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틴 - 맛의 인기와 맛
신메뉴의 공세에 대한 나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비관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혔다. 그렇다면 또 다른 하지만 같은 신메뉴를 다시 다룰 이유는 무엇인가. 언제나 본지에서 외식이라는 경험은 매개체요, 그를 주로 다룸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우리 식문화를 바꾸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 목적에 유의미한 글이 나온다면 같은 요리도 여러 번 다룰 수 있고, 그러한 요소를 읽을 수 없거나 반복에 불과한 경우에는 내 인상이 어떤 내용이었던간에 게재하지 않는다. 원고 형태로 버린 것들도 썩 있다.
「더 마틴」은 종래 언급했듯이 성장의 왕도를 걷고 있다. 양적 확장이되 질을 포기하지 않는다. 흔히 하는 것과 같이 HACCP 인증을 받거나 해서 공장을 차린 뒤 대량으로 냉동 유통을 하는 방식이 아니다. 유통 과정에서 노출되는 환경으로 인하여 얼음 결정의 크기가 커지는 등의 문제를 겪기 때문이다.1 대량 유통을 하면서 이러한 점을 주지하지 않는다면 확장이라고는 할 수 있되 성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매장의 크기를 넓히고 취식 환경을 개선, 같은 환경에서 제공하는 제품의 양을 늘린다. 되돌아서는 발걸음은 적어지고 더 많은 사람의 일상에 자리잡는다. 이런 것을 성장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렇다면 성장의 질적 측면이란 무엇인가. 언급되지 않지만 항상 제공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올라가는 기름의 레시피마저 몇 번의 수정을 거치는 등 정해진 메뉴도 모르는 사이 많은 개정을 거쳤다. 이렇게 레시피의 영점을 조절하고 완성도를 깎는 과정이 대표적인 질적 성장의 요소중 하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 가게 경험의 질적인 우수함은 곧 그들이 지닌 풍미의 독특함에서 나온다. 어떤 기억으로 남느냐, 그것의 개선이 곧 질적 성장이라는 과제의 핵심이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한 번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유명하다고 할만한 메뉴가 그 인상이 되지만, 언제나 최소 6구 이상의 포제띠를 사용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들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어쨌거나 손님의 선택을 받는 맛이 될 공산이 크다. 제아무리 훌륭한 풍미가 있다고 해도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면 그 가치를 빛낼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이스크림 가게의 냉동고는 경영전략상 맛보기 전에도 마음이 끌리는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게다가 몇 년간 「더 마틴」에는 그러한 요구가 이미 줄기차게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맛의 부존재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들. 코딱지만한 가게에 무언가로 만들어달라며 샘플을 직접 들고오는 사람들부터 식생활에 일정한 제한이 있어 전용으로 짜인 레시피가 필요한 사람, 아예 가게를 인수할 작정인 사람들까지 가게에 자아를 투영하고자 하는 무수한 시도들이 지나갔다. 그중에는 실제로 제품으로 나온 것들도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나라도 끼지 않으려고 절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정작 이곳을 대표하는 메뉴로 남은 것은 손님들의 메뉴가 아니다. 바닐라와 까망베르 치즈가 아닌가.
물론, 이곳의 정형화된 메뉴에도 객의 공헌은 크다. 그것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완성품이 아니며, 오히려 객들의 반응, 찌푸려진 미간부터 인터넷에 남긴 평가들이 하나하나 묻어 완성된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나는 이렇게 메뉴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좋았으나, 그것을 위해서는 충분한 여유, 그리고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는 기술과 열정이 필요하다. 트러플과 모로칸 민트 티는 전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생략할 수 밖에 없는, 외부적 영향 아래에 놓인 메뉴로 보여 나는 마음이 쓰였다. 아, 과연 그 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까.
"트러플"의 가격은 KRW 15000. 나는 가격에서 마음을 읽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이런 음식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다행히도 나의 짐작보다는 훨씬 나았다.
기본적으로 트러플 풍미를 품고있는 「기억의 지속」은 끔찍하게 더운 요즘 날씨를 맞아 원래도 완성된 요리인데, 본래 까망베르 치즈의 감칠맛이 주된 플레이어였다면 트러플 프로모션 제품은 트러플 향으로 이동해야 하겠다. 단순하게 얹어낸다면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큰데, 짠맛이 열쇠였다. 혀가 강한 짠맛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지방이 이끄는 풍미에게 잠깐의 시차를 허용하게 되어, 그 사이에 넉넉한 트러플 향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그야말로 짠맛 요리(savory food)의 인상을 그럴싸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여전히 트러플이라는 과제가, 주방이 추구하고자 하는 요리의 인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트러플이 주는 새이버리 뉘앙스에는 자연스레 탄수화물의 받침, 짠맛이 얼개를 짜는 설계 등이 뒷받침되는게 논리적이다. 굳이 예시를 들자면 이런 경우, 이런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한국인에게 친숙할 레시피로는 뉴욕 정식당의 트러플 콘까지, 보편적인 정서 속에서 아이스크림이 트러플이라는 풍미를 소화하는 방식은 통하는게 있다고 느끼고, 그에 빗댔을 때 마틴의 트러플 아이스크림은 완성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해 보였다.
"모로칸 민트 티"는 어떤가(남는 자리는 내게 언제나 바닐라다). 이런데서 모로코 차같은게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보이차, 녹차, 홍차, 가향차, 호지차까지 봤지만 마그레브 요리? 아타이? 정말로? 하지만 그 정체는 TWG의 깡통이었다. 내 상상력이 쓸데없이 멀리 갔구나. 나는 이곳의 주방에서 TWG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도 놀랐다. 다양한 차상들이 포제띠를 거쳐갔지만 TWG는 자리가 없었는데, 21세기에 설립한 법인 주제에 1837같은 숫자를 붙이는 우스꽝스러운 회사-그들은 이 숫자가 "상공회의소의 창립연도"라고 주장한다!-를 마주하게 될줄이야. 무어인들의 민트차가 그라나다, 그리고 알제리의 눈물겨운 역사와 더불어 서방세계에도 썩 인지도를 올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만남이 꼭 기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니까, 기대가 서지 않는다.
TWG에 대한 나의 인상이 이런 모양인 관계로 해당 차는 마셔본 적이 없었는데, 이걸로 빚었다는 젤라또는 놀라웠다. 기가 막히게 훌륭한 민트 아이스크림이었다. 모로코의 아타이는 썩 귀찮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달콤하고 강렬한 음료다. 이는 단순한 차의 종류 중 하나라는 의미를 넘어, 마그레브의 식문화 전반에 자리잡은 음료로, 일상의 휴식에도 매우 자주 쓰이지만 무엇보다도 나같은 외국인에게는 환대의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유의 찻주전자(bred)부터 해서 차를 마시는 방식까지, 하나의 의식을 거치며 손님과 주인은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가 된다. 그 경험이 남기는 인상의 핵심을 통렬하게 찌르면서도 아이스크림이다. 베이스 전체에 민트의 청량감이 깃들어 가장 기본적인 우유 젤라또를 한층 진화시켰다. 황홀하게 달고 황홀하게 청량한데 차갑고 부드럽고 지방이 풍성하다. 탐닉의 경험이다.
트러플과 민트, 고급이라는 라이프스타일 전시용으로 전락한 미식과 밈으로 소비되는 식문화라는 양극단의 세태를 보여주는 메뉴들이었지만 그것을 읽어내는 주방의 솜씨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곳의 주방은 언제나 가능한 자신의 요리를 찾는다. 트러플의 향, 민트의 청량감.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재량은 주어지지 않지만, 진단하고 처방하는 솜씨는 오로지 주방의 것이다.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이상 어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 가치가 있다. 특히, 이 끔찍한 여름에는 트러플보다도 몇 배로 빛나는 민트의 힘을 느낄 때에는 특정한 맥락에 맞는 아이스크림이라는, 소비의 개선된 형태에 대한 가능성까지도 엿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꿈을 현실로 완성하려면 「기억의 지속」 이후가 가능해야 한다. 단지 신기한 맛이 아닌, 그 논리적 완성도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요리.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질감의 완성도와 적절한 응용의 감각은 전통과 기술로부터 배운 교훈인 만큼, 그 가르침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진정한 주방의 메뉴의 발현이 절실하다. 성공의 흔적이 보일 때마다 나는 그 갈증을 더욱 짙게 느낀다.
[1]: Ben-Yoseph, E., & Hartel, R. W. (1998). Computer simulation of ice recrystallization in ice cream during storage. Journal of Food Engineering, 38(3), p. 320-322. https://doi.org/10.1016/s0260-8774(98)001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