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티스트 - 2021년 가을 몽블랑

디저티스트 - 2021년 가을 몽블랑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이유 있는 음식이었다. 훌륭한 경험이었다. 평소에 다니지 않던 방향으로 새로 생긴 <빠 아 빠>와 <카린지 잠실>등을 지나며 입맛을 다시며 계단을 올랐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떠났다. 이 디저트의 여운만으로 저녁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맛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추석 과일의 맛, 우리 명절을 지배하고 있는 두 장미과의 과일들, 사과와 배의 맛. 여름을 견디고 피어난 단맛과 향이 있다. 또 하나는 대지의 맛,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피어오르는 맛이다. 고구마를 대표로 하는 뿌리의 전분, 밤과 도토리를 대표로 하는 참나무들의 열매의 전분. 한식에 있어 가을의 맛이라고 하면 내게는 이런 것들이다.

몽블랑이라는 디저트는 밤을 먹는데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제시되어 가을철이 되면 무수히 많은 제과점에서 몽블랑을 내지만, 항상 이야기하듯 다 같은 가공품을 쓰기에 밤의 미식은 여러모로 어렵다. 물론 나는 기술적 측면의 미식도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당장 올 가을에 먹은 유이한 홀케이크 중 하나가 포 시즌스 호텔의 어텀 센세이션이었고, 이외에도 밤 찾아서 여러모로 쏘다녔다. 다만 작년에 이야기했던 것들을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뿐. 이야기 나온김에 잠시 언급하자면 포 시즌스 호텔의 케이크는 사전 주문시 개인 취향에 맞춤 제작이 가능하므로 따질 것은 없는데, 하나가 슬펐다. 재료가 전부 프랑스산이었다는 점. 프랑스인 셰프는 한국 근무에 무슨 의미를 느꼈을까?

말이 삼천포로 샜는데, 디저티스트의 몽블랑은 새로운 밤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구별점을 지닌다. 크렘 드 마롱의 출처는 알밤으로, 제삿상에 올리는 바로 그 물건이다. 특정 농원을 선정하고 있었는데 먹어보지 못한 곳이었고 지금은 이런 시도로 비교할 경우가 없어 질적 판단을 하기에는 용이하지 않으나 시도 자체는 좋게 본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좋은 가공이 없을 경우 그저 무의미한 포장에 불과해질 수 있는데, 훌륭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크림은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상태로 부드러우면서도 밤의 풍미가 통상의 크렘 드 마롱보다도 한층 더 높은 풍미의 밀도를 보이고 있어 밤을 먹는다라는 기분을 한껏 밀어올렸다. 설탕과 유제품을 수단으로 밤을 맛본다는 서양 제과의 어법을 더할 나위 없이 활용하고 있었다. 과자를 사등분해주고 있는 구분선에서 나오는 섬세한 짠맛은 다음 사등분으로 나아갈 힘을 더하고, 절정에 이르러서는 놀람의 요소도 있다. 바로 피칸이다. 안젤리나 몽블랑이 설정한 "밤의 과잉"이라는 주제에 무수히 많은 부주제들이 도전해왔는데 이번 피칸은 그중에서도 으뜸에 가까운 축이었다. 제철의 정말 좋은 피칸은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지만, 가을의 풍미라는 주제의식을 이어가는 와중에 밤과는 대비되는 이미지로 안심하는 즐거움 사이에 놀라움을 넣어 충격을 불어넣었다.

나는 안젤리나 몽블랑이 그 자체로 완성형에 가까운 문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 타르트지 바닥을 깐다던지, 신맛이나 짠맛을 덧대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한 단계 높은 제과로 나아가게 만든다고 보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반란이 그랬듯이 실패한다. 하지만 디저티스트의 몽블랑은 다른 방향, 같은 방향타를 잡되 향과 질감만을 수정하여 큰 성공을 거뒀다.

놓치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자면, 이 디저트는 정말로 주문의 과정의 이유를 지니고 있었다. 왜 예약이 필요하고 플레이팅의 형식으로 내야 하는지. 크림에는 모양만이 아니라 그 순간성ephemerality의 질감이 있다.

한계사항을 굳이 지적하자면 한 숟가락 떠낸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이유는 여러모로 짚이는게 있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묽음을 드러낸다. 밤과 피칸의 압도하는 향기를 바닐라의 나무 계통의 향기로 이어내었다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프랑스식으로 커스터드 기반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도 만들 수 있었다면 달랐으리라. 아이스크림은 잉여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체 자체로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은 있다고 본다. 플레이팅 디저트를 하는 이유, 디저트를 하는 이유를 고루 보여주는 좋은 간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