던 콜링의 이름이 된 더 클래시의 음악이 떠오른다. 여러분은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런던 콜링이라는 제목은 제2차 세계 대전때 BBC 방송국에서 쓰던 표현으로, 냉전 시기의 핵전쟁, 재해 등에 대한 공포에 대한 노래다. 소외 계층에게는 자비없이 재수가 없는 도시 런던, 언제나 인류 종말이 가능해져버린 사회. 클래시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대신 마음껏 분노하고 마음껏 소리지른다. 세상에 대해 폭로한다. 복분자주로 대표되는 불행한 전통주의 가짜 전통에게 이런 펑크가 필요해 보인다. 이 칵테일은 그런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고까지 하겠다.

바의 경우 22시 영업제한을 필두로 한 제약으로 인해 거대한 위기를 맞은 요새인 만큼 공간 운영의 미숙함이나, 음료의 기술적인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따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 칵테일은 명백히 COVID-19 이전부터 존재하던 음료가 아닌가. 단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재료를 더한다고 해서 한국인들에게 좋은 맛이 되지는 않는데, 이 도시의 주류 문화의 리더 역할을 맡을만한 곳에서 만들었다기에는 큰 실망감을 남긴다. 보편적인 칵테일을 생각하면 못 만든 음료라고 하기는 어렵다. 앞서 짚었듯이 진 등 기주의 개성이 적절히 느껴지며, 산도에 걸맞는 질감까지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요리의 주제의식에 대해 나는 의혹을 가진다. 과연 베이커가 술을 사랑하던 방식이 이런 방식이었을까? 다들 런던 콜링을, 셰리 와인을, 서울이라는 도시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분명 더 나은 해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