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포사 - 2021년 봄/여름 오픈

마리포사 - 2021년 봄/여름 오픈

지난 글에서 이런 부류의 호텔에 대해 덮어놓고 찬사를 늘어놓을 수 없는 이유를 말했는데, 마리포사의 경우에는 말을 좀 더 보태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마리포사의 홈페이지에는 레스토랑의 얼굴이 없다. 아코르의 웹사이트, 페어몬트의 웹사이트, 앰버서더 어느 곳에도 누가 이곳의 총책임자인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 레스토랑이 OAD같은 평가 업체에서 말하는, 고전적이거나 해리티지가 있는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곳들은 오히려 반대로, 오랜 세월 끝에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경우에 해당한다. 마리포사의 요리세계를 확립해줄 어떠한 근거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추측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이 레스토랑은 셰프 드 퀴진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레스토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서울 호텔의 몇몇 한국식 중국 요리 레스토랑이나 호텔 바깥의 고급 외식을 구성하고 있는 고기구이집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런 곳들에서 객들은 주방의 사람들은 익명이다. 단지 경영자와 객의 사이에서 양자가 원하는 것을 수행하는 보조의 역할을 떠맡는다. 이런 곳들은 제아무리 값비싸거나 호화로운 경우에도 미식Gastronomy, 그 정의에 관해, This, H. (n.d.). Questions and answers - Hervé THIS, vo Kientza. Questions and answers. https://sites.google.com/site/travauxdehervethis/Home/et-plus-encore/pour-en-savoir-plus/questions-and-answers. 의 관심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추정들은 곧 깨뜨려진다; 레스토랑의 홈페이지는 책임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요리 세계를 추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러피언 퀴진"이라고 한다. 이는 결코 앞선, 용역 중심의 레스토랑이 추구해야할 어휘는 아니다. 해석은 요리사의 주관의 개입을 뜻하기 때문이다. 영문 홈페이지에서는 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현대 유럽 요리라는 표현 자체가 매우 알쏭달쏭하다. 유럽 사람도 오늘날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데, 누군가의 고집이라는 의심과 동시에 의문을 해소하고픈 욕망도 생긴다. 지역 재료/생산자의 어설픈 강조는 홑진 기교에 불과하게 보이지만, 메뉴에 올린 요리들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 실체가 존재하긴 한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판단은 직접 마주한 뒤로 미루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방문 전

마리포사의 예약은 페어몬트 앰버서더 서울의 홈페이지와 네이버를 통해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며, 아코르 홈페이지에서는 불가능하다. 이외에도 유선상과 이메일을 통한 연락이 가능하다.
예약시 확인 전화 한 번, 방문일 이틀 전 재확인 전화가 있고 당일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요리

"Sik-Jeon" Brioche, Baguette 식전빵

그래, 또 빵이다. 제임스 비어드 선생님께서 이르시길, "좋은 빵은 모든 음식을 가장 근본적으로 만족시킨다. 좋은 빵과 신선한 버터, 축제 중 으뜸이다"라고 하셨다. 비단 선생님 뿐인가? 르네 레드제피 이야기는 이미 다뤘다. 이외에도 예시를 서줄 선생님들은 무수하다. 그 누구도 빵을 무시하지 않는다.
특히나 이렇게 많은 요리들을 떠받치는 코스 요리의 경우에 빵은 더욱 중요하다. 탄수화물의 역할과 동시에 빵 스스로의 풍미가 더해져 감각을 더욱 밀도 있게 자극하고, 질감의 대비에 등 감각적 재미에 더해 식사 전체의 만족도까지 높이며 전체적인 흐름을 아우른다. 서구식 정찬에서 빵의 완성도는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밥이 엉터리인 스시나 한정식, 토르티야가 맛없는 타코는 그 자체로도 맛이 없지만 정서적인 공허함까지 전달한다.

물론 모든 설정들이 변주 가능한 파인 다이닝에서는 빵에게 고전적인 기준만을 들이밀지 않을 수도 있다. 강렬한 신맛의 사워도우나, 경우에 따라서는 발효를 간단하게 거친 플랫브레드 등 드넓은 빵의 세계에서 재량을 누릴 수 있다. 특히나 레스토랑의 자기 표현의 성격을 중시하는 근래의 파인 다이닝에서는 이러한 재량의 영역은 더욱 넓어진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리필이 되는 식전빵"이라는, 여지를 남기되 식전빵의 전통과 타협한 빵의 서빙 방식부터 살펴보자. 브리오슈와 바게트, 버터의 브리오슈와 그렇지 않은 바게트라는 이해하기 쉬운 설정인데, 달걀을 입혀 강렬한 색을 입히지 않은 브리오슈의 색에서 첫 불안감을 감지한다. 아마도 바게트-버터, 브리오슈-당근/생강 퓨레의 짝일텐데, 당근 케이크같은 물건을 떠올리라는 설정일까? 비교적 쉬운 난이도 덕에 유행했던 당근 케이크의 유행 이후 당근 수프를 연상케 하는 퓨레와 브리오슈를 마주쳤다. 진정으로 이 빵 대접이 "식전빵"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어때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게 제대로 굴러가는 지는 모르겠지만, 오로되브르를 여러 종류 깔아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입거리 빵과 퓨레는 식사의 곁들이보다는, 독립된 요리로서 역할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추측에 불과하므로, 추측에 따라 식사에 우선하여 먹어도 보았고 식사와 곁들여서도 먹어보았다.

우선 식사 이전의 취식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당근 퓨레는 적당한 단맛을 지녔으되 브리오슈는 조금 열악했다. 브리오슈의 은은한 단맛-버터향은 생강/카르다몸 등의 향과 훌륭하게 어울리는데, 그 조합을 완성하기에 브리오슈의 버터향과 부드러운 질감 모두 기준선에 맞지 않는다.

바게트는 어떠한가. 또 다시 미니 바게트인데, 단순히 바게트를 작게 만들어 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 아니다. 표면적과 부피의 비율이 얼마나 극적인 차이를 보이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작은 반죽은 보통 반죽만큼 두터운 껍질을 형성할 수 없고, 또 기공을 형성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문제는 계속된다. 극단적인 사워도우라면 과장 좀 보태서 이 바게트 반지름 정도의 지름을 지닌 기공이 생기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작은 바게트는 모자란 껍데기, 또 빽빽한 속을 지닌다. 잘 구운 바게트를 잘 보관하다가 썰어서 내는 경우보다 나은 것은 없지만 빵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어찌저찌 이러한 상태로 나온다. 구워서 내는 향이 기대를 조금 심어주지만 버터를 마주쳤을때 빵은 무기력함을 드러낸다. 버터의 지방에 한없이 짓눌린다. 얇은 껍데기라고 해도 껍데기 째로 뜯어야 하기 때문에 귀퉁이를 뜯는 에티켓의 실현도 어렵다. 그럼에도 바게트를 내기로 했다면 이 안에서 나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바게트의 "식전빵"으로서의 전유?

Mise-en-Bouche Mariposa 아뮤즈 부쉬
Lini 910, Lambrusco Rosé Metodo Charmat, Emilia Romagna NV

편한 선택일 수 있는 샴페인-프랑스 스타일의 아뮤즈/오로되브르에 기대는 대신 지중해의 영향력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나는 이 순간 유러피언 퀴진을 다시 곱씹었다. 람브루스코라니. 산도와 탄산이 합쳐져 zingy/crispy라는 표현을 이끄는데, 단맛 위주의 "식전빵"이나 새우와 그럴싸하게 시작을 만들어낸다. 서울의 전형적 격식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을 착실하게 비틀어내어 그럴싸한 합리적 세계로 되돌린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 방식으로 경험은 빚어진다.

이 와인을 앞으로도 쭉 식전주-와인 짝짓기와 잔술 옵션에 있어서-으로 쓸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 안전하고 감흥 없는 짝짓기, 구색 맞추기식의 음료를 내놓지 않겠다는 의지는 높이 사면서도 와인과 함께 곁들여지는 콘셉트의 구현이 과연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Grace Winery, Koshu de Gris, Yamanashi, 2017

두 번째 앙트레와 수프와 짝을 맞추는 이 와인의 경우 식사의 흐름에 대해 다루면서 함께 읽도록 하자. 사족 하나 덧붙이자면, 소믈리에 뱃지를 달고 있지 않은 서버들에게 와인 서빙을 맡기면서 교육은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질의 모자람이다. 직원이야 교육받지 못했으니 그럴 수 있지만 그런 직원을 일손이 바쁘다며 내보낸 백오피스는 부끄러움이 없는가.

Crab Tartare, Deep Ocean Caviar, Watermelon 게살 타르타르, 딥오션 캐비어, 수박

Tomato, Grilled Eggplant, Straciatella, 6years Red Wine Vinegar 토마토, 그릴에 구운 가지, 스트라치아텔라 치즈, 6년 숙성 레드와인 비네거

장황한 설명이 곁들여지는 섬진강 심해 캐비어는 잉여였다. 캐비어를 저만큼 올리고도 이렇게 엷다니. 알의 품질을 위해 물고기를 키우는 것도 키우는 것이지만 특유의 보관법 덕분에 높은 짠맛과 감칠맛으로 사랑받는 재료라는 걸 감안하면, 과연 경영판단이라고 전제하고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웠다. 이게 진정 신임과 선의에 기초한 결과물이란 말인가?이러한 기준에 관해, 큰 의미는 없지만, Aronson v Lewis, 473 A.2d 805 (Del. 1984)

캐비어는 잠시 덜어내 두면 두 요리는 하나의 주제, 샐러드를 관통한다. 영국 등지에서 흔히 보이지만 그 뿌리는 알기 어려운 수박과 게살의 조합은 게살의 짠맛과 지방-수박의 수분과 단맛의 상보관계에 기반하는데, 이러한 단순한 추론보다도 결과물이 훌륭함에 놀랐다. 캐비어가 비록 여전히 잉여에 불과한 인상이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마요네즈로 하나의 훌륭한 과일 샐러드를 완성했다. 마요네즈를 잔뜩 버무린 사과는 우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가? 물론 마요네즈에 버무린 사과는 왈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이라는 명확한 기원이 존재하는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인 이해에서는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 짠맛과 지방을 절묘하게 찔러주는 전채는 식사의 기대를 높이는데, "모던 유러피언"이라는 주제는 이 요리의 경험에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 듯 하다.

이에 반해 아래의 토마토-가치-치즈-와인 비네거의, 마치 장화 모양으로 빚은 듯이 그 반도를 떠올리게 하는 요리는 다시 전형적인 유럽을 강하게 주장하는데, 서비스 과정에서 키안티라는 단서를 제공함으로서 관심이 없는 객에게도 그쪽 방향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치밀함이 있다. 주방의 의도가 느껴지는 점은 치즈인데, 치즈에 대해서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 어떻게든 계절을 맞은 스트라치아텔라를 빛내려는 솜씨가 돋보인다. 물론 현실을 감안해야 할 기대치의 조정은 필요하다.
과육을 전시하는 듯 하면서도 토마토의 향과 지방이 맞설 수 있도록, 또 초(醋)에서 향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취해진 기술적 조치들의 섬세함을 높이 산다. 가지의 수분도 잘 잡았고, 단맛도 적절히 녹아든다. 자연스레 치즈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플레이팅 또한 치밀하다. 그러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연 강수량 1000mm를 가뿐히 넘는 땅에서 지중해를 향한 동경은 한계를 갖는다.

두 가지 샐러드를 놓고 보면 하나 하나가 적절한 수준의 요리지만, 코슈 와인과 함께 흐름을 보면 자뭇 식사는 흥미진진해진다. 앞선 람브루스코와 흐름이 이어지면서도 과실, 산도의 뉘앙스가 선명한 와인은 향은 수박-토마토의 향과 자연스레 짝을 이뤄 전체를 완성하는데, 돌이켜보면 마요네즈-게살과 흰 치즈-오일이라는 지방이 이끄는 풍미는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와인과 요리, 빵까지 총체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험의 전채 요리를 완성한다. 각기 모두 다른 환경에서 발전한 요리들이지만 마치 한 군데에서 같이 자란 듯이 어울린다. 이것이 마리포사가 요리를 내는 방식인가? 그렇다면 나는 환영한다!

Sweet Pea Velouté, Seared Shrimp, Crema di Burrata 완두콩 스프, 구운 새우, 부라타 크림

다음으로는 수프를 내는데, 앞선 요리들과는 달리 전형적인 것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프랑스식, 그것도 유지방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쪽이라면 특별히 요리 자체를 뜯어볼 것은 없는 가운데, 스프 가운데 새우만큼은 눈에 띈다. 과연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전체적으로 지방이 고루 분포하여 스프 자체가 완성에 가까운 가운데 선명하게 짠 맛을 간직한 새우가 놓인다.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액체가 전체를 감싸는 요리의 경우 핵심은 그 액체 안에 있다. 스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면이나 밥 대신 어떨 때는 이렇게 병존하고, 어떤 때에는 크루통으로 올라오는 빵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런 맥락에서 새우는 라멘으로 치면 차슈, 국수의 고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몸뚱이와 치장의 가락이 전혀 다를 때에는 불안이 엄습한다. 스프의 지방이 전체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껍질의 내음도, 살의 단맛도 아닌 새우의 짭짜름한 감각은 생경했다. 아니, 익숙해서 생경했다. 마지막에 넣고 다시 볶아서 완성하는 우리네식 중화요리 볶음밥의 새우의 이상향과 꼭 닮은 모습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나는 스프를 그 자체로 존중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으로 이해했다. 들어간 단백질이 요리의 귀천을 가르는 문화에 대한 답변.

Valensico, Blanco, Rioja, 2019
Grilled Octopus, Citrus Potato Cream, Salsa Verde, Romesco, Burnt Lemon Thyme 그릴에 구운 문어, 시트러스 감자 크림, 살사 베르데, 로메스코, 레몬 타임

국내에서도 이제는 흔히 만날 수 있는, 갈리시아-스페인 계통의 요리에 스페인 와인이라는 설정은 주제를 자연스레 스페인으로 이관하는데 성공하면서도 일견 아쉬움을 남기는데, 오크 터치의 뉘앙스가 짙고 어린 와인은 프랑스 아닌 것으로서의 무언가로 설득력을 높이지 않는다. 퓨레부터 모든 요리가 문어에 대해 대비를 이루지 못하는 점 또한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후각에 가까운 기관에서 오는 쾌락이 아닌 촉각-미각의 쾌락적 요소의 부재가 눈에 띈다.

물론 문어가 그만큼 중요한 주제이고,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면, 이러한 설정에는 문제가 없다. 빵도 있고, 와인도 있다면. 하지만 그릴에 구운 문어라는 주제를 생각했을때, 그리고 로메스코 소스와 같이 감칠맛이 짙은 소스, 부드럽다고 해도 최소한의 곱씹는 횟수를 유지하는 문어를 생각하면 감자 퓨레는 단순한 물감이 아닌 전분을 바탕으로 매개체 역할도 해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힘이 없을 뿐 아니라, 통상적인 스페인 문어 요리처럼 문어와 함께 입안에서 맴돌지 않고 조금씩 씻겨 내려간다. 문어는 스페인 요리-그릴이라는 맥락에 빗대었을 때 지나치게 점잖아, 파인 다이닝의 단계에서 재탄생한 고전 요리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되지 못했다. 일상의 요리를 순간의 쾌락으로, 잊혀야 비로소 그 소중함이 드러나는 친근함에서 순간적으로만 느끼고 이내 계속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황홀경으로 가는 것이 쾌락적 식사의 출발선인데, 시각적으로는 그를 만족하되 나머지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두족류의 다리는 통상 두 개보다는 많기 때문에 정서적인 만족의 요소도 아닌데, 의향을 읽기 어렵다.

그럼에도 살아남는 부분이 있다면 두 소스다. 살사 베르데와 호흡을 맞추어 내는 풍경은 피레네 이남 이베리아를 넘어 세계 요리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로메스코 소스는 스페인 해양 문화의 위대함을 품었다. 감자 퓨레와는 달리 곧바로 씻겨내려가지 않고 문어와 함께 최소한 버텨내는 점성이 있었는데, 파프리카 과육 뿐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면 잘 빚었다고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접객원이 객을지나치게 낮은 수준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문제를 발견했다. 와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파프리카 그릴에 굽는건 유명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몇차례 소개하지 않았나. 파인 다이닝의 단계에서 논해야 할 지점은 마치 '밥은 쌀을 물에 불렸다'같은 단계가 아니다)

Abalone, Black Garlic ,Leek Fricasse 전복, 흑마늘, 대파 프리카세

흑마늘! 이 요리는 아마도 레스토랑의 경영진의 결단을 가장 아름답게 승화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크게 보아 연체동물문으로 묶이는 전복의 살은 관자와 같이 버터향과 훌륭하게 어울린다. 감칠맛을 풍성하게 품어도 은근한 향이 거스르지 않으므로 스스로의 짝인 내장을 곁들이거나, 한껏 건조하거나 간장이나 굴소스와 같은 풍성한 감칠맛을 곁들이기에도 좋다.
그 검은 감칠맛에서 흑마늘을 떠올린 아이디어는 보자마자 기대를 높였다. 흑마늘이 바로 감칠맛 아닌가! 이제는 스테이크를 구울 때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는 소리를 뉴 미디어 덕분에 모르는 사람들이 없지만, 흑마늘 또한 마이야르를 통한 감칠맛을 품는다는 사실은 자주 잊힌다. 단지 시간을 지내기 때문에 발효로 오해받기도 하고, 또 그러한 가공을 통해 얻는게 약효라는 지배적인 견해 떄문에 흑마늘은 쥐어짜여 고통받지만, 고온에서 마이야르를 끌어내 만드는 마유マー油의 쓰임새를 생각하면 흑마늘 그 자체의 풍미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고추가루보다도 마늘의 민족이라는 농담이 성행하지 않는가. 한국의 식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도 마늘은 등장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흑마늘이 마이야르 반응을 통한 감칠맛을 지니기는 하지만, 앞선 문제 때문에 통상 감칠맛의 기원으로 주목받는 전형적인 조미료들에 비해 역시 호적수가 되지 못하는 점은 주방이 극복해야 하는 한계이다. 간장이나 굴소스에 비하면 활용하기에 감칠맛은 모자라다. 대신 마늘 고유의 풍미에 더해 숙성 과정에서 변화하기도 했으니, 가능성은 있으되 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더욱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파의 경우도 마찬가지. 대파라고 하지만 서양 파와 동양 파의 성질의 차이를 감안하고, 또 쓰임새의 차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파의 어느 측면을 살리고 어느 측면을 버릴 것인가. 레스토랑 오픈 때 만들어진 메뉴인 만큼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세히 뜯어보지는 않겠다.

Maal Wines, 'Biutiful' Malbec, Mendoza 2018
Grilled Hanwoo Beef Striploin, Forest Mushrooms, 7days fermented Mushroom Vinegar, Chimichurri 숯불에 구운 국내산 한우 1등급 쇠고기 채끝 등심(110g), 계절 버섯, 7일동안 숙성한 버섯 비네거, 치미추리소스

오크 터치가 짙은 와인에 이어 고기 요리에는 오크 대신 시멘트에서만 시간을 지낸 말벡. 이쯤되면 음료의 흐름에서 여러분도 명확한 흐름을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메인 요리를 "Hanwoo"를 고를 일은 개인적 차원에서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단품을 제공하던 당시 이 요리를 시그니처로 정했던 주방의 판단을 존중하여 비평에서는 이 요리를 다루기로 하였다.

굽기를 객에게 물어보는 시점에서, 버섯과 버섯 소스, 그리고 한국의 풀을 곁들인 치미추리가 주제로 나선다. 달래의 뿌리 내지 락교, 혹은 달래의 뿌리를 락교로 만든 듯한 뿌리에서 달래 치미추리로 이어지는 설정은 또 다시 기대를 부풀린다. 달래 특유의 향은 거의 죽어서 느껴지지 않고, 단지 적당한 치미추리라고 할 정도여서 이러한 기대는 애석하게도 무너졌다. 아무래도 들녘의 달래들은 이미 풍미가 좋은 시절이 다 지났으니 어쩔 수 없다. 레스토랑의 오픈 당시에서 시간이 썩 흘렀지 않은가. 사계절 뚜렷하다고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땅에서 그 때의 설정이 계속될 수는 없다. 아이디어 자체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정비할 충분한 여유가 있었음에도 플레이팅 정도만이 바뀌었다면 아쉬움은 감출 이유가 없다.
외려 치미추리-비네거가 이어주는 신맛을 통해 즐거움이 위치하는 지점은 버섯이다. 특유의 버섯스러운 향이 강하지 않지만 질감이 경쾌해서 쇠고기와 멋드러지게 이어진다. 빵-버섯-쇠고기의 삼중주가 조화롭다.

여전히 메인은 스테이크-칼 고르고 굽기 고르는 것이 고급 외식이라는 장벽에 갇혀있는 현실을 처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메뉴지만, 그냥 쥬 뿌리고 적당한 트러플 옵션이나 바르는 대신 소스를 통해 전체적인 요리의 주제 의식을 연결하려는 시도에서 나는 열정을 읽는다. 또 다시 경영판단인가? 나는 이 도시가 싫지만 이 주방을 미워하지는 못하겠다.

Pilliteri, 'Frozen Tundra' Vidal Icewine, Ontario 2019
Douceur 75%:Dark Chocolate, Frangelico, Mascarpone Cream, Espresso 프렌치 75%: 다크 초콜릿, 프란젤리코, 마스카포네 크림, 에스프레소

영문으로 제공되는 이름과 한글의 이름이 다른데, "프렌치 75"라는 기호와 레몬 모양을 마주하면 특정한 인상이 떠오르지만 그와는 놀라우리만치 무관해서 더 놀라웠다. 그냥 우연이었던 걸까. 아마 이 숫자는 커버춰의 숫자이리라. 다른 퍼센티지의 메뉴가 있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이런 모양의 몰드를 샀기 때문에 기왕에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레몬은 형태에 불과하고 실제 주제는 티라미수다. 커피 샷을 마지막에 뿌리는 설정으로 플레이팅 디저트라는 형식에 대한 고민을 담았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여러모로 모자라다. 강렬한 커피의 표현은 티라미수의 본질을 꿰뚫고 있지만 부숮거 요소들, 이를테면 레몬 속을 채운 크림들은 낮은 온도에서 지나친 점성을 지닌데 비해 단맛이 모자라 식사의 여운을 끊어내지 못한다. 디저트 와인이 거들지만, 국내의 여러 레스토랑 주방에서 반복되고 있는 패스트리 섹션의 열악함의 반복이다. 그나마 고전적인 제과를 접시에 올리고 접시 빈칸에 무언가 색을 채우는 것만으로 플레이팅, 파인 다이닝 수준의 디저트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몰드도 정답은 아니다. 시각화를 통한 새로운 정체성의 부여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Darjeeling

차에 곁들일 수 있는 단맛의 종류는 호텔의 격에 걸맞는 품격을 지니고 있다.


총평: 페어몬트 앰버서더 서울의 레스토랑으로서 마리포사는 살펴보았듯이, 셰프를 내세우지 않고 있으며, 모던 유러피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셰프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고, 유럽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요리를 한다. 좋은 맛을 지닌 재료에 대한 거리낌이 없으며, 맛을 완성하기 위한 기술적 설계에 있어서도 섬세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또한 코스로 이루어지는 식사가 단순히 여러 접시를 이어붙인 것이 아닌, 이어져 하나의 흐름을 완성해내는 점에서 발견하기 힘든 탁월함이 있다. 파크 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 건물이 두고 무슨 법석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래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주방은 서울 여러 곳의 호텔들이 가지지 못한 독특한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각 요리의 설계에 있어, 기저가 되는 빵부터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이루어내는 기본적인 질감-풍미의 대조를 활용하지 못하는 점은 뼈아프다. 풍미는 그 자체의 풍미가 짙은 재료를 써 어찌 할 수 있을지라도 이러한 질감은 온전히 주방의 숙련도를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생각을 들게 만든다. 반복 숙달의 왕도를 거친 숙련도의 확보가 절실하다. 그릴 등 전통적인 열원의 활용은 여전히 경험에 의한 직관에 많은 것을 의존하지 않는가.

맛에 대한 열정, 식사의 즐거움에 대한 열정을 지닌 요리들을 만들고 메뉴를 설계한다. 셰프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혹은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듯한 배경 아래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 세계 곳곳의 지혜를 담고 현대 요리의 기민함을 갖췄다. 현대 서울의 거주자로서 느끼는 식도락에 대한 갈증의 요소를 조목조목 짚는다. 비록 올바르게 짚은데 비해 처방이 모두 탁월하지는 않지만, 지루한 레스토랑으로 남기로 하지 않았다는 결정만큼은 확고하다. 기념일의 장식품이나 비즈니스를 위한 접대를 넘어선 맛을 향한 애정이 있다. 캐비어와 전복 등의 일부 재료는 주방의 바깥의 편견을 반영하지만, 메뉴들은 모든 재료를 고루 사랑하고 있다. 수박부터 흰 치즈와 완두콩, 이제 절정에 오르기 시작한 감자까지, 따사로운 계절을 온전히 담은 재료들이 가득 채운 한 끼 식사는 "모던 유러피언"-누벨 퀴진-의 정신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보퀴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더 이상 하인이 아닌 자산가가 된 요리사의 모습. 객만큼이나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요리. 이 글이 본질적으로 비평이기 때문에 주로 조리를 비롯한 빈칸을 말하게 되지만, 훌륭한 지점도 풍성하다. 먹는 쾌락에 대해서 어설프게 양보하거나 둘러대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한국인의 편견에 젖은 파인 다이닝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데, 앞으로 이 정신을 어떻게 유지하고 빛낼지가 주방의 과제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두 번째 고가 메뉴의 두 배에 이르는 최고가 메뉴에 다다르면 갑작스레 오리가 등장하는데 매우 놀라운 설정이 아닌가. 그만한 가치의 오리라는게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매우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분위기: 다운템포~프렌치 하우스 위주의 선곡과 조명이 형성하는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공기가 주는 각별한 흥이 있다. 다소간 마음을 한껏 열어도 좋을 분위기.

서비스: 접객의 숙련도가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뒤섞이고 있는 점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지점. 계획대로 진행되었을 경우 서비스는 몇몇 탁월한 지점마저 있어 더욱 아쉽다. 절제된 친근함을 더하고 두려움을 덜어내야 한다.

가격: 점심의 짧은 코스는 KRW 75000부터, 테이스팅 메뉴는 KRW 150000~500000.

음료: 고전적인 형태의 리스트와 그렇지 않은 리스트가 있다. 전자는 지나칠 정도로 안전한 선택에 머물러 지루함을 넘어선 수준이라면 후자는 음료를 향한 열정이 보인다. 와인 페어링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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