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겐 다즈 - 허니&그레이프프루트
유니레버코리아가 여름 이전까지 아이스크림 사업에서 특별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 가울부터 봄까지 하겐 다즈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개인 가게들 역시 비수기를 맞아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으나? 신메뉴 알리미로 살 요량은 아니므로 언급할 가치 있을 때 따로 다루겠다.
하겐 다즈의 "만들기 어렵지 않은 베이스+펙틴의 겔화(gelification)를 이용한 스월"의 시도는 이제 본 블로그에도 충분히 언급이 집적되었으므로 굳이 반복하고 싶지 않은데, 이번 꿀과 자몽은 산업 단계에서 생산되는 아이스크림 파인트로서 한 단계 높은 즐거움을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바탕이 되는 아이스크림의 충분한 쓴맛이다. 자몽의 씁쓸함이 추구되어야 할 첫 번째의 특징까지는 아니지만, 만다린이나 금귤 등 여타 시트러스와는 구분되는 "팜펠무제-포멜로-자몽" 계통의 풍성한 쓴맛이 아이스크림 베이스 전체를 감싼다. 다행히도 전형적인 하겐 다즈 방식의 고지방 아이스크림이므로 우리는 쓴맛과 단맛 사이에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의 제조 여건상 쓴맛에 맞설 수 있는 단맛의 단계까지 닿기가 어려우므로 자연스레 추가적인 가당을 일종의 토핑으로 처리했는데, 이것이 참으로 영리했다. 어설프게 얼다 만 꿀은 참사를 낳지만 천천히 흘려내 얇게 얼어붙은 꿀은 더 이상 아이스크림의 촉감을 방해하지 못한다. 회전하는 모터에 따라서 회오리 모양으로 얼어붙어 있는데, 전례와 같이 쏟아붙어 흐르는 경우에 비해 월등하다.
자몽향이 풍성한 음료의 느낌보다는 기본적으로 아이스크림이라는 인상인데, 마지막에서 강한 단맛과 강한 쓴맛이 어울리며 초콜릿 유사의 인상을 자아낼 때 그들의 성공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초콜릿의 열쇠가 되는 코코아로 대표되는 그을린 향이나 견과향은 없지만, 달고 쓴 가운데 풍성한 지방의 신호를 받자 뇌가 자연스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출력한다.
물론 "자몽"이라는 신호를 두고 어째서 신맛이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한 기대가 있다면 이 제품은 아마도 저질의, 자몽 수염만으로 만든 제품이라며 힐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과일맛 소르베에 질린 인생이라면 과일맛 아이스크림의 새 가능성을 결코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