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ble Chicken Please - 리버스 페어링
꼴에 동아시아인이라고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면 미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더블 치킨 플리즈」에서 새벽까지 있다가 간신히 기어나올 수 있던 것도 아마 그 덕이 아니었을까. 하여간 더블 치킨 플리즈는 여러모로 흥미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바였다. 첫째로는 마티니스의 그것과는 비견되지 않는 영리한 영업 방식으로, 워크인으로 운영하는 프론트 바는 레디메이드 칵테일로 가득 채워 풋내기 손님들을 대접한다. 그저 지나가는 흥미로 들른다면 미완성품, 대량생산품으로 흐릿한 인상만 쥐어주고 보내는 셈이다. 어차피 그렇게 방문할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심미안이 없을 것이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너무나도 미국적인 마인드셋으로 느낀다. 큰 틀에서 재료의 배합비는 바뀌지 않겠지만 제법의 디테일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되는 칵테일들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백 바에서만 제공된다. 나는 당연히 백 바에 예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백 바인데다가 바 좌석이 몇 자리 없고, 홍콩 출신 바텐더가 합류해 오픈한 곳이기 때문에 스피크이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용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반대로, 이곳이 올해 뉴욕에서 갔던 바 중에는 가장 왁자지껄한 곳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적당히 방문 증거만 남기고 촬영은 포기했는데, 말로 인상을 전하자면 더블 치킨 플리즈는 나구모 슈조가 더 믹솔로지에서 정리한 푸드 인스파이어드계 칵테일의 정점에 오른 곳이었다. 물론 현실의 정점이라는 것이지 이상에 가깝다는 뜻은 아닌데, 사진으로 남은 두 칵테일으로 이미 여러분에게 다양한 심상을 불어넣어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재패니즈 콜드 누들"은 비주얼로 진 피즈를 모사하면서(실제 베이스는 보드카) 팔레트는 땅콩 대신 참기름을 부어넣은 중국냉면의 육수를 연상케 한다. 맛의 신맛과 알코올의 균형이 잡혀있어 술이라는 느낌을 주면서도 참깨의 강렬한 고소함이 입안을 혼란시키는데, 빵이 커다란 샌드위치가 적절한 짝이 되어준다. "키 라임 파이"는 앞선 칵테일에 비해 훨씬 칵테일스러운 거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3단의 색이 키 라임 파이를 모사하고 있어 또다른 시각적 만족도를 준다. 수돗물을 따라야 할 것 같은 컵을 쓰는게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상단의 표면적이 좁아 아래를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경험을 한 뒤에는 대강 의도가 이해가 갔다. Empirical의 실험적인 증류주 "The Plum, I Suppose"가 가진 구운 아몬드, 마지판 향기를 타르트의 맥락에 위대하게 녹여냈다. (Empirical에 대해서는 여기서 쓴 바 있다) 물론 술에서 빵 향기가 난다면 당연히 샴페인의 것을 떠올리겠으나, 샴페인으로는 모사할 수 없는 묵직한 마우스필, 장난스레 띄운 라임이 표면에서부터 휘발하면서 자극하는 후각에서의 라임향이 참으로 키 라임 파이였다. 애석하게도 그 자체로 완성되어 샌드위치의 짝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모사하는 음식은 대부분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고 있었다. 월도프 샐러드, 뉴욕식 피자, 키 라임 파이.. 그 어디보다도 미국, 뉴욕에서 찾아보기 흔한 음식들이다. 그러면서도 몇몇 아시아 음식들은 이곳의 아시아적인 배경을 드러낸다. 메뉴 구성만으로 어떤 의도를 이끌어내는, 메뉴 구성의 미학을 적절하게 이해하고 있다.
음식을 모방하는 칵테일이 단지 칵테일에서 음식 맛이 난다는 점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시대는 지났다. 더블 치킨 플리즈는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음식을 선정하고, 음식의 특징적인 질감이나 맛보는 구성 등을 떠올리게 하는 영리한 방법으로 음식을 액체의 맥락 속에 전유한다. 궁극적으로 더블 치킨 플리즈는 음식와 음료의 고전적인 짝짓기의 모든 것을 거꾸로 만든, 전위적인 시도를 꿈꾸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데 아쉽게도 치킨 샌드위치와 칵테일의 구성으로는 당장 성취가 불가능한 염원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분야에서는 독보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으며, 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종류의 칵테일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는 몇 안되는 곳이라고 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