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겐 다즈, 피나 콜라다

하겐 다즈, 피나 콜라다

계획 외의 일로 블로그에 또 아이스크림 이야기로 여러분의 속을 썩였다. 나는 알고 있다. 요리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 논하는 일이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고. 글은 짧을 수록, 칭찬 일색일 수록 팔린다. 물론 그런 홍수 속에 질린 사람들이 있으리라. 단 한 명이라도, 똑바로 마주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글을 쓴다.

서울의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경쟁적으로 한 달에 하나는 새 메뉴를 내고 그중 대부분은 극도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반복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업체들 또한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이 피냐 콜라다는 놀랍게도 달랐다.

화이트 베이스에 코코넛 청크를 조금 우겨넣은데 불과했던 전작을 떠올려보면, 네슬레가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미국의 씬에 비해서 프랑스 공장에서 제너럴 밀스 이름을 달고 나오는 유럽/아시아판 하겐 다즈에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특히 코코넛에 대해서는 더더욱이. 저게 뭔가. 그 와중에 하겐 다즈가 다시 코코넛을 들고 나왔다. 미워도 다시 사먹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달랐다. 그래서 글로 쓴다. 무엇이 다른가, 밝히기 위해서.

1% 미만의 알코올이 들어갔다고 하지만 아이스크림 베이스에 알코올을 넣고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로 보인다. 흔한 발상으로 유지방 대신 코코넛의 식물성 지방을 쓴 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하겐 다즈의, 유지방 만능주의 레시피 그대로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코코넛 과육을 무식하게 박지도 않았다. 코코넛은 결과적으로 향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훨씬 또렷하다. 단맛과 대립쌍을 이루는 신맛은 또렷이 파인애플의 인상을 심어 단맛 위주-신맛의 힌트-코코넛/파인애플향이라는 피냐 콜라다의 기본값을 상상 이상으로 훌륭하게 모사한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스크림 중간에 사이사이에 소스를 녹여 굳혔는데, 바바에 쓰이는 럼 소스를 떠올려볼 수 있다. 짙은 파인애플향이 파인애플 과즙에 가까운 인상이지만, 아이스크림 베이스와 달리 입안에 좀 더 잔류하면서 높은 온도까지 향을 발산하는 럼 소스를 맛보다 보면 럼 향이 그럴싸하게 다가온다. 현대적인 피냐 콜라다의 방향은 코코넛 버무리에 가까운 맛에 가깝다는게 유력설이지만(내가 그 가장 큰 지지자라서 그런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바텐더 여럿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반복해 들었다) 본래 칵테일의 이름에 걸맞는 풍성한 파인애플 맛으로도 충분히 박수가 나올만한 행복이 있다.

더욱 명석한 지점은 질감이다. 업소용/가정용 냉동고에서 각각 꽝꽝 언 상태에서 곧바로 개봉해보았는데, 여타 하겐 다즈들보다도 금방 scoopability를 확보한다. 그러면서도 서걱서걱하거나 묽지 않다. 파인애플과 알코올을 동시에 쓰는 아이스크림이라면 이러한 지점은 평범하게 잘 만들었다라고만 짚고 넘어갈 수 없다. 일단 풍성한 신맛이 나는 지점. 신맛은 아이스크림에게 결코 만만한 주제가 아니다. 아이스크림에 신맛을 더하는 만큼 산도도 높아진다. 아이스크림 베이스의 산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이는 점성에 영향을 미쳐, 믹스의 산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흔히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의 젤라또에게 쓰는, gooey의 수준을 넘어 손목에 힘이 들어가게 될 정도가 되어버릴 수 있다. 다음으로는 파인애플이라는 과일이다. 잘 알다시피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풍부하다. 살균 과정의 열기, 산성과 더불어 단백질을 그야말로 "조리"해버릴 수 있는데, 아이스크림 맛에 나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믹스쳐의 안정성 또한 해친다. 이에 관하여, Goff, H. D., & Hartel, R. W. (2013). Ice cream (7th ed.). Springer. p. 143. Acidity of Mixes 이러한 지점들을 잘 통제하여 아이스크림의 질감이 매우 멀쩡하다. 특히나 하겐 다즈가 오래동안 안정제, 증점제 등을 쓰지 않고 기본 재료만 잘 써서 좋은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철학으로 형성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목적지에 다다르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성분표의 펙틴을 보면 하겐 다즈 철학의 후퇴에 유감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다른 것들이 아닌 펙틴을 썼으니 하겐 다즈답다고도 생각한다.

이미 존재하는 요리를 다른 형태의 요리에서 구현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그에 대해 이번 하겐 다즈의 신상품은 매우 적절한 답변을 내놓았다. 하겐 다즈 스스로가 품고 있던 전통적인 맛들의 훌륭함과 대비되는 새로움이 있으면서 그 자체로 완성도 또한 훌륭하다.

  • 사족을 달자면, 정식 제품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리 다시 곱씹어도 피냐 콜라다가 익숙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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