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오오지 로산진의 오리

기타오오지 로산진이다. 국내에서는 「맛의 달인」의 독자들이라면 이름을 들어봤을 성 싶고, 이제는 스시 팬들이 많아진 만큼 "로산진을 잘 아는 것"의 가치 또한 크게 올랐으리라 짐작한다.

로산진의 유일한 음식 평론서인 「春夏秋冬 料理王国」이라는 책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국내에도 역본이 있고, 저자 사망 50년이 지나 구법하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된지라 인터넷에서 원문 열람도 가능하다. 네이버에서 본 사이트로 적을 옮긴 뒤 한동안 로산진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요새 다시 그의 이름을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낀다. COVID-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인한 공중 보건 문제가 심각한 지금, 독자들에게 안전한 곳에서 즐길 거리를 제공해보고자 한다.

로산진이 프랑스에서 오리를 먹은 일화다. 프랑스의 오리 요리를 맛보러 프랑스의 역사적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Tour d'Argent(참고로 지금도 있고 일본에 분점도 있다)에 방문했다. 루엔 지방식 누른 오리요리는 지금도 이곳의 시그니처로, 당시에는 주먹 좀 쓴다는 사람들이면 한 번은 방문하는 인기 좋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그가 당시 프랑스에서 받은 서비스를 묘사하는데, 아마도 전형적인 실버 서비스service à l'anglaise, 서비스용 집게와 족집게(Tongs & Pince)를 이용하여 큰 접시에서 덜어주는 식의 만찬 방식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러한 제공 방식에 불만이 많았다. 오리를 부위에 따라 잘라서 제공해주며 익은 요리에 주를 부어서 풍미를 더하는데, 지금도 이 요리를 내놓는 방식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주방과 테이블을 오가는 오리를 보고는 실망했다. 이미 가장 좋은 조리 상태를 아득히 지난 나쁜 고기의 상태를 소스의 풍미로 가리려는 시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반세기~1세기 이전까지 실제 프랑스 요리가 그런 방식의 사고를 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랍다) 그래서 그는 과장한 표현까지 보태가며 이러한 오리 조리의 상태를 지적했고 결국 예외적으로 곧바로 조리한 오리를 받아들었다. 오늘날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일본 요리집들이 전부 재료의 날것 상태의 전시부터 시작해서 주방에서 카운터 탁자에 이르는 서빙 시간까지 최소화한 동선을 짜게 된 계기가 이런데 있다.

그렇게 최선의 오리를 받은 그는 무엇을 했는가. 앞서 말한 고기를 가리는 맛있는 소스를 먹는 대신 주머니에서 준비한 도구들을 꺼내 들었다. 다츠노시당시 하리마, 현재 효고 현에 위치한 도시의 우스구치 간장과 분말 와사비였다. 즉석에서 간장에 물을 타고 와사비를 풀고 식초를 곁들어, 한국식 횟집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디핑 소스를 만들었다. 레스토랑의 웨이터들은 모두 모여 이 일본인의 기행을 구경했는데, 그는 아랑곳 않고 일본적인 맛을 즐겼다. 동행했던 일본의 소설가 오오카 쇼헤이는 그 맛을 두고 "일본의 맛"이라며 격찬했다. 부활을 생각하게 하는 맛이라고 했다. 프랑스 유학파, 이후 뉴욕에서 활동한 작가의 긴 이국 생활동안 잊었던 고국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고 그는 생각하고 기록한 듯 하다. 과연 주변을 둘러싼 서구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로산진 본인이 알면서도 경우를 지키지 않는 기인이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식문화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오리 조리가 어떻게 되건 레스토랑을 거쳐간 명사들-왕부터 대통령, 마를레네 디트리히까지-의 이름에 짓눌려 찬사만 뱉어댔을 테다. 반대로 서구 문화를 잘 알고 잘 배운 사람이라면 불만이 있어도 에티켓에 따라서 레스토랑의 룰을 존중하고, 그 나라의 식문화를 존중하여 간장을 꺼내드는 경우 없는 짓거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땠는가? 나는 레스토랑에서 적게 논쟁한다; 어차피 이 도시에서는 뭐라고 말해도 주방에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구어로 전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기왕에 들리지 않을 바에는 근거와 논리적 흐름 등을 정비하여 문어로 남기는게 낫다 싶어 이렇게 남길 뿐이다. 물론 논쟁이 가능하다고 해도, 로산진의 방식을 따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후 현대 식문화를 보면 절차 하자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세계는 로산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보퀴즈와 로부숑을 필두로 하여 프랑스 요리가 쿄요리의 정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버린 것이다. 비록 와사비 간장에 오리 프레스를 먹는 시도는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조리로 인한 변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만을 붙잡고자 하는 고집, 재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속성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자 하는 태도는 남았다.

로산진에게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옷주머니에 간장을 숨기고 들어가는 비범함은 배우지 않더라도 감히 좋은 요리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은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학자가 아닌 학생이다. 답을 내보고 답끼리 부딪혀가며 그 교통에서 배우고 느껴야 한다. 물론, 로산진은 점쟁이와 같은 인물이 아니다; 이런 배짱을 가지기 위해 그는 많이 겪고 많이 기록하고 많이 행동하려 노력했다. 이 와사비 간장 에피소드에서 빠진 뒷얘기가 있다.

만족스러운 오리 식사를 한 그는 식후주로 브랜디를 청하자, 레스토랑에서 친절하게도 그를 까브로 초대하여 좋은 브랜디를 대접했다. 잔으로 권한 브랜디를 즐기자 선물로 챙겨 주겠다고까지 나섰다. 동행의 일본인들은 반겼으나 "선물이라고 좋다고 마셔버릇한다면 일본인의 수치다"며 책망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호스피탈리티의 측면이라고 이해하더라도 정도를 넘는 유혹적인 제안은 거절하는, 평론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그 뒤에는 가축 오리(아히루)와 야생 오리(카모)를 구분해야 함을 언급하며 이 오리는 가축 오리에 해당한다고 당부를 남겼다. 실제로 보고 알았는지, 맛으로 알아낸건지 모르지만 당시 일본인들은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짚는 그의 통찰은 날카롭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날 먹은 오리가 가축 오리로서는 맛있었다고 말하며 글을 맺는다.

로산진은 니콜라스 쿠르티-에르베 디스-네이선 미어볼드/프란시스코 미고야 등으로 이어지는 미식 분야의 자연과학적 이해의 대두 이전의 인물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의 결론을 다짜고짜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미 그가 제안한 식문화는 이미 일본 요리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그 삶의 방식, 요리를 대하는 태도는 삶을 바꿀만한 힘이 있다. 로산진의 에피소드 하나로도 우리는 몇 가지를 다짐할 수 있다. 공짜에 굴복하는 식도락가가 되지 말자, 재료와 조리에 관심을 가지고 틀을 깨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문화권마다의 예의범절에 대해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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