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글스 - 2021년 가을

밍글스 - 2021년 가을

시작에 앞서서 선행되는 질문이 있다. <무엇이 예술인가?>. 이에 대한 담론에 익숙한 독자가 많다는 사실은 나도 감안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빠르게 이 질문에 대한, 과거의 논의를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지나치게 두껍지 않게 정리해보자. 전통적인 미학 담론은 여러분이 다 알 것이라는 가정하에, 근래의 유익한 논쟁들을 떠올려보라.
가장 먼저, 모방의 시대를 지난 이후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여전히 철학자 아닌 사람들에게 예술 또는 예술작품이라는 실제 표현은 그림이나 시와 같은 형식에 가까운 의미로 쓰인다. 이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주로 특정한 형식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1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무의미한 말놀음으로,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단지 나의 기분이 좋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이상의 알맹이는 없다. 따라서 그들을 통합하려는 시도 또한 대부분 돌이켜볼 가치가 크지 않다. 무수히 많은 시도들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족하다. 예술은 직관intuizione의 표현이며, 표현의 표현은 아니라는 크로체의 정의2는 어떤가. 썩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직관이 아닌 것을 표현하고자 한 바우하우스나 다다 따위에 적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술의 선긋기의 어려움이다.
주목해야할 지점은 그 다음으로, 언어에 관한 사고가 뒤바뀐 이후이다. 이른바 비트겐슈타인주의자Wittgensteinian으로 불리는 모리스 와이츠는 예술의 정의가 논리적으로도 사실상으로도 불가능함을 주창하였다. 단지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의 유사성이 존재할 뿐이라고 본다.3 언어로 떨어지게 정해질 수 없는 그런 것이 예술이다. 그 어떤 불명확한 정의들보다도 마음을 끌지만 결국 성찰을 포기하는 오독의 가능성이 현저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의 내부로부터의 정의의 불가능함을 알았으니, 외측을 시도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무엇이 예술로 취급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조지 디키의 정의는 썩 마음에 든다:범주의 감각에 있어 예술작품a work of art이란 예술계의 공중에게 전시될 목적으로 창조된 평가 가능한 인공물이다.4
이러한 배경 하에서, 오늘날 무엇이 예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선언에 가까워 보인다; 비-철학자들의 예술에 대한 전형적 편견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이해해야 비로소 보이는 경우다. 예컨대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발언이 있다. "내게 패션은 예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있고 또 입힐때에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나는 옷, 가방 그리고 신발을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지 벽에 걸어놓고 쳐다보라고 만드는게 아니다"5는 그의 말은 위의 논의들의 배경이 아닌, 글의 첫머리에서 맴돌고 있으나 이런 선언의 이유는 짐작이 간다. 혹은 이브 생로랑의 "예술이 아닌, 하지만 존재하기 위해 예술가를 필요로 하는" 이라는 표현6은 어떠한가? 이는 전형적인 형식예술과의 공존으로부터 편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의 변화, 예술로서 성취를 이루어낸 거인의 겸양이다.

1:Dickie, G. (2000). Art and value. The British Journal of Aesthetics, 40(2), 228–241. https://doi.org/10.1093/bjaesthetics/40.2.228
2:Croce, B. (1922). Estetica come scienza dell'espressione e linguistica generale: Teoria e storia. G. Laterza & figli. p. 16.
3:Weitz, M. (1956). The role of theory in aesthetics.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15(1), 27-35.
4:Dickie, G. (2001). Art and value: Themes in the philosophy of art. Blackwell. p. 107.
5:Marc Jacobs says "Fashion is not art". (2007, November 11). Los Angeles Times.
6:이브 생로랑의 2002년 1월 8일 은퇴 기자회견 연설. 가장 잘 보존된 영상으로 https://www.dailymotion.com/video/x5nd7h


이 거창한 이야기를 레스토랑 리뷰에 앞서 왜 하는가? 어차피 언젠가 하기는 해야하는데 억하심정으로 실은 것도 있다. 사실 다른 글들에도 모두 적용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셰프가 인상적인 경험을 위한 공간이라고 인터뷰에서 응답했을 때미쉐린 가이드와의 인터뷰, 이러한 배경 없이 그의 발언을 섣불리 다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말한 인상과 경험이라는 단어가 크로체의 그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어떠한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곧 예술을 하겠다는 것으로 쉬이 비춰질 수 있다. 실제로도 이 레스토랑을 검색해보면 많은 이들이 예술이다, 예술적이다라는 표현을 즐긴다. 물론, 다시 또 첫머리로 돌아가는 듯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이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연 레스토랑 밍글스는 예술인가? 예술일 경우, 어떠한 측면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예술이 아닐 경우, 전형적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해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가 의도했다는 대로 밍글스의 경험은 인상적인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한 글이 되겠다. 그간의 레스토랑 리뷰들도 이러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공중에서 특정 표현들이 더 잦게 사용되는 만큼 미리 영점을 조절하게 글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방문 전

밍글스의 예약은 전화와 이메일, 네이버 예약, 캐치테이블로 가능하다. 캐치테이블로 예약을 관리하여 인앱 예약을 할 경우 별도의 예약 확인 전화, 혹은 내용 확인을 하지 않는다. 예약 전일 자동으로 발송되는 카카오톡 알림 메시지가 있으며, 전일과 당일 모두 별도의 예약 확인 전화는 없다.

요리

밍글스의 가을 메뉴는 점심과 저녁이 거의 동일한 가운데 점심 메뉴는 저녁 메뉴에서 단지 요리 몇 개를 들어낸 것으로, 그것을 다시 단품으로 주문하는 것으로 저녁 메뉴를 거의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가장 첫머리 요리인 "오징어 회" 하나 차이이다. 따라서 맛보기 메뉴를 위해 굳이 저녁에 방문할 실익이 없어 점심에 방문, 단품 추가로 동일한 코스 구성을 주문했다.

먼저 전체 구성을 살펴보자. 밍글스는 프렌치 레스토랑인가? 아니오. 우선 전형적인 서양식 환대와 거리가 멀다. 요리 외적 부분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객을 읽지 않는 음식을 한다고 본다. 음료 메뉴를 요청하여 검토중인 상황에서 그냥 음식을 만들어서 들이민다. 식사의 시작부터 가장 기본적인 시간 엄수에도 자신이 없는가 하는 의구심이 엄습한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돌려보낼 수는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리에 임했다. 개별 요리의 조리 방식이 아닌, 서비스와 경험의 구성에 있어 프렌치 레스토랑의 정의에 부합하기는 어렵다. 개별 요리들에 있어서도 그렇다. 탄수화물에 있어 의도적으로 아시아의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낸다. 시계열에 맞추어 열거하자면 'Namul'의 빙떡은 다른 문화권의 메밀 반죽들을 떠올리게 하지 않으며, 'Flavours of the Ocean' 요리의 밥 샐러드는 그 자체로 샤리에 가깝다. 라비올리에서 잠시 밀가루가 스쳐 지나갈 뿐 빵 바구니도 없다. 정서적으로 핵심적인 요소들이 부재하므로 프렌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 프렌치가 아닌, 한식 파인 다이닝인가? 여기서 예 아니오가 가능하려면 한식당은 무엇이다가 가능해야 하는데, 생각건대 '한식 파인 다이닝'의 정의는 현재로서는 없는 수준이다. 따라서 그 질문에 답은 불가능하고, 차라리 어떤 새로운 형태의 레스토랑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보는게 적절하다. 파인 다이닝이라는 개념조차 부재한 현실 속에서 제나름의 답안을 쓴다고 본다. 답안의 내용은 무엇인가. 큰 틀에서부터 살펴보고 개별 요리에 대해 더 깊게 논하겠다.

첫째로는 요리마다 탄수화물을 어떻게든 공존시킨다. 빵의 빈자리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술한 경우들에 더해 'Lamb'에서는 라비올리, 'Hanwoo'에서는 아예 돌솥밥을 연상케 하는 찹쌀밥이 짝을 짓는 식이다. 이들이 과연 식사를 선으로 이어주는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같은 탄수화물이어도 'Flavours of the Ocean'의 밥은 단백질의 풍미에 맞서 팔레트 단계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는 반면 양갈비의 라비올리의 경우에는 밋밋하게 자리를 채울 뿐이다. 'Hanwoo'의 탄수화물은 단지 한식의 습관적인 방식을 재현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빛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관되지 않은 탄수화물의 용례는 결국 하나의 식사의 인상을 만드는데 장애가 된다. 둘째로는 전형적 조리문법이 빚어내는 지역의 인상의 활용이다. 'Flavours of the Ocean'이 대표격으로, 구루마에비 스시와 으레 따라오는 대가리 덴푸라를 미분한 후 분해된 접시를 다시 막걸리 소스로 어우르려 시도하지만 일식의 인상은 그대로이며, 'Lamb'은 프로방스식 양갈비 요리의 신호가 분명히 전해진다. 이러한 지역의 선정 기준은 한국인과의 정서적 거리로 보인다. 일본과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 환상을 부르는 곳들이다. 제주도 또한 이 대열에 합류할지 모르겠다. 결국 다양한 국적의 단품 요리를 종류별로 맛보세요, 식의 식사가 완성되지만 진정 다양하거나 새롭지는 않다. 'Flavour of the Ocean'과 비스큐 소스, 'Ssam'에 올린 토마토와 바질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것들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이다.

이러한 흐름들은 개별 요리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먼저 'Black Chicken'이다. 모렐의 품질 문제는 국내에서 바랄게 없는 부분이므로 넘어가더라도 아이올리의 만듦새는 조금 아쉽다. 흑마늘의 신맛과 중복될 여지가 있더라도 파인 다이닝을 추구하는 레스토랑에서 마주해야할 것이라면 이 이상이어야 한다고 본다. 별도로 안정제 따위를 쓰지 않았는지 식사 중간 즈음이면 점성이 흐려지고 뭉치는 상태가 되어 미묘하게 껄끄러워진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져낸 닭고기와 대비되는 닭다리의 피맛을 꼬챙이부터 입힌 향기로 빚어내는데, 닭껍질의 지방 그리고 흑마늘의 감칠맛, 신맛이 가세해 밋밋한 인상인 닭을 그럴싸한 중심 요소로 다시 빚어낸다. 한국인의 닭다릿살 사랑을 절묘하게 표현해내어 성공했다. 반복해서 언급한 'Flavours of the Ocean'또한 파인 다이닝의 수준에 이르렀다. 스시의 흐름을 해체하여 새우 한 마리를 먹는 기쁨을 온전히 그려낸다. 머리는 튀김, 살은 단백질, 껍질과 꼬리는 소스로 환생하는 가운데 가니쉬를 무스로 빚어낸 질감이 조화롭다. 갑각류 살의 단맛과 껍질의 향의 욕심을 가득 챙겨가면서 프렌치의 기준에서 한 접시로 완성도 또한 빛난다. 컬리플라워의 단맛이 바닐라 힌트와 만나고, 다시 새우의 단맛으로 이어지는데 피로감은 고수가 다스리니 흐름이 썩 깔끔하다. 이쯤되면 독자들도 눈치챈 사람이 있겠지만, 저녁에만 제공되는 메뉴의 완성도가 그렇지 않은 것과 차이를 보인다. 'Lamb'정도가 예외다. 프로방스식 양갈비의 정서적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갈빗대 뼈와 근막을 모두 제거한, 그럼에도 별다를게 없는, 파인 다이닝의 요리라고 보기 힘든 단순한 요리인데 그 속내가 복잡하다. 어린양을 썼다고 하지만 4-메틸페놀로 대표되는 성숙한 양의 지방 풍미가 다가오는데, 그 자체가 불만이라는게 아니라 그에 걸맞는 풍미를 끌어내지 못하는게 문제다. 짠맛이나 향 따위를 개입시켜 단백질의 풍미를 끌어내지 못한다. 호주산 일색의, 품종은 알지도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셰프가 유명세를 탄 배경-기억하는가? 그는 귀국전 바하마에 있었다-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계의 무수한 양들과 그 조리법들중 가장 저항이 적을 듯한 방법을 취한 모양새가 아닌가. 두터운 탄닌과 풍성한 신맛으로 무장한 풀바디 BDM을 맞추는 맥락 안에서는 더욱 불만스럽다. 'Hanwoo'의 떡갈비에서 단백질이 간장의 감칠맛을 입고 살아남는데 비해 허브 크루트는 그렇지 않다. 내친김에 'Hanwoo' 이야기를 해보자. 곁에 제공되는 한우 스테이크는 완전히 정서적인데 기대는, 소재주의 위주의 영화 비평을 떠올리게 하는 처절한 패배다. 스테이크가 아니면 죽는 사람들을 위한 헌사로 그나마도 소금간마저도 밋밋한 것이 정말 그렇다. 찹쌀밥은 얹은 것들의 향이 적절히 배어, 그리 크지 않은 솥에 정직하게 지은 듯 보이지만 파인 다이닝 수준에 이르지 않는다. 신김치 위의 깨는 그야말로 사족이었다. 한식의 한상 문화를 주제로 삼기에는 반찬이 서로 어울리지 않고, 고기 요리의 보조로서는 궁색하다. 결론적으로 서양식 만찬에서 극단으로 치달아야 할 순간 오히려 차분해지는 괴리를 느낀다.

화이트 와인에 맞춰나오는 'Sense of Jeju', 한식 문화를 인용하고 있는 'Namul'과 'Ssam'은 한층 더 착잡하다. 'Lamb'과 'Hanwoo'가 파인 다이닝의 수준을 보여주지 않는게 문제라면 이들은 실패에 가까운 요리다. 'Sense of Jeju'의 금태는 생선과 전복, 둘 모두 본질적인 '빵'의 문제도 있겠지만 특히나 금태는 조리 상태가 나쁘다. 극단적인 기름기로 이름값 높은 생선인데 살의 일부는 건조하다고 느낄 정도이니. 애호박은 밋밋한 단맛을 더할 뿐이며 살사 베르데로 소개되는 소스는 실상 살사 베르데가 전혀 아니다. 살사 베르데가 아닌 것에 더해서 소스의 역할도 해내지 못한다. 지방이 풍성한 생선에 어울릴 만큼 풍미를 당기지 못한다. 단호박 또한 본래도 풍미가 진하지 않은 것을 표면적만 넓혀 밋밋한 단맛만 남긴다.

거기에 어린 샤르도네를 이런 잔에 마시려니 혼잡하다. 나쁜 구대륙 와인의 버릇을 일부러 느끼기 위해서? 음료에 대해 후술하겠지만 금태와 샤르도네? 모두 맛이 아니라 격식을 위해 등장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맛으로는 전혀 설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요리의 첫머리쪽에서 더욱 극단적이다. 초당 옥수수의 잔인한 단맛에 빠져 죽은 캐비어, 이미 소를 채워 풍미를 지니고 있는 빙떡 위의 송이버섯이 그렇다. 캐비어야 이제 말하는게 질리고, 올해 송이버섯은 아직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고 있는데 성급하게 메뉴에 오른 송이는 그야말로 밋밋하다. 송이의 품질 자체도 문제지만-현황을 감안하면 중국산이라 본다- 최소한의 열도 가하지 않으니 향이 꽃피지 못하고 천하의 송이가 죽고 만다. 물론 좋은 송이야 날것에 소금만 쳐도 그 향에 중독될 지경이지만, 그런 경우는 송이로 아예 메뉴를 짜는 경우이고 단 한 번 계절감을 위해 쓰려 했다면 결코 이렇게 습관적으로 내서는 안될 일이다.

떡갈비 반상에서 반상이니까 놋수저라는 설정 또한 습관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파인 다이닝에 이르는 레스토랑인데 떡갈비를 젓가락으로 가르고 있다. 그나마도 전복 살 씹는 재미가 살아있는 떡갈비라 애석하게도 힘주는대로 갈라지지 않는다. 양고기를 낼 때는 그에 맞게 날카로운 칼을 내면서 반상은 단지 반상이기 때문에 수저인가. 심지어 밥은 질기도 하거니와 극소량이기 때문에 이 크기의 숟가락은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디저트 이야기를 해보자. 'Rice Trio'는 아이디어를 높이 사는데, 파인 다이닝이 도전해야 할 역할이 외려 디저트에 이르러서야 시도된다는 인상이다. 쌀이라는 지극히 일상적 재료의 다양한 측면들을, 그것도 쌀의 원위치가 아닌 곳에서 밝힌다. 마땅히 한식을 표방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해야 할 작업이다. 그러나 '크림-그라니타-아이스크림'에는 매개체가 없고 모두 비슷한 단맛을 지녀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엿기름 아이스크림은 정말 조청맛이라 놀랐으나 과연 이 맛이 나도 되는가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레몬은 신맛에 더해 쓴맛까지 가세해 전체를 어우른다기보다 공격적으로 맞선다. 단지 전형적인 서구 디저트의 형식에 쌀이 조금씩 들어갔을 뿐, 정작 푀이유떼나 튀일 등 매개체는 없는 실정이므로 디저트의 인상은 미완이라 본다. 'Melon'은 그라니타에 아이스크림을 얹었을 뿐으로, 무엇이 프리 데세르이고 무엇이 주인공인지 분간이 어렵다. 파코젯이 만드는 아이스크림도 이제는 어딜가도 만날 수 있는, 주제의식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라 본다. 미냐디즈에 대해서도 굳이 이야기해보자. 주악은 조청을 머금어 촉촉한게 아니라 기름이 덜빠져서 아주 흥건했다. 정과는 뿌리의 쓴맛도, 특유의 향도 옅었다. 오히려 빛나는 쪽은 마카롱. 양과와 한과의 동거가 이래서야 무슨 감흥이 생기겠나. 프릳츠 커피? 이곳을 관리하는 컨설턴트의 친분의 반영으로밖에는 안보인다. 프릳츠의 가장 저렴한 블렌디드 원두들 중 그나마 배전도가 높은 종류인데, 식사의 마무리로서 커피의 역할은 이해하고 있지만 파인 다이닝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완성도만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에스프레소를 고려했어야 한다.


총평: 밍글스의, '인상적인 경험'은 높은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레시피가 지나치게 편의적이다. 한국의 맛, 혹은 조화롭게 어우르다와 같은 스스로 표방하는 주제의식은 단지 국산, 아시아의 식재료가 슬며시 자리하는 정도에 머무른다. 서로간 어울리지 않고 단지 어색하게 동석한다. 양고기의 조리는 습관적으로 프랑스에 기대어 한식을 배제하지만 메밀을 다룰 때에는 브르타뉴의 흔적조차 없다. 쌈은 속을 겉으로 감쌌으되 쌈을 먹는 습관에 대해서는 어떤 영감도 주지 않는다. 농담처럼 '콩나물국밥도 차(茶)인가' 하듯이 이걸 쌈이라고 하겠는가. 하드쉘과 옥수수 토르티야의 절묘한 부드러움 사이를 거니는 우리의 잎사귀 매개체에 대해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않은 듯 하다. 감태, 초당 옥수수 퓨레 같은 것들은 이제 말할 힘도 나지 않는다. 토마토와 바질을 통해 지중해를 그리지만 선드라이 토마토는 한껏 씹어주어야 하니 콩국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콩국은 완두콩 벨루떼의 다른 표현으로 가라앉는다. 백향과는 단지 한국에서 나오는 철이 지금이라 낸 듯한데 브아롱 퓌레를 쓰는 뻔한 제과점보다도 지루하다.
외려 한국을 배제할 때 밍글스의 요리는 빛난다. 데리야키와 야키도리에 기대는 닭 꼬치구이, 스시를 연상케 하는 보리새우가 가장 빛나고, 디저트에 있어서도 양과가 한과를 질, 양 모두 압도한다.

전형적인 파인 다이닝의 역할의 수행에 비추어서는 어떠한가? 전형적 프랑스 요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대에서 쾌락의 크기를 마음껏 키우는가? 그렇지는 않다. 와인 짝짓기가 그렇다. 피노 누아/샤르도네는 아니지만 샴페인, 부르고뉴는 아니지만 샤르도네, 보르도는 아니지만 결국 높은 탄닌의 BDM이다. 노마가 이끄는 '노 보르도'의 혁명을 위해 와인 수입사까지 겸영하겠다는 열정이 복고풍에 휩싸여 침몰한다. 식전빵을 걷어냈더니 이제 식전주가 짝짓기의 식전빵이 되었나. 그럼에도 밍글스의 요리는 때때로 즐겁다. 열과 온도의 통제, 초반의 한 입거리들보다 단백질 요리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최소한의 수준이 무너진 조리는 보이지 않는다. 흑마늘이나 고사리 등 배치된 한식의 고유한 풍미들이 크게 빗나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지워지지도 않는다. 정찬으로서의 만족감의 최소한을 채울 수 있다. 직전의 스와니예가 서울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면 밍글스는 최소한 정찬으로 식사를 하는 이유는 알고 있다. 조리는 서구의 기준에 빗대어 결코 떨어지지 않고, 온도 및 질감은 한결같이 친절하다. 그러나 어느 다른 곳이 아닌 밍글스의 요리라는 경험은 여전히 어떤 만족스러운 결론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 사고의 흐름들이 짚일 뿐이며, 적절히 관리되고 있는 원가와 또 적절한 난이도를 유지하고 있는 레시피에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셰프가 스스로 "한식의 팬덤이 두터워졌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했던게 기억에 남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식의 질에 대해 논할 수 있는 토양이 있어야 한다. 밍글스는 현재 예술로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레스토랑은 그것에 봉사하고 있는가?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과 떡볶이를 내던 「Hansik Goo」의 모습이 어째서 이곳에서는 드러나지 않는가. 나물과 쌈 이외의 단백질의 조리가 한국을 방향으로 하지 않는데, 나물의 품질, 쌈이라는 요리의 질과 취향을 논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는가? 밍글스를 통해 한국의 식문화의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제주산 생선과 전복이 올라오기 때문에 제주의 감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단계는 이제 극복할 때가 되었다. 허영만의 망령이다.

분위기: 넉넉한 채광과 나무가 형성하는 전형적 분위기, 기물들이 형성하는 위화감

서비스: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흐뜨러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그러나 예외의 경우를 상정하지 못하는 경직된 매뉴얼, 통화를 일삼는 객을 저지하지 못하는 굴종의 태도, 객의 반응을 살피지 못하고 그럴 의지도 별로 없는 전형적 한국식 서비스라는 지점은 그대로.

가격: 점심 KRW 125000, 저녁 KRW 220000의 단일 메뉴. 점심에 단품 3종(KRW 100000)을 추가하면 저녁 메뉴와 거의 동일한 구성이 되므로, 테이스팅 코스는 사실상 KRW 220000의 단일 메뉴로 보아야 한다.

음료: 프랑스, 부르고뉴 위주의 행정편의적 구성. 재미와 현실 사이의 불유쾌한 타협.

  • http://restaurant-mingles.com/v3/ (https 아님)
  • +82-2-515-7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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