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스 - 2025-2026년 겨울


















본지의 독자라면 이 식당에 대해서는 이제 다소의 이해가 쌓였으리라 생각한다. 객관적인 정보건, 이 식당에 대한 본지의 견해이건 간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고, 올 겨울 이 레스토랑을 서로 다른 시간대, 서로 다른 날짜에 방문한 이야기를 간단히 담아보고자 한다.
확립된 스타일: 몇몇 재료나 기법에 대해서는 이미 확립된 견해가 존재하는 주방이라는 점이, 내가 이곳을 계속 찾는 이유라고 할 것이다. 예컨대 육류의 숙성에서 오는 감칠맛과 치즈를 바탕으로 한 소스-야채의 단맛으로 마무리하는 채끝과 같은 요리가 그렇다. 뼈나 육수가 아닌 치즈로 겹겹이 감칠맛을 쌓은 형태의 쇠고기 요리는 분명 서울에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민어에 껍질로 바스크의 필필을 응용한 소스, 푸름 당베르 치즈에 얇게 깎아낸 배로 시작하는 차가운 시퀀스에서 덧없음을 넉넉히 보여주는 클라푸티로 나아가는 디저트의 온도 흐름(따뜻한 차가 방점을 찍는다)과 같은 것들은 이 주방이 분명히 내린 결론이다. 모두가 이 레스토랑을 '지중해'라고 지칭할 때 나는 특히 바스크 지역의 짙은 영향을 보았는데(이는 아래 글 참고), 지금은 바스크와 피레네로만 설명할 수 없는, 독자적 견해를 여럿 보이고 있다.
과일과 뿌리: 기가스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라면 채소와 과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겨울에 특히 빛을 발하는 것은 귤, 그리고 비트다. 귤은 다년간 조개와 짝을 맞춰 초반의 차가운 단맛의, 싱그러움을 내세우는 자리를 지키고 있고, 비트 역시 올리브유와 발사믹으로 남유럽 특유의 정서를 그려내는 역할을 도맡는다. 후반부의 단백질 분해에서 오는 감칠맛과 집중된 짠맛이 썩 기술적이라면, 초반부의 단맛은 쩍 자연적이다.
덧없음: 국내에 있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자주 발걸음을 하는 곳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인 이유라면 이곳이 지닌 덧없음-ephemerality- 때문이다. 하나는 요리 자체가 가진 덧없음이다. 확고한 의견 덕분에, 순간적으로만 존재하다 사라지는 질감이나 맛의 레이어를 경험할 수 있다. 습관적으로 뿌려내는 소금과 후추는 이곳에 없다. 오리 위의 투명한 소스, 잠깐 공기를 마셔 부풀어 오른 소스에는 강한 주관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미시적 덧없음 외에도, 계절과 시간의 풍파를 맞아가며 등장하고 사라지는 요리의 덧없음도 존재한다. 엘 불리는 아니기에 자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새롭게 등장하고 또 사라지는 영감의 원천을 마주하는 재미가 있다. 감히 계속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기에 곧잘 사라지지만, 그렇게 순간의 주인공이자 지나가는 과거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 삶의 재미가 아닌가? 마치 예니 에르펜베크의 정원사가 되는 것처럼, 이곳의 요리는 덧없음을 느끼도록 한다.
약간의 낙관: 몇 테이블 없는 공간의 넉넉함이 경험을 지배하지만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는 자동문 뒤로 분명한 긴장감이 존재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오싹함이 느껴지지만, 막상 이곳의 경험에는 다소의 낙관주의가 서려 있다. 낮의 식탁 위 소박하게 놓인 열매들이라던지. 재료를 다치지 않게 하는 튀김이라던지 요리가 식어가는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라던지 하는 것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같이 보기: 기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