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 더 서프 클럽
2015~2016년 경의 찰스 H.를 기억하는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좋다. 큰 틀에 있어 "찰스 H.의 세계여행을 주제로 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바꿨다!
지금까지 몇 번 싱글 몰트 위스키에 대한 고민을 다뤘으나 칵테일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칵테일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내가 지나치게 모자라서?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아니면 모든 것이 완벽해서? 그 여느 때보다 바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지 않은 시기에 말을 얹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4차 대유행이라는 이야기가 돌기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찰스 베이커도 푸드 블로거가 아닌가?" 그게 글을 쓸 이유가 됐다.
서울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거는 만큼이나 남의 이름이나 생각을 걸고 장사하는 곳도 많지 않다. 본 블로그에서는 그러한 소식이 들리면 곧 찾아가고, 자주 절망하며, 때로 절망하지 않을때 글을 게시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네오 비스트로를 표방한다는 곳은 남의 생각을 내걸었으며, 자신의 요리를 컨설팅하여 내놓는 곳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글을 자주 쓰고 싶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양식으로 칵테일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는가? 때로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가장 먼저 드는 문제는 경험의 일관성의 문제이다. 메뉴가 존재하더라도 무시하는 사람이 더 존중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경험의 일관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BAR에는 메뉴가 있더라도 일정 수준의 개인화를 거친다. 심지어 당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러나 이는 스시 카운터에서의 법칙처럼 쥐는 사람에 따라 음식의 품질이 달라지는 수준을 허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스시 카운터처럼 흘러가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는 논할 실익이 없어 제외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으로는 여전히 칵테일을 먹는 경험이 지극히 개인화된다는 점에 있다. 메뉴판에 피즈부터 무언가 수십가지를 섞는 종류까지 나열되어 있더라도 모두가 다른, 아니, 정확히는 모두가 자기 주문에 따라 개조된 김렛을 마신다면, 또 다시 논의의 실익은 사라진다. 바텐더가 아니라 손님의 칵테일을 일일히 비교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본지에서 다루기 알맞은, 그리고 지향하는 형태의 바 메뉴는 어떤 방식인가? 강제되지는 않지만 권장되는 읽을 가치가 있는, 즉 의도가 드러나는 메뉴가 있어야 하며, 이는 적절한 수준에서 정렬되어 있어야 한다. 메뉴가 많더라도 정렬되지 않으면 그것은 백과사전일 뿐이며, 반대로 완전히 경직되어 있다면 요새 유행하는 "오마카세"에 더 어울린다. (칵테일 오마카세? 별의별 오마카세 많던데 왜 아직 없는지 신기하다)
근래 찰스 H.의 메뉴는 이런 시각에서,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메뉴를 가지고 있다. 긴자-워너비식 바 바깥 세계를 긍정한다면, 그리고 일본에 꿈을 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이 도시에 피로를 느낀다면 더욱 그렇다.
이날 예전 메뉴에는 없었던, 마이애미 칵테일 두 잔과 촬영하지 않은 칵테일 한 잔까지 총 세 잔을 마셨다. 왜 마이애미를 골랐느냐고? 누군가 나처럼 열대 휴양지의 맛을 좋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적게 주목받는다. 엘불리 신테제 3번. 모든 식재료는 평등하다. 그럼 요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 도시에서 내가 감히 시소의 반대편을 자임하고자 도전한다. 왜 당신이 더 서프 클럽을 주목해야 하는가.
반드시 블로그에 글로 쓰겠노라고 작정한 칵테일은 서프 클럽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에 대해 많이 묻지 않았다. 여러분이랑 나눌 이야기를 바텐더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 일단 먼저 이야기할 것은, 찰스 H.의 메뉴에는 남의 레시피가 썩 있다. 이러한 일은 아주 유별나지는 않은데, 애초에 바텐더가 아닌 이상 레시피의 주인을 알지 않아도 좋고, 레시피는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인 지시일 뿐이므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니다Sassafras Enterprises, Inc. v. Roshco, Inc., 889 F.Supp. 343 (N.D. Ill. 1995)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이는 여러분에게 재미를 줄 수 있다. 단지 해외 여행을 자주 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The Connaught」의 시그니처중 하나인 "GOODFELLAS"를 알아볼 수 있다. 내 기억에 OG는 good fellas인데 찰스 H.에서는 동명의 영화를 강하게 의식하여 GOODFELLAS로 표기했다는 점 정도게 눈에 띈다. 이외에도 찰스 H.의 메뉴판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추천에 따라 흘러가는 미니 코스인 플라이트나 김렛에 머무르는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떠냐. 메뉴가 사라지지만 않으면 된다.
서프 클럽이 그럼 왜 중요한가? 찰스 H. 오리지널 레시피가 되었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하고 재가공된 레시피가 되었건 칵테일들은 기능적 빼어남, 그리고 세계 여행의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바의 컨셉에 적절히 부합한다. 그러나 오픈때 한국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서 인테리어를 뭐를 했삽네 같은 이야기가 썩 존중받은 이후 모두 여기의 이름을 잊은 듯 하다. 구석 한 켠 계산기 옆에 열댓 권은 모아놓은 찰스 H. 베이커의 「Gentleman's Companion:Being an Exotic Drinking Book」을 혹시 열어볼 생각을 했는가. 이 서프 클럽은 The Bishop과 함께 그 책에서 나온 단 두 가지 칵테일 중 하나다.
그럼 그 중에 왜 서프 클럽을 골랐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비숍에 대해서도 말하면 글이 길어질 테니까 비숍은 나중에 가능하면 또 글을 하나 쓰겠다. 칵테일의 이름이 서프 클럽이지만, 이 칵테일의 본명은 망가레바다. 폴리네시아 군도의 한 섬으로, 프랑스령이다. 정확하게 처음부터 이 역사를 읊자면,
원래 서프 클럽은 칵테일이 아니고 진짜 사교 모임이다. 더 서프 클럽이라고, 마이애미에 세워진 유서 깊은 클럽으로 그야말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지금이야 스투시가 시작하고 슈프림이 완성한 스케이트보드 패션의 영향으로 서핑하면 유스 컬처가 먼저 떠오르지만, 더 서프 클럽은 사교계 명사들부터 힘이건 돈이건 꽤 있는 사람들이 오고가는 호화로운 시설이었다. 당연히 그곳의 매니저도 고객들만큼이나 사교계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고, 그들의 꿈이 보통 어디를 향하는 지를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프랑스 문화권에서의 영감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칵테일이 바로 오리지널 「Mangareva」다. 서프 클럽은 뉴욕 기반의 클럽은 아니었고 영국계-처칠, 윈저 공과 윈저 공작부인-와 연예계 인사들-시나트라, 엘리자베스 테일러-같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마이애미 역사에서 썩 중요한 곳이어서 법적 보호도 받는다. 그러나 장사가 안되서 2013년 문을 닫았다.
그럼 문을 닫은 옛날 서핑 클럽의 칵테일을 단지 찰스 베이커의 책에 실려있다는 이유로 뽑았나? 천만의 말씀. 이 서프 클럽은 재개장했다. 바로 포 시즌스 호텔의 손에 의해서. 스토리가 연결이 되시는가? 과거 「유 유안」에서도 유사한 재주를 부렸던 사계절의 기지가 돋보인다. 이날 내가 케이스 씨와 이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도 없고, 만나도 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법은 일어난다.
거기에 하나 보태자면, 지금 재개장한 더 서프 클럽에는 레스토랑이 있다는 사실을 붙여둔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에는 미국에서 프랑스 요리를 오래 했다는 나이 지긋한 셰프가 주방장을 맡고 있다. 이름이.. 토마스 켈러?
이쯤 되면 서프 클럽을 단 한 번이라도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서울의, 오사카의, 긴자의 규칙을 알고 있다. 동아시아의 귀족들은 코코넛 뚜껑이 달린 음료같은건 먹지 않으니까. 다시 엘불리 3번을 마음속으로 외고 자신있게 주문하라.
여기까지가 찰스 H. 베이커씨로부터 떨어진 서프 클럽의 존재 이유라면, 음식으로서 서프 클럽, 식음료 기고가였던 찰스 베이커의 눈으로 본 서프 클럽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무더운 날씨와 프랑스 문화권의 찬란한 재료들을 버무린 요리다. 원본 레시피에서를 간단히 언급하자면, 코코넛을 갈라서 구멍을 내 속을 비우고, 칼바도스에 사과와 꿀, 파인애플을 열심히 갈아넣은 그야말로 서퍼들의 이지 드링크다. 그는 서프 클럽의 매니저 알프레드 바톤의 이 작품을 역작chef-d'œuvre이라 극찬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리 똑똑한 손님이라도 레시피의 공식을 절대 알 수 없고, 부드럽게 속삭이지만 몽둥이를 감추고 있는(speaks softly but packs a Big Stick)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Big Stick Ideology라고 부른 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맛이라고 묘사한다. 이지 드링크에게 그보다 완벽한 찬사가 있을 수 있을까?
칼바도스에 사과와 배를 쓰는 것은 칼바도스의 생산지인 노르망디에서는 흔한 일로, 생과로 곁들이기도 하지만 여유가 된다면 소르베에 칼바도스를 적시거나 두가지를 따로 내는 식으로 즐기곤 한다. 이를 칵테일의 형태로 만들면서, 찰스 H. 에서는 흰 치즈를 이용한 아이스크림을 이용해 냉동과 아이스크림 제조 기술의 진보를 담았다. 풍미가 강하지 않은 종류를 쓰는만큼 풍성한 마우스필을 조성하면서도 찰스 베이커의 OG가 가지고 있을 풍미를 떠올리게 한다. 기주인 칼바도스의 선택이 극단적으로 제한적인 환경에서 아이디어들은 돋보인다. 칼바도스, 사과에서 꿀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노르망디식 팔레트 클렌져Trou Normand의 공식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질감이 즐겁다. 다만, 사과에는 확실한 벽이 있다. 의도적으로 사과를 감춘 듯이, 본래 노르망디 클렌져에서 돋보이는 사과의 강렬한 신맛이 없다. 외려 리큐르들이 향을 덮는다.
이유를 추측하건대, 이런 소르베와 같은 디저트에 쓰는 청사과는 그래니 스미스같은 사과가 제격이라 알려져 있지만 그건 미국 사정이고 한국에서는 듣기로 연구소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한다. 애초에 원본의 시간대를 감안하면 당시에는 그래니 스미스는 소문도 나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고, 보통 같은 재료의 페어링 개념으로 칼바도스를 재배하는데 쓰이는 사과는 신맛이 강하기보다는 양조를 위해 생과로는 못먹어줄 종류들을 쓴다. 그러나 그건 그래니 스미스보다도 멀다. 아마 연구소에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안으로 일본 사과의 개량종인 아오리를 쓰지 않았을까? 추측에서 그치는 이유는 청사과의 신맛, 혹은 떫은맛-사과의 떫은맛은 때로는 흠이 아닌데, 탄닌이 풍성해야 술이 잘 나온다-이라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 주방에 들어오는 사과가 무엇일까를 감안하면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사과의 후퇴를 감안하더라도 찰스 H.는 이름처럼 베이커의 레시피를 훌륭하게 복각을 넘어서 새로이 만들고 있었다. 일회용 빨대를 꽂아 마무리하라는 그의 조언마저 잊지 않은 이 칵테일을 빨고 있노라면 사람들은 비웃으라지. 내가 그들을 비웃고 싶어진다. 멋진 신사인 척 사진은 찍지만 책장 한켠에 묻힌 신사에게 경의를 표할 동료Companion는 보이지 않는다(말 걸어달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중히 사절). 나무통의 나이만이 가치로 인정받는 이런 사막에서, 정작 90년 전 서프 클럽보다도 좋은 재료가 없는 이 도심 복판에서 한 푸드라이터의 기록은 기술과 지혜로 부활했다. 맛없는 과일 대신 영리하게 채워진 아로마들에 혀를 적시다 보면, 반 이상을 마실 쯔음에는 칼바도스의 고혹적인 풍미가 다시 나를 깨운다. 이 흐름은 이제는 곧 사라져야 할 플라스틱 빨대를 타고 흐르는데, 얼음을 갈았으되 씹거나 녹일 필요가 없으며 아이스크림을 넣었으되 빨대 끝에 묻어 남지 않는다. 토마스 켈러 선생님도 내 곁에 계시지 않고, 팜 비치의 장관은 휴대전화로나 찾아볼 수 있는 이곳에서, 문을 나서는 순간 지독한 봄비가 내리는 서울에서도 가끔은 이런 경험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