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키 - 인지적 구두쇠의 한 그릇
홍대를 시작으로 서울 곳곳을 수놓았던, 근현대 일본의 흐름을 뒤쫓고자 하는 라멘의 흐름은 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하쿠텐, 무겐스위치가 견인한 이에케 스타일의 후발 주자를 자처했던 플레이어들은 기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주목도를 가져가는 곳은 양재의 덴키라고 생각한다.
덴키가 가진 장점부터 생각해보자. 하나는 튼튼한 조미다. 적절한 수준으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스프는 맛을 드러내는 염도에는 흠이 없다. 달걀 역시 큰 흠 잡을 데 없이 탐닉할 만한 느낌을 내니 라멘의 핵심 조미료를 맛보는 감각이 좋다. 둘은 강한 사이드, 가라아게의 존재다. 닭의 적색육이 가진 동물적 매력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경쾌한 크기로 공장제 가라아게의 고통 속 세상에서의 한 줄기 빛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나는 방향성이다. 사진의 라멘은 이에케를 표방하지만 반 박자 가늘어진 면에 비해 맛의 집중도, 즉 팔레트의 농도와 이를 지탱할 점도에서 최상단의 시금치의 존재를 긍정할 정도에 머무르지 못한다. 안전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짧은 여행을 이끌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은 주지 못한다. 옹골찬 동네 가게를 생각한다면 들추어 낼 지점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만, 여러 한정 메뉴가 집객의 중심 동력이 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가장 평범한 메뉴의 완성도 역시 고민거리가 된다. 하얗게 뺀 수비드 차슈는 생각건대 전체의 완성도를 흔드는 약점이다. 온도의 일체감이 적어 다소 차갑게 느껴지는 데 단면에서도 보이듯이 지방의 비중이 지나치기 때문에 차슈의 본래 역할인 고명으로서 맛을 얹어내는 것보다는 국물과 면의 흐름을 방해하는 느낌에 가깝다. 차슈를 남긴다는 행위의 불경함 때문에 끝끝내 마무리하겠찌만, 절인 야채를 더욱 요구하게 되고 만다. 이러한 차슈의 취약점은 소스를 아래에 깔아내는 덮밥에서도 드러나는데, 차슈의 조미가 약한데 덮밥의 소스는 아래에 깔려 묘한 불균형이 계속된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이제는 홍대거리를 벗어나서도 썩 괜찮은 스프를 먹을 수 있다는 점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박자가 맞지 않는, 달걀과 스프의 완성도에 드러나는 제작자의 정확한 감각과 대비되는 차슈나 나물의 엇박자에 걸음은 갈지자 형태를 띄게 된다. 결국 만드는 사람이나 평가하는 사람이나 옆나라에 원본을 두고 기억을 되짚고 있을 텐데, 서로 흐리게 기억하는 느낌을 받는다. 어쨌거나 그러한 기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 한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꿈에서 나를 흔들어 깨우는 몇몇 요소들은 이 음식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