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문화에 대한 단상

치즈 문화에 대한 단상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될 때, 그는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입니다. (KCHB Isaiah 10:14-15)

국내 낙농가들의 하소연은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원유가격연동제 때문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2002년 도입된 쿼터제를 문제삼기도 한다. 해결책 역시 자연히 이러한 행정 단위에서 주로 제시된다. 가격을 얼마로 정하고, 수입제품을 어떻게 대우하고. 행정학을 가르치고 배울 때는 탈신공공관리니 뉴 거버넌스니 복잡한 모델이 등장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내는 해결책은 철저히 官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있다.

이는 나머지를 정책에 따라 움직일 뿐인 종속변수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유가 소비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유제품 소비 행태는 cetris paribus, 또는 기껏해야 계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로 이해될 뿐이다. 물론, 논증의 경제성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며 일견 타당한 가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누가 반증이나 하겠는가?

그러던 와중 지난 주말 서울숲에서 치즈 행사를 한다고 하여 막대한 인파를 뚫고 그곳을 찾았다. 헬로 키티 매장에 잔뜩 선 줄을 보며 치즈 따위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고 치즈를 맛보며 이곳을 즐기고 있었다. 일단 무료니까. 행사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두 가지 정도를 고려하고 있었다. 하나,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치즈를 접하게 만들어본다. 취향이란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라도 걸리라는 느낌이다. 둘, 치즈를 최대한 쉽고 재밌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치즈 특유의 썩은 향이 약한 치즈부터 계단을 타고 오르며 단계를 거치는 방식으로 치즈를 선보였다. 처음부터 썩은내가 진동하면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일단 게이트 드러그부터 권하는 식이다. 나도 한 명의 관람객으로서 전시를 읽어보고 안내를 들으며 완강기를 지나 옥상에 도달해 마지막 카망베르 치즈까지 맛봤다. 국산 유제품의 적(?)인 수입 치즈, 정확히는 프랑스 치즈로 가득했지만 나는 동병상련의 느낌을 받았다. 기대처럼 팔리지 않기로는 수입 치즈도 오죽하겠는가? 당장 프랑스 치즈 중 인지도가 높은 로크포르와 같은 종류마저도 국내에 수입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만만한 경성 치즈는 웻지 포장을 벗어나지 못하며 식당에서 치즈를 이용한 요리는 더더욱 보기 힘들다.

어쨌거나 우유건 치즈건 팔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유제품을 일상 식문화에 편입하면 된다. 한국인에게 팩우유, 바나나우유만큼 친숙한 게 어딨냐고 묻겠지만 반대로 그 이상이 있는가? 한국의 식문화에서 우유는 겉도는 외부인이다. 우유급식부터 병영식단 내의 의무적 우유배식까지 낙농업계 지탱을 위해 남은 흔적들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런 질문도 가능하다. 외국이라고 해서 밥 먹으며 우유 마시겠느냐? 당연히 그런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쪽으로 모로코와 마데이라부터 동쪽으로 인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문화권에서 동물의 젖은 아주 막대한 양이 장대한 시간동안 소비되어 왔는데 그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것이 바로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낙농을 시작한 것은 알려져 있기로는 농경의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 일대라 한다. 신석기인들은 양과 염소, 소 등을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자연스레 사람 뿐 아니라 동물의 젖 또한 생존에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레반트 지역의 인류가 성인이 되기까지 유당 분해 효소를 상실하지 않게 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미래, 족히 천 년의 갭이 있었다고 하니 인류가 우유가 주는 생명의 힘을 탐내면서도 복통에 시달리지 않도록 고민했을 것은 분명하다.

도기의 발명은 곧 이러한 고대 인류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보관이 일반화되고 그릇에 담아 가열하는 등의 방법이 개발되자 이 시기부터 버터와 치즈 등의 흔적이 등장한다. 도기에 묻은 성분을 조사하니 유지방이 다량으로 발견된다거나 하는 보고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대부분의 발명은 순전한 우연에 의한 것이었으리라. 산이나 염분이 우유를 응고시켜 커드를 만든다거나, 우유를 교반하여 크림을 떠내고 버터를 만드는 등의 과정은 썩 눈에 띄게 진행될 뿐 아니라 상당히 단순하게도 모방이 가능하므로 곧 레반트에서 낙농업과 유가공품 생산이 일반화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레반트인들의 관습은 곧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황폐화되기 시작하면서 서방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여기서 우리가 서양인들과 다른 조상을 가졌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는 포인트가 등장한다. 인도와 중국의 존재다.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독자적인 사상을 빠르게 정립하고 발전시킨 인도의 문명에서는 일찍이 정신을 고양하는 의식 등이 널리 퍼졌다. <베다>에서는 부처도 엉긴 젖을 먹었다는 언급이 있는 등 낙농업 문화는 인도에 널리 퍼졌으나, 외려 낙농업 제품이 주는 지나친 혜택이 그들로 하여금 이를 숭배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한다. 그런 이유가 맞건 아니건 인도에서는 소를 죽이지 않는 풍습이 일찍부터 자리했고, 나중에 등장하는 이슬람도 마찬가지지만 비교적 부패와 감염의 위험이 큰 더운 지역이다 보니 종교적으로 위생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대두되다 보니 인도에서의 유가공품은 하루 이틀이면 만들 수 있는 코티지 치즈 종류로 제한되게 된다. 중국은 한 발 더 나아가 레반트의 농업 문화가 닿기도 전에 자체적인 문명을 건설하여 쌀을 대표로 하는 식문화가 자리잡은 이후였다. 쌀의 압도적인 생산성에 기대어 이미 인구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였으니 인도를 거쳐 불교와 낙농업이 닿기도 전에 중국에는 자체적인 식문화가 존재했다. 초원이 아닌 농지에 정주하는 문화가 일찍이 자리잡은 데다가 이미 언어나 문명 등의 거리감도 상당히 조성되고도 남았을 시간이므로 자연히 낯선 외부의 문화는 자리잡을 곳이 적었으리라.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짚을 수 있다면 이후의 치즈가 어떻게 凡서구권에서 지역별로, 문화별로 다르게 발달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석기~청동기 시대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치즈와 버터 문화는 히타이트 시기 렌닛을 만나 렌닛 응고 치즈라는 커다란 변화를 만나게 된다. 히타이트 유적에서는 이미 올리브와 와인 이외에도 치즈는 물론 치즈 응고에 사용되는 렌닛까지 제의를 위한 제물로 바쳐졌음이 기록에서 나타난다.[1] 이는 이미 히타이트에서 치즈가 높은 위상을 지닌 식품이 되었을 뿐 아니라, 히타이트인들이 렌닛을 채취하여 렌닛 응고 치즈를 만드는데 익숙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미 가나안에서 현재 시리아 일대로 이르는 해상운송무역품에 치즈가 포함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등, 이 시기부터 치즈는 현지에서 곧바로 소비되는 상품이 아닌 장기 보관, 숙성을 거친 사치품으로 유통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2] 렌닛의 발견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식물성 렌닛의 원료가 되는 무화과나무의 수액을 얻기 위해 필요한 무화과나무는 이미 말린 무화과의 광범위한 유통 기록을 감안할 때 충분히 익숙한 재료였으므로, 그 수액 등도 식용하려던 과정에서 자연스레 단백질을 엉기게 하는 역할을 발견했을 것이다. 동물성 렌닛의 경우는 더욱 쉽다. 젖을 먹던 새끼 양이나 염소를 도축하다 보면 내장에서 덩어리진 우유 따위를 자연히 발견하고 생존을 위해 맛도 보았으리라. 그리고 기존의 방식대로 산이나 소금에만 의존하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젖이 엉긴다는 사실을 발견한 인류는 곧 어디에서 렌닛을 채취할 수 있는지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반대로 왜 인도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치즈 문화가 발전하지 않았는지도 이해 가능하다. 인도에서는 동물을 도축하는 일이 훨씬 적었을 것이므로 렌닛을 우연히 발견했다 하더라도 생산이 일반화될 수가 없었지 않겠는가.

그리스와 로마 즈음 되면 단단한 치즈를 먹기 위한 강판 따위가 흔히 발견되므로, 경성 치즈 역시 고대에 이미 자리를 잡았다고 보아야 한다. 당장 <일리아드>에도 치즈 강판(knestis)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후의 치즈 발전사도 이런 식으로 당시 인류의 생활사를 이해하면 차례로 전부 이해할 수 있다. 국제 무역망에서 사치품으로 거래되던 경성 치즈는 여러 지역에서 앞다투어 생산되었을 것이고, 보관이나 가공법의 연구에 따라 중세를 거치며 로크포르와 그라나 파다노 등 지역의 특산물로 정착한 종류들도 등장했을 것이다. 세척 외피 치즈는 수도원의 등장에 힘입어 발명된 것이 분명하다. 누르시아의 베네딕토가 정립한 Ora et Labora의 기치 아래 커다란 장원을 형성한 수도원들이 앞다투어 설치되었고, 신선한 우유를 대량으로 꾸준히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치즈는 꾸준히 생산되었을 것이고, 손으로 치즈 표면을 만지고 옮기는 과정에서 표면에 피어오르는 곰팡이의 색에 따라 치즈의 맛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했을 것이다. 기록상 가장 오래 전에 등장한 세척외피치즈가 알자스의 뮌스터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외에도 공동 목축을 통해 젖을 모아 치즈를 만드는 알자스 공동체적 전통은 10~20kg 이상의 커다란 치즈를 생산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고, 혹독한 겨울 내내 치즈를 비축해두어야 하는 한편 레만, 뇌샤텔, 보덴제 등 호수를 통해 치즈를 운송해 무역에 사용하기도 했으므로 알자스 치즈는 단단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뤼에르와 콩테, 보포르 등의 치즈가 그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 그뤼에르는 13~14세기부터 치즈 산지로 이미 전 제국에 유명세를 얻고 있었다.

이외에도 영국 치즈의 변화는 인클로저 운동과 산업 혁명으로 인한 런던의 폭발적 성장을 바탕으로 하며 몇 차례의 전란은 영국의 치즈를 체다 하나로 통일시키고 말았다. 런던보다 한 수 앞서 서방 최대의 무역항 노릇을 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일찍이 치즈의 표면을 데치고 코팅하여 장거리 해상 무역품으로서의 치즈, 에담과 하우다를 내놓는다. 루아르의 치즈가 유독 염소젖을 이용하는 이유는 알란인들이 오를레앙 등지로 밀려들어오는 과정의 흔적이며, 비슷한 이유로 피레네 산맥의 톰므나 오소-이라티같은 치즈 역시 우마이야 왕조가 들여온 유목 문화의 흔적은 아닐까. 근현대의 역사적 사건들 역시 치즈에 속속들이 녹아있다. 노르망디의 치즈는 철도의 발달에 힘입어 세를 불렸고 아메리카 대륙의 치즈는 이민의 역사와 동일어라 볼 수 있다. 미국 동부에서 생산된 체다는 미국 독립 전부터 "아메리칸 체다"로 불렸으며 이후 개척지에 이주한 독일 이민자들은 뮌스터를 소개했고, 서부 칼리포르니아에서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이 자리를 잡았으니 체다와는 다른 몬테레이 잭과 같은 치즈가 독립 식민지보다도 먼저 탄생했을 것이다.

이렇게 두꺼운 역사를 몇십년만에 주마간산 하듯이 지나치려니 소화가 잘 될리 만무하다. 이탈리아 요리 곁에 적당히 낑겨있는 몇 종류를 제외하면 영리한 대형 마트들이 보여주듯이 대부분의 치즈는 절대적으로 와인 안주로서만 소비된다. 그리고 그 술꾼들은 전광판의 호가를 보듯이 와인의 값비쌈과 고귀함은 논할지언정 치즈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문화를 몰라도 와인 가라벨과 가격은 읽을 수 있지만 치즈는 배경을 모르면 도저히 읽히지가 않기 때문이다. 몇 번 먹어보는 것으로 거르지 않고 삼킬 수 있게 되거나, 지방과 짠맛에 기대 안줏거리로 쓸 수는 있게 되지만 빵-치즈-와인의 성 삼위일체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치즈를 팔기 위해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며, 특히 서유럽 스타일의 치즈를 팔아먹기 위해서는 이 문화라는 것을 세트로 팔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와인과 치즈만 세트로 판매할 게 아니라 사실 재료를 소비할 인프라, 나아가서는 생산할 인프라도 묶여서 따라와야 한다. 오트 퀴진의 첨탑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다양한 치즈를 썰어 제공하며 요리에 녹여내는 영감을 제공해야 한다. 언제까지 그뤼에르 치즈는 양파 스프 뚜껑으로만 남아있을 것인가. 이런 곳에서 다양한 치즈를 먼저 선보이고 나면 격식이 높지 않은 서양식 레스토랑에서도 그런 치즈를 찾는 수요가 생길 수도 있다. 우니를 찾아 헤매는 스시 팬보이들의 사례가 증명한다. 아래로부터는 낙농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교육이 필요하다. 아티장 베이커와 그랑 셰프는 덤프 트럭으로 실어 날라도 모자란데 아티장 치즈, 아티장 버터, 아티장 밀가루는 하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위한 인프라 예산은 소비자로부터 나온다. 소비자가 서양 문화와 서양인의 삶을 냉대한다면 모두 공상에 불과하다. 분명 한국인들은 서양을 좋아하고 사랑해 마지않는다. COVID-19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벨기에와 동유럽 등지가 한국인의 새 고향이 될 지경이었어서 삐끼들의 한국말도 참으로 유창했다. 문화와 역사를 집약한 기념적 건축물들은 많이 보셨을 테니 이제는 그 저변이 되는 역사 속 민중의 생활방식, 민중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주면 어떨까. 제아무리 관변 한식이 궁중음식을 들이밀어도 한국인들은 돈까스, 김치찌개, 제육볶음 먹지 수랏상 차려먹지 않는다. 서양 음식도 마찬가지로 민중의 삶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연스레 녹아드는 것이다.

다들 "다이닝" "공부"들 하신다고 나는 그 두 가지가 진정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겠다. "다이닝"이란 단지 비싸고 느리게 음식이 나오면 되는 것인가, "공부"란 단지 비싼 식당을 많이 가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두컴컴한 방에서 블렌디드 위스키와 돔 페리뇽을 돈 백만원 주고 마시는 밤의 유흥주점 테이블만큼 "다이닝 공부"에 적당한 곳은 없으리라.

레퍼토리 퀴진이라 할 수 있는 19-20세기 오트 퀴진과 68혁명을 두루 관통하지 않고 누벨 퀴진을 알 수 없고, 누벨 퀴진을 알지 못한다면 요리에 대한 진정한 비평에서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물론 비평이라는 단어 내에는 롤랑 바르트나 이 블로그의 인용문에 삽입된 테리 이글턴과 같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비평도 가능하고 시각의 의미같은 책이 이 블로그에서 언급되는 것도 아주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평의 권위 위에 날로 올라탈 생각은 없고, 요리 비평이 비슷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꼭 그럴 필요도 없다).


  1. Güterbock, H. G., Hoffner, H. A. & Diamond. I. L.(Eds.) (1997). Perstective on Hittite Civilization: Selected Writings of Hans Gustav Güterbock. The Oriental Institution of the University of Chicago. p. 153. ↩︎

  2. Monroe, C. (2007). Vessel volumetrics and the myth of the Cyclopean Bronze Age ship. Journal of the Economic and Social History of the Orient, 50(1), 1-18. ↩︎

  • 생각건대 치즈를 향한 진정한 게이트 드러그는 더블 치즈버거가 아닐까? 현실적인 이유겠지만 녹인 치즈의 자리가 없는 점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