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티스트 - 군밤 너머에

디저티스트 - 군밤 너머에

나는 밤과 복잡하게 얽혀있다. 가을이면 무수히 많은 밤을 자의로, 또 타의로 먹는다. 그러나 먹는 방법은 단순한 편이다. 올해는 생으로, 군밤으로, 그리고 밤초로 먹었다. 율란을 먹을 기회는 없었는데 한국 과자를 요새 잘 찾지 않는 덕분이다.

왜 그렇게까지 밤을 먹는가? 이미 내 피와 살의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면 좀 편할까. 사담을 나누지 않기로 했으니 이만 줄이고, 어쨌거나 나에게는 맛있는 밤을 찾으라는 과업이 생애에 남아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밤을 생각한다. 맛있는 밤이 무엇일까. 아주 옛날 밤은 그다지 맛으로 먹는 물건은 아니었던 듯 하다. 흉년에는 상수리 아니면 밤으로 연명한다는 「세종실록」(이런식의 글쓰기 싫어한다)같은 문헌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밤이 없었던 것은 또 아니다. 밤에 대한 기록은 적당히 있는 편인데, 딱히 기댈 건 없다.

하여간 밤을 왜 찾고 왜 먹었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용도를 제외하면, 역시 단맛이다. 좋은 밤은 곧 좋은 단맛과도 같다. 거기에 밤 특유의 향미와 끈적하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까지 더할 수 있다면 그게 사는 낙이 아닐까. 하지만 날것으로 이러한 요건들을 만족하는 밤은 거의 없다. 전설로 내려오는 야생 밤의 맛은 나의 선조 대에서 맥이 끊겼고, 지금은 고향땅 고목의 밤을 털어먹어도 맛은 있지만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다. 대보니 뭐니 개량종들이 뒤덮고 있는 밤들은 대개 군밤용인데, 밤의 단맛이 많이 올라와도 특유의 풍미가 매우 진하지는 않다. 군밤이라는 조리법의 특징상 밤이 정제되는 데 통상 한계가 있는데, 밤의 풍부한 녹말이 형성하는 질감이 간식은 몰라도 디저트로 쓰이기에는 영 반갑지 않다는 점이 밟힌다.

그냥 먹어도 좋은 밤이지만 밤을 이상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손질을 하게 된다. 첫째로, 밤이 가진 단맛과 향을 이끌어내기 위해 열을 가하여 변성한다. 살짝 칼집을 넣어 틈을 벌린 뒤 개방된 불에 바싹 익히는 군밤이 가장 기본적으로 떠오른다. 수분이 줄어들어 맛의 농도가 높아지는 것은 덤이다. 다만 변성하는 것은 맛 뿐이 아니고 질감도 있으며, 구우면서 나는 즐거운 향기는 곧 밤의 향이 점점 옅어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적절하게 익히는게 핵심이며 어디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컨센서스가 없다. 둘째로는 밤에 단맛을 더해야 한다. 생밤을 더 단 종으로 개량해서 과일의 수준으로 만드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겠지만 보관을 위해서도 밤은 설탕 등에 절이는 일이 잦다. 더 달아진 밤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꿀에 조리면 우리의 밤초가 되고 설탕을 입으면 마롱 글라세가 된다. 셋째로 두 번째의 작업물에 지방까지 더할 수 있다. 이것은 가히 완성형의 밤이다. 바로 밤 크림, 크렘 드 마롱이다. 좋은 크렘 드 마롱은 샹티 크림과 함께 그냥 내도 디저트가 된다. 밤이 이미 탄수화물을 한껏 머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형적인 디저트의 반죽들보다 아이스크림이나 바바루아같은 게 어울린다.

좋다. 좋은 크렘 드 마롱. 그래서 이 몽블랑이라는 디저트가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좋은 크렘 드 마롱에는 가벼운 매개체vehicle만으로 충분해서 맛을 해치지 않는 머랭이 자리한다. 녹는듯 사라지는 머랭과 크림, 정확히는 커다란 크림 덩이같은 디저트다. 오늘의 몽블랑은 그 위에 시트러스를 얹은 기세였다. 밤에 시트러스라. 통상 밤은 썩 묵직한 재료 취급을 받기 때문에 치즈나 푸른 채소와 썩 어울린다. 짠 맛의 세계에 한 발짝 걸치고 있는 셈이다. 밤과 샐러리 스프같은 요리가 대표적이다. 밤이 가지지 못한 요소를 더할 수 있다면 썩 폭넓게 어울리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신맛과 시트러스의 향은 결코 밤과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다. 적절하게 바스러지는 각 요소들이 입안에서 고루 혀와 코를 적신다. 각각의 대표적인 향을 맛본다.

어찌 말하면 「디저티스트」답지 않은 몽블랑이었다. 풍미가 복잡하지 않았다. 따라서 곁들이는 술과의 박자도 극적인 단계로 올라서지 않았다.(해당 와인은 여기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것이 의도의 영역일까. 아니, 애초에 밤은 복잡하지 않은 식재료일까?

크렘 드 마롱은 마치 리큐르처럼 사서 쓰는 재료라는 인식이 있고, 실제로도 생각 이상으로 놀라운 제품들도 있다. 클레망 포지에의 제품에도 불만은 없지만 밤의 세계는 넓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아르데슈만 밤 산지가 아니다. 꼴로브리에레(Collobrières)의 밤도 있고, 이런 밤들은 날것으로 유명해지지 않았다. 각각 저온조리를 통해 신세기의 크렘 드 마롱을 만드는 회사들이 있다(G&M에 소개된 Confiserie Azuréenne, Christophe Michalak과 협업을 했던 Imbert 등). 프랑스 밖의 밤 세계는 더욱 넓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포르투갈의 Castanha da Terra Fria이 PDO 인증을 달고 밤의 명품으로 위세를 떨친다(포르투갈 내에서만). 아르데슈 AOP 밤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Castel Del Rio IGP 밤이 있다. IGP를 받지 않은 모데나의 Frignano 밤도 있고, PDO로 보호받는 터키의 Aydin Kestanesi 밤도 있다. 서로서로가 명산지인데 맛으로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 솔직히 이 밤들을 고루 맛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군밤이라는 레시피는 이들 모두에서 발견된다. 오픈 파이어에 볶듯이 굽는 방식은 포르투갈,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다들 길거리 음식, 제철 음식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우리도 밤을 구워먹는다. 그러나 그들의 밤 보존과 개발 방식은 우리와는 다른데, 밤 명산지는 생밤으로도 유명하지만 지역의 경제적 생태계가 밤의 가공과도 연결되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군밤용 밤이 과연 이들보다 뒤쳐진다?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애초에 거기까지 가서 군밤을 먹어본 적도 없고. 그렇지만 생각건대 밤의 진정한 매력을 이끌어내는 크림과 밤의 만남을 이끌어내기에 우리 밤은 고민이 많다. 좁은 수입 제품 시장과 국산 밤 사이에서, 디저티스트의 밤 크림은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밤향의 충격보다는 만듦새가 더 기억에 짙게 남았다. 우리 농가가 사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언제나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새로운 품종, 새로운 과일들을 여러분은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애플 망고, 샤인 머스캣과 같은 것들. 그러나 언제나 요리를 위한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는 점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만듦새가 기억에 짙게 남는 한 조각의 몽블랑은 반대로 환상 속 밤에 대한 나의 갈증을 부추겼다. "밤이 그냥 밤이지"같은 말로 나는 밤을 끝낼 수 없는 저주에 걸려서 나는 내년에도 또 밤을 찾아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