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막국수 - Makguksukritik

춘천막국수 - Makguksukritik

현대 한국의 많은 서민음식, 한 그릇 요리들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 때문에 맛이 없다고 하면 문제점을 잘못 진단한 것이다. 서양 역시 미식 영역에서 왈가왈부되는 요리들은 주로 부르주아가 부상한 근대 이후에나 정립되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요리의 위대함은 오로지 시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 완성된 것일 뿐이다. 내용물이 합리적이라면 요리의 역사의 길고 짧음은 문제되지 않으며, 오히려 한식에서는 모자란 시간을 채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궁중 요리, 반가 요리 등을 우선시 하고 있어 골치가 아플 지경이 아닌가.

막국수하면 춘천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서울의 가게마저도 이름에 춘천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있지만 현대 막국수의 맛에서 특별히 춘천이라는 지역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그도 그러려니 한 것이 춘천은 경춘선이라는 인프라가 만들어낸 도시이기 때문에 음식의 맛이랄 것이 남기 좋은 지역일 수가 없다. 이제는 춘천-서울간 고속도로도 있으니 뭇 서울 사람들에게 춘천은 편하게 갈 수 있는 교외이자 도심의 답답함을 덜어줄 수 있는 관광지는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이 생기지는 않는다. 단지 돈이 모이니 그 값을 대신할 무언가도 생기기 마련이라, 막국수가 그렇고 닭갈비가 그렇다.

숨겨진 농촌의 맛 따위의 꿈을 걷어내고 나면 막국수는 보편적인 견해에서 볼 때 일단은 메밀국수다. 옆나라에서는 에도시대부터 순메밀면(十割)이 낫니 2:8 혼합이 낫니 수백년간 따지고 있는데, 메밀국수라는 음식의 핵심을 살펴본 뒤에야 답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탄수화물으로서 스프나 소스를 머금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는 가운데 열을 받아 만들어지는 메밀 특유의 향, 고열에 익혀 만들어지는 속칭 구수한 향 따위가 뒤따른다. 이에 더해 단백질 자체는 충분하지만 글루텐이 형성되지는 않기에 밀가루 면과 같은 탄성을 가질 수 없지만 가공을 통해 부여한 모순의 내구도.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메밀의 모습이다. 여기에 굳이 첨언하자면 밀가루 음식은 차게 먹는다는 개념이 거의 없는 우리의 정서가 메밀을 보면 학습된 시원함을 떠올린다. 메밀 음식은 (그것이 합리적이건 아니건) 차가워야 한다.

우이동 「춘천막국수」의 막국수는 양념이 맛(taste)은 있되 후각을 자극할 요소는 지극히 부족하여 메밀 느낌이 부각되는 설계를 하고 있었다. 강렬한 탄성과 씹힘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특유의 향은 메밀을 먹는다는 생각을 각인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메밀의 정겨움으로 한 그릇을 통째로 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짠맛이나 감칠맛이 크게 당기지 않아 자연스레 다데기를 치거나 외주로 준 신맛(이 경우 무와 김치)에 손이 가는 실정이다. 막국수는 더 완결성 있는 요리가 될 수는 없을까?

이러한 미완결의 문제는 비단 막국수만 겪는 문제는 아니고, 비슷한 맥락 안에 있는 냉면 역시 마찬가지다. 냉면의 경우는 결국 먹다 말고 조리를 직접 다시 하기도 하는 가운데 고명의 빈곤함은 양측 모두 이와 같이 찬으로 떼운다.

냉면집도 막국수집도 으레 이렇게 삶은 고기를 양념과 내는데 그치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잘 삶았니 못 삶았니 따위만을 따지는데 무른 맛에 단백질을 올린다고 맛의 진폭이 커지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과할 정도로 양념을 친 뒤 고기를 싸서 먹는 유행에 편승한다고 해도 결국 조리되지 않은 고깃덩이를 처리하기 전 양념이 쉬이 입안 곳곳을 지치게 만드니 비효율이다. 큰 틀에서 차게 먹는다, 탄수화물은 메밀, 여기에 정서적인 고추 기반의 양념이라는 뼈대를 두고 조리방법 자체를 재고해보아야 한다. 언제까지 냉면이고 막국수고 체면치레급의 고기 몇 점과 퍼렇게 질려버린 노른자만 보고 살 것인가? 아시아의 면요리에서 미리 간을 충분히 벤 고기를 고명으로 쓰는 경우를 수도없이 목격할 수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이 있을까? 물론 단맛이 강한 중국식 차슈나 졸인 생선 따위를 그대로 갖다 붙이자는게 아니다. 소고기 따위를 올려 물욕을 자극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고서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물론 일상 요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해내야 한다. 요리의 발전이 반드시 대단한 예술가같이 생긴 셰프의 손에서 나오지는 않으니까. 무스타파 야채 케밥이나 타코 벨의 사례에서 보이듯 거리에서도 혁명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섬세한 감각이나 창의력이 필요한 부분이라면 외려 고기 고명보다는 야채 쪽. 오이나 무와 같은 야채는 차가운 수프에 보편적으로 쓰이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다. 가즈파초는 셰리 와인부터 토마토로 이어지는 신맛을 통해, 완두콩 스프같은 요리는 민트의 향을 이용해 차가움이나 시원한 감각을 연상케 만들곤 한다. 얼음을 먹는 것이 결코 유쾌하지 않음을 감안하면 진정 차갑지 않으면서 차갑다는 인상을 강화해줄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테인리스 스틸 접시의 차가운 외관? 우리는 요리를 하고 있는가 건축을 하고 있는가.

특기할 사항이라고 한다면 「춘천막국수」에서는 녹두전을 내는데 완전 옛날식, 돼지기름으로 부친 녹두전이었다. 강렬한 라드향이 막국수와 아주 맞붙을 수준이라 완전히 잘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큰 얼개를 두고 보면 막국수의 매움/신맛/탄수화물에 기름/짠맛(간장을 찍어야하지만)으로 얼추 짝이 맞는다. 막국수에는 없는 바삭함과 같은 촉감이 있다는 점 역시 그럴싸하게 다가온다. 비록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저 우연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었지만, 종종 칼국수를 먹기에 앞서 해물파전을 먹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러한 전-국수의 관계는 썩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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