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에스티우 - 2021년 여름

레에스티우 - 2021년 여름

이 섹션, 'DINING'을 운영하는데 고민이 많다. 단순히 음식을 시계열 위에 늘어놓는다고 해서 다이닝인가? 늘어놓는 스시들과 주문이 주문을 부르는 선술집은 같은가? 코스 형식은 그저 푸디들을 낚아대고 있지는 않은가?

파인 다이닝과 코스 밥집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단순하게라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이 섹션을 굳이 분류한 의미는, 완성된 (주로 서구식) 한 끼 식사라는 특정한 식문화를 별도로 다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개별 요리의 합으로, 혹은 먹는 경험의 전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총체적인 경험이다. 특히나 아예 맛보기만을 위한 메뉴Menu Dégustation의 개념이 확산된 이후로는, 이러한 행위의 성질 또한 고려된다. 따라서 'DINING'에서는 개별 요리의 특별함을 고려함과 동시에, 접시 바깥, 즉 공간와 시간의 맥락이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메뉴판의 구성, 서비스의 방식, 하다못해 음식에 붙인 이름까지 고려 대상이다. 이토록 복잡한 시선을 견지해야만 하는 이유는, 한 끼의 완성된 식사는 그럴 가치가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레에스티우」가 한 끼의 완성된 식사를 추구하는 공간인지를 방문 이후 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은, 아마도 그래 보인다였다. 따라서, 정해진 형식에 맞춘 글을 게시한다.

방문 전

레에스티우의 예약은 유선상 또는 캐치테이블을 통해서 가능하다. 별도의 예약금이 존재한다. 예약시 별도의 확인은 하지 않으며 방문 전일 또는 당일에 확인 절차 또한 없다.

요리

「레에스티우」는 코스 형식이 아닌 단품 메뉴들만을 갖추고 있지만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므로, 한 끼의 완성된 식사를 만들 수 있다.

음료 메뉴의 구성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지만 호스피탈리티 산업에서 음료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권한다면 그 방식은 알바리뇨와 가르나차라는 품종의 존부를 따지고 드는 식은 아니어야 한다. 한국인들이 해외에 나가서 음료를 권하는 경우를 두고 바가지 씌울 작정이라며 성을 내거나 기겁하며 기피하곤 하지만, 음료를 권하는 이유는 첫째로는 그만큼의 비용이 통상 식사의 예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그것을 통해 경험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와인에 대한 기본적인 열정이 느껴지지 않게 추천할 것이라면 권하지 않았어야 한다.

이 와인은 추가 주문을 권하기 전에 주문한 것이었는데, 앞서 주문한 요리가 누가 봐도 갈리시아식이었기 때문에 갈리시아를 맞춘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했던 것이다. 애초에 고전적으로 통하는 궁합이라고 알고 있다.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권한다면 최소한 이런 단계는 넘어서야 하지 않겠나. 소비자도 이만큼은 생각하고 결정한다.
유독 한국에서는 '니가 뭘알아' 혹은 '니가 알아서해'의 양극으로 가는데 그 사이를 연결해야 하는게 서비스 아닌가? 팁도 없는 레스토랑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서비스였다.

Carpaccio de un Verano / 어느 여름 카르파쵸 
Burrata Ibicienca / 이비자식 부라따

레스토랑을 상징하는 메뉴와 개인적인 관심이 가는 메뉴로 앙트레를 결정했다. 세 개까지도 생각했으나 매진된 메뉴라 포기했다. 한 번 터놓고 이야기해보자. 한 끼 식사에서 이 부분이 차지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세계 대전 시기 이전까지만 해도 앙트레의 종류와 순서까지도 지켜가는 예식의 수준에 다다른 시절도 있었으나, 오늘날은 오히려 형식의 흔적으로 남은 주요리로부터 벗어나 요리사의 본심이 드러나는 무대로 기능하는 경우가 잦다. 이탈리아 반도의 Alta Cucina가 안티파스티가, 이베리아에서는 Cocina tecnoemocional가 타파스를 다루는 식으로 달라질 뿐이다.

복숭아를 세 가지 방식으로 낸다는 전채는 반드시 주문해야 할 만큼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스페인 하면 또 복숭아 아닌가. 납작복숭아도 있고.. 국산 복숭아도 철에는 사랑스러운 것들이 썩 있는데, 아쉽게도 생과 또는 종종 제과의 주방에서 쓰이는데 머무른다. 그래, 짠맛의 세계에서 그 힘을 보여주자. 좋은 재료가 있다면 기꺼이 요리하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주제의식에 반했다.

치즈의 감칠맛-짠맛과 복숭아의 단맛, 단순한 조합이지만 쉽게 성공한다. 다만 지방과 식감을 불어넣어줄 견과류는 미스매치. 카르파치오라는 음식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그 극한의 두께를 통한 가벼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방해물에 가까울 뿐 아니라 이미 강렬한 풍미를 지니고 있는 하몽이나 치즈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으므로 최소한 적절하게 볶아내는 등의 가공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러나 완성 다음은 어떤가, 과연 복숭아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은 어땠는가. 사실 세 종류의 복숭아를 건너건너 맛보았지만 무르기의 차이가 있을 뿐, 복숭아의 세 가지 색을 보여주지는 않았다고만 기억하고 있다. 물복이냐 딱복이냐, 그 수준의 농담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을텐데, 복숭아를 지중해의 방식으로 소화한다는 것에 대한 그림은 짚이는게 없었다.

이비자식이라고 불리는 부라타 치즈 요리는 아마도 정말 이비자에서 부라타 치즈를 이렇게 먹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부라타라는게 탄생한 시기(최초 기록은 1931년, 유력설은 1920년대)를 생각하면 이게 특정한 지역의 스타일로 굳었다고 하기에도 그 기간이 존중받을 만한 길이는 아닐 뿐더러, 이비자 요리라는 것을 말하려면 마요르카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일단 현대에 이르러 이 동네는 반쯤 진담으로 독일 연방주로 불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비자의 식문화의 가장 큰 축은 마약과 술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논해야 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 요리 속 이비자의 의미는 단순한 스페인 동부 해안가 어디께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배경을 생략한다면 그곳은 이비자가 아니라 몰타, 코르시카, 심지어 키프로스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 섬을 특별하게 해주는 이유니까. 그래서 이 요리는 어땠는가. 흰 치즈를 가른 뒤 바다포도부터 알들까지 무언가를 한껏 뿌려 즉석에서 완성해낸다. 결론적으로 부라타 치즈의 극단적인 Rich를 맛보는 요리였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버터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서 부라타이듯이burro+-to/ta, 요리의 의미가 극명하게 선명했다. 나쁜 보관에서 오는 씁쓸함 따위도 전혀 없었으니 그야말로 부라타에 진심이었다. 텅 빈 우유로 만든 것 같지도 않고(혹 그렇더라도 유지방을 잘 더했다) 흩뿌려낸 것들이 온갖 향으로 지방에 전력투구하면서도 결론적으로 유지방의 품에 안긴다. 짠맛과 지방만으로 입맛을 돋우는 요리로서 더할 나위 없다.

Pan / 갓 구워낸 빵

애석한 것은 이 우수한 치즈 요리에 곁들일, 지방을 감당할 빵이 접시를 텅 비울때 쯤에야 나왔다는 것이다. 서비스에 대해서는 뒤늦게나마 사정을 들었으므로 감안하고 글에 담지 않겠으나 빵이 별도의 가격까지 붙여 굉장한 야심을 품고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그보다도 나는 가격까지 붙은 경우까지도 빵의 이름이 '갓 구운'이라는 점에 대해서 도 슬펐다. 신선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용어가 아닌가. 우리 식문화를 병들게 하는 가짜 신선함을 굳이 만나 어찌 기쁘다고 하겠는가. 다만 실제로 빵은 당연하게도 갓 구운 불덩이까지는 아니었다.

Pulpo a la 'Seochonesca' Vol.5 / 문어: '서촌식 문어구이' 

감자, 그릴에 구운 듯한 문어, 파프리카. 백 번 정도를 다시 곱씹은 이후 나는 이게 서촌이 아니고 갈리시아 요리가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런 식의 이름짓기가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나 수도권에서, 무슨동 스타일같은 이름을 매우 자주 접하는데, 정말 무슨 의미가 있나. 하여간 그런 것은 어디에서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이 요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갈리시아식 문어Pulpo a la gallega, Polbo á feira여야 한다.

소스의 선택이 하필 페어몬트 앰버서더 서울에서 얼마 전 먹은 식사를 떠올리게 하는데, 도피누아즈로 낸 감자에 아이올리의 포션이 통상 문어와 감자 요리를 떠올려보면 감이 잡히는 비율과는 거리가 있는 점에 대해서는 해석의 난점이 있다.

궁극적으로 이 요리의 문제는 문어라는 독특한 단백질의 조리에 있는데, 문어를 미리 얼릴 것인가 말 것인가, 문어에게 겁은 주었는가Asustar, 그을릴 것인가 삶은 째로 낼 것인가 등등 고유의 세계관과 문법이 있는 요리인데, 굳이 철저하게 따지고 싶지는 않고, '서초네스카'니까 과연 스스로의 기준이 만족스러운가에 대해서만 말해보자. 결론적으로, 만족스럽다.

문어의 껍질은 대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부수어지는 감각이 어여쁘고, 한층 지방을 머금은 감자는 문어의 경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증폭시킨다. 파프리카의 향 또한 감각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소스에는 놀라움이 없다는 점이 놀랍지만 로메스코를 위시로 한 스페인 요리의 인상을 덮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Paella a la Valenciana / 발렌시아나

빠에야의 경우 토끼까지 쓰는 경우라면 애초에 가타부타 논할 실익은 없는 메뉴라고 생각한다. 다만 두 가지. 첫째로는 쌀의 조리. 압력밥솥에 짓는 우리식 밥 이외의 거의 모든 쌀요리를 하면서 쌀이 적절히 익을 때 즈음하여 구멍들이 송송 뚫린 풍경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여전히 빽빽한 쌀에는 수분이 잔류하곤 한다. 둘째로는 지향점. 빠에야의 결말은 늘러붙은 누룽지socarrat에서 나오는데, 그 껍데기에 가까운 질감과 마이야르,캐러멜화에 더해 본래 빠에야에 베어든 육수의 풍미가 이루어내는 폭발이 그 내용이다. 빠에야도 결론적으로 육수를 맛보는 음식인 셈이다. 그에 비추어 과연 완성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빠에야 팬 따위를 또 어디서 보겠는가? 그 이상으로는 구구절절 논하지 말자.

서비스에 대해서 별도로 논하지 않기로 했는데, 여러모로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 빠에야가 탁자 위에 놓이고 시간이 조금 흐를 즈음 나는 이 레스토랑의 서비스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꼈고 디저트는 포기했다. 완성된 한 끼 어쩌고 떠들어놓고 미완성으로 남은 셈인데 양해를 구한다. 통상적으로 돈 내고 식사하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지출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총평:
(파인 다이닝을 지향하고 있지 않으므로, 파인 다이닝의 측면은 다루지 않겠다.)
지중해와는 사뭇 다른 바다를 가진 나라에서, 지중해의 지혜를 빌려 바다를 요리한다는 꿈을 적절하게 해내고 있다. 기술적으로 진보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조리의 첨단을 달리기에 앞서 주춧돌부터 닦아야 한다는 미션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있다.

각 접시의 설계의 큰 얼개는 논리가 확고하다는 점은 크게 높이 평가할 만하나, 전체를 어울러 통째로 식사로 완성되는 데는 명실공히 한계에 부딪힌다. 서비스의 호흡도 그렇지만 개별적으로도 완성된 한 끼 대접을 받는 요리들을 코스로 엮었다는 과제에 대해서 응답하지 않는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특히 빠에야다. 단순하게 등치해서 코스의 축을 이루는 탄수화물 요리, 한국식 중식당들의 볶음밥과 꼭 동일한 대접이라는 점이 절묘하지 않은가. 중식 파인 다이닝? 짜장 짬뽕 안판다고? 그러면 새우볶음밥. 이 불행한 지루함이 조금은 겹쳐 보인다. 물론 확고한 정답은 없다고 지나칠 수도 있고, 빠에야에 앞서 전채나 단백질의 등장 자체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빠에야에 미친 사람들에게는 징후가 보인다. 런던 Arros QD는 빠에야에 앞서 주로 가벼운 요리들만을 배치하며, DC의 Xiquet에서는 수프 뒤에 곧바로 빠에야가 들이닥치고 빠에야 이후에 한 텀 쉰 다음에 단백질을 내는 식이다. 둘 다 장소가 스페인이 아니라고? 그런 편협한 사고로는 빠에야를 이해할 수 없다. 스페인 선생님 한 분 모셔보자면 Paco Gandia의 선생님을 모셔보겠다. 선생님 왈, 발렌시아식 빠에야는 지역의 토끼와 달팽이 기타의 풍미가 집약된 그 자체의 풍미가 지향점인 요리다. 무언가를 더한다는 건 와인에 탄산수 타는 꼴이라며 분노하실 만큼 그 자체로서 완성도로 빛나야 한다. 부라타와 문어에서 요리의 핵심만을 짚어 찌르는 날카로움이 돋보였다면 그 피날레가 되어야 할 빠에야에서 숨이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전체를 어울러 이베리아의, 그리고 지중해의 식문화의 탁월함에 대한 존중은 돋보인다. 부라타 치즈에서는 머리 속의 빼어남이, 문어에서는 주방의 손동작의 빼어남이 보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여기는 지중해도, 이베리아 반도도 아니라는 점에 대해 어떤 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정말로 이베리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불가능한 부분들만 돋보일 공산이 크다. 스스로 요리에 붙인 이름, 가격, 기타를 고려했을 때 단지 스페인의 몇몇 요리들을 적절한 완성도로 내는 것이 과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분위기: 열정 없는 톤을 뒤덮는 왁자지껄함. 한국에서 모든 테이블에서 주류를 주문할 경우 일어나는 정도의 소음.

서비스: 레스토랑 측에서 본인들이 통상 보여주는 서비스는 이렇지 않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경험한 서비스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다만 요리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는 등 자신들의 음식 그 자체를 존중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서비스 방침 자체의 문제로 보인다.

가격: 주 요리는 접시당 KRW 40000~50000 정도. 2명 이상 방문시 인당 KRW 100000 이상의 예산을 추천.

음료: 극단적인 스페인, 신생 생산자 위주의 이해하기 어려운 큐레이션. 레드 와인은 그와 달리 전형적인 프랑스식/혹은 또 전형적인 스페인식이 적절히 안분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요리에 걸맞는 와인을 짝지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갖추는 것이 절실. 오크향 가득한 와인과 발렌시아식 빠에야를 맞추는게 과연 옳은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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