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감자탕 - 개성과 가능성

은성감자탕 - 개성과 가능성

사실 은성감자탕의 개성이라고 할만한 영역은 뼈해장국보다는 다인용 감자탕에서 빛난다. 우거지가 아닌 뻣뻣한 생야채는 역시 적당히 단단한 정도로 조리한 살덩이와 어울려 특유의 많이 씹는 텍스처를 완성하며 비좁은 공간과 계란말이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시각에서는 탐지되지 않는 은성감자탕의 인기 요소는 조금 더 국물이 베어든 듯한 고기맛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젓가락으로 눌러도 무르게 풀어지지 않으므로 대책없이 오래 조리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밋밋하게 삶아낸 느낌도 아니다. 각 요소들에 놀라움은 없지만 나름의 그림을 완성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다르다는 존재감으로 적지 않은 세월을 버텨내는데 성공했으니 고찰할 가치는 충분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짧은 간격으로 뼈해장국에 대해 두 번 쓰는 이유는 많은 생존형 감자탕들이 수놓은 좌표계 안에서 찾아내지 못한 차원의 변수가 짚이기 때문이다. 바로 국물이다. 모두 국물 요리를 하고 국물을 마시기 위해 먹는데 어찌 국물이 가장 개성 없고, 그리하여 가능성이 가장 무궁무진하겠느냐 황당한 주장이라 생각하겠지만 단순하게 비슷한 돼지잡뼈를 쓰는 요리, 라멘을 떠올릴 수 있다. 라멘이 가진 국물의 문법의 세계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거의 뼈를 녹일 정도로 끓여내는 지독한 종류들부터 여러 맛을 지닌 스프의 배합 따위의 문법도 이제는 완전히 대중적인 요리법으로 자리잡았다. "쇼유 간장 돈코츠 미소" 하는 라멘 종류의 주문은 검색 엔진을 완전히 오염시킨지 오래다. 감자탕의 스프에도 그런 가능성은 없을까. 대부분 감자탕들은 어쨌거나 국물의 재료와 건더기의 재료가 거의 같은 현실 속에서 건더기의 텍스처나 조미를 개선하기 위해 나름의 해결책들을 고안해가며 발전해왔는데, 이제는 국물 혁명을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나는 고기를 살리기 위해 끓이다 만, 그리고 조미료로 덮어낸 복잡성 떨어지는 국물의 품질에 대한 고민이며 둘은 고추가루+된장의 배합비마저도 유사한 소스의 짝짓기의 고민이다. 후자에 대한 변화는 다소 전위적일 수밖에 없어 일상적으로 접근할 영역은 아니겠지만 전자는 고민할 가치가 있다. 물론 은성감자탕의 국물도 식사 후에 다소 끈적하게 입이 붙는 것이 아주 묽은 음식은 아니지만, 국물 요리의 영혼은 결국 국물에 있어야 하는데 붙어있는 살때문에 삶다 만 뼈에 아직도 숨이 붙어있는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초창기의 감자탕은 전부를 큰 솥에 같이 끓이다가 덜어내는 형식이었을텐데, 이제는 1차적으로 국물을 완성하고 건더기는 원하는 조리 상태가 되면 분리했다가 다시 조립해서 내는 형식이 주류로 바뀌었지 않은가. 그 다음, 이제는 국물을 위한 국물 조리로 가능성을 열어젖힐 수도 있지 않을까. 사악한 길을 제시하자면 "남이 발라준 감자탕" 따위의 길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유효한 가치판단 기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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