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뉴 웨이브가 필요하다
I. 서론
마트의 주류 코너에서 와인 냉장고는 자주 쳐다보지만 막걸리 냉장고는 정말 쳐다보지 않는데 어느날 돌연히 한강주조의 나루 생막걸리를 잡아들었다. 찰스 H.에서 11.5도짜리 나루 막걸리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소규모 막걸리 시장은 매우 재미가 없는 관계로 그간 손을 대지 않았는데, 까놓고 말해 지자체와 정부 지원으로 일어난 크래프트 양조 붐이 무엇을 남겼나. '곰세마리 양조장'부터 '구름아 양조장', 지금은 뭐더라? 하여간 자리잡을 새 없이 새로운 창업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항상 제품은 구하기가 어려워야만 하니 애초에 사람들의 삶에 무엇을 남길 가능성이 없다. 그러지 않는 것이 동력이니까. 여전히 예약주문을 받고있는 구름아와 달리 한강주조와 복순도가의 막걸리는 대형마트의 냉장고에서 볼 수 있으니 이들은 좀 다를까? 사건이 드디어 판단을 요구할 만큼 무르익었다. 가차없이 마트에서 와인 코너를 지나쳐 막걸리를 담고 마시고 막걸리에 대해 글을 쓸 필요를 느꼈다. 막걸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II. 한국 막걸리사
1. 한국 막걸리사를 톺아보는 이유
내가 태어난 순간 이미 역사적 의지가 내게 강요하는 주류문화가 있었다. 세상에는 소주와 맥주, 그리고 막걸리 세 가지의 술이 있었다. 각각 녹색병, 갈색병 그리고 플라스틱 병을 상징으로 하는데, 이들의 맛 역시 이미 주어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셋 모두 그 맛이 옳다고 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웠다. 클리셰와 같이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왜 소주와 같이 맛없는 것을 먹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성인이 된 지금은 이해는 하지만 마시지 않는다. 맥주 역시 마찬가지. 막걸리는 어떤가. 막걸리는 맛(taste)의 측면에서 최소한을 갖추고 있다. 신맛과 단맛이 있어서 최소한 맛이라는게 존재한다는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통상 숙취가 강하다느니 하는 뜬소문에 더불어 적절한 기물이 없어 양푼에 주전자가 아니면 분위기를 내지 못하는 문제로 변화하는 식문화에 발맞추어 올라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막걸리는 우리 삶에 깊이 관여한 주류로 모두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바, 막걸리의 변화 양상을 살펴 우리가 알지 못한 부분을 알고 바꿔야 할 부분을 바꾸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2. 1920~30년대 일본식 발효법의 도입
본래 막걸리의 원료는 물, 쌀, 그리고 누룩으로 누룩은 주로 밀기울로 제작하였으나, 일본의 장류 발효에 사용되는 입국(Koji)이 일제강점기 조선에 도입되며 입국을 이용한 막걸리가 등장하였다. 이에 더해 당시 일본의 식품과학계에서는 황국균 이외의 효모들을 유해균으로 이해하는 등 기술적 문제가 더해서 전통 누룩은 빠르게 질적으로 저하되고, 획일화되었다.1
3.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탁주 원료 제한
1963년 박정희 정부는 쌀농사의 흉작을 이유로 쌀을 원료로 한 막걸리 생산을 전면 금지하기 이르렀다. 총무처는 탁주 원료를 전면 밀로 교체하고자 하는 '탁주 제조원료의 교체조치와 밀조주 단속방안'을 제출하였고2
이후에도 박정희 정부는 쌀을 이용한 주류제조에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1965년 재무부고시 제377호는 백미의 이용을 허가하면서 20%를 초과할 수 없게 규정하였다가, 그마저도 다시 폐지되었다. 해방정국부터 질적으로 저하를 거듭하던 막걸리 품질의 숨통을 끊은 시절로, 희석식 소주가 주류문화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때도 이 때이다. 재밌는 점은 박정희 본인이 맛있게 먹은 막걸리의 경우에는 사정을 봐줬다는 증언이 있다는 점이다.3 이외에도 제조방법을 10가지로 표준화하는 등4 박정희 정부의 이러한 막걸리 탄압에 더불어 1970년대 이후에는 이른바 카바이드 막걸리와 같은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막걸리의 신뢰할 수 없는, 먹고 나면 속이 안좋은 술이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된다.
4. 1990년대 이후 : 감미료 막걸리의 시대
1985년 아스파탐을 시작으로 식품위생법상 당류 대체성분들의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의 발효로 얻은 미약한 신맛을 죽일 정도의 강렬한 단맛의 막걸리가 탄생했다. 여전히 막걸리의 밀주 등의 유통 문제는 계속되고 있어 이러한 관행은 충분히 기록되지는 않은 듯 보인다. 막걸리 제조실태에 대해서는 우리 공공기관들마저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금지된 첨가물이 혼입된 막걸리를 적발하였더니 그것이 모조품이었던 사건도 있는 등5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막걸리업계는 아스파탐, 스테비오사이드 등을 이용한 저질 제품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서울의 '장수막걸리'부터 부산의 '생탁'까지 피할 길이 없었다. 대부분 지역소비품에 그쳤고 새로운 막걸리랍시고 개발한 것들은 기타 첨가물을 넣은, 인삼막걸리 밤막걸리.. 이런 부류들이었다. 그나마도 지지부진했다. 이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막걸리 시장의 현주소이다. 바나나 막걸리 따위가 등장해보았자 인삼막걸리의 바이브를 이을 뿐이고, 백종원 골목막걸리 역시 그런 제품을 만드는 (주)우리술의 라이센스 제품으로 수크랄로스 맛밖에 안난다.
III. 무감미료 막걸리
이런 배경에서 느린마을을 대표로 무감미료 막걸리라는 시장도 생겼다. 그게 뭐냐고? 이 제품군들 중 가장 괜찮게 먹은 한강주조의 예를 통해 설명하겠다.
한강주조 홈페이지의 캡처본이다. 천천히 독해해보자. 서울에서 제조되는. 본점소재지가 성수동이라는 뜻이다. 대표가 성수동에서 브루클린을 컨셉으로 한 카페같은걸 운영했었다. 그 다음 '경복궁쌀' 100%. 상표야 붙었지만 '아끼바리' 썼다는 뜻이다. 강서구가 쌀 짓기 좋은 땅인지는? 그 다음 무감미료, 무첨가물. 바로 이 부분이 이 막걸리 제조의 핵심사항이자 이념이다. 이게 이런 종류의 막걸리의 특징이다. 깨끗하고 정직하게는 무익적 기재사항이며, 서울특별시의 지역특산주라 함은 전통주산업법상 주류제조면허를 지역특산주면허로 받았다는 뜻으로, 제조장 소재지 관할지역 농산물로 만들면 받을 수 있다. 즉 경복궁쌀과 동어반복이다. '아끼바레'. 고문서의 레시피 재해석. 문헌을 언급할때는 이렇게 인용을 하라. 그렇다면 글에 남는 부분은 역시 무감미료 무첨가물밖에 없다.
이것이 현재 무감미료 막걸리 제품군의 실태이다. 어떤 것을 만들겠다가 아닌, 부정하고자 하는 대상으로서 감미료 막걸리라는 저질 제품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긍정되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류의 막걸리는 확실히 먹을만 하다. 한강주조의 것은 특히 빛났다. 별도 리뷰를 작성하겠지만 큰 틀에서 양조가 아주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없고 탄산 따위의 부담스러움이 없이 마우스필 역시 깔끔하다. 하지만 이는 병당 7천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KRW 3만~4만을 부르는 복순도가 손막걸리나 일엽편주 탁주같은 것들은 동일하게 말하기 힘들다. 이들은 모두 무감미료 막걸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유의미하지, 풍미에 있어 10~30배 이상의 가격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IV. 막걸리의 미래: 3세대 막걸리의 필요성
나는 막걸리의 미래는 막걸리 소비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생산자들은 소비자가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지불하지 않는 이상 더 나은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위의 무감미료 막걸리들을 살펴보라. 휘황찬란한 병 디자인의 내용물에서 맛이 어떤 점에서 탁월하다라는 것의 기준은 여전히 감미료 탁주를 기준으로만 설명된다. 그들 간에서 탁월한 플레이어는 있는가? 이제는 막걸리 시장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막걸리의 기준들이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크게 나누었을때 감미료로 무장하고 식품안전을 확보한 90년대 막걸리가 1세대, 무감미료를 내세운 21세기 초의 막걸리가 2세대이고 현행 크래프트 양조장들도 2세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이제는 막걸리 제작 과정의 품질에 대해 논하는 3세대 막걸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요한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어야 한다:
첫째로는 쌀이다. 쌀의 힘이 느껴지는 막걸리가 나와야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여러분은 템프라니요와 피노 누아를 구분하지 못하시는가? 물론 주조용 쌀은 양조용 포도에 비해 개발사도 짧고 그정도의 큰 차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코올의 생산 과정에서 맛을 내는데 유리한 쌀의 특성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쌀을 이용한 술을 판단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한다. 쌀 전분 자체에 더 큰 맛의 가능성이 있어야 모든게 시작될 수 있다.
둘째로는 도정이다. 미생물 활동에 도움이 안되는 효소와 단백질 등이 충분히 제거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고, 도정을 통해 쌀을 발효에 적합한 형태로 가공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쌀의 발효과정 중 얻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긍정적 풍미로는 바나나향이 있는데, 이는 액체속 이소아밀 아세테이트의 감각이다. 이소아밀 아세테이트는 알코올의 생성 과정에서 자연히 발생하지만 불포화지방산이 형성 과정에 방해물이 되므로 쌀의 도정율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일본술의 경우 쌀의 60%정도를 남기면 이 향이 충분히 느껴져 긴죠향이라 표현하지만 고형분이 많은 막걸리는 향을 감지하기 위한 역치가 더 높을 것이므로 그와 동일한 기준으로는 안된다. 물론, 이소아밀 아세테이트 형성에는 산소 접촉, 효모의 에탄올 스트레스 등의 다른 변인도 있으므로6 쌀 깎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으나, 현재의 막걸리들은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있다. 국내 유통 쌀의 거의 전부가 도정율 72~3%, 벼에서 현미로 80%, 다시 현미에서 백미로 90% 수율이 곱해진 값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특별히 주조용으로 도정한 쌀이 아니면 안된다고 소비자가 이 부분을 끊임없이 요구하여 생산자가 신경쓰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로는 누룩이다. 한국 요리가 발효로 유명하다고, 노마 발효 가이드에 손맛을 상징하는 손이 나왔다고 호들갑 떨던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 핵심인 발효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냥 전통이라고 덮어놓고 잘하겠지 믿지 말고, 어떤 국균을 썼는지, 누룩은 어떻게 디디고 덧술은 언제 했는지 그 이유를 고찰하고 맛에서 찾아내야 한다. 빵을 생각해보면 르뱅도 수분율에 따라 뒤르랑 리퀴드로 구분하면서 시작하는데, 누룩 역시 법제 과정에서 온도, 수분과의 싸움이 핵심인데 그것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없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진정 발효로 빛나는 음식이라면 그 발효의 심장부인 누룩이 드러나야 한다. 드러난 누룩의 얼굴에 따라 제품에 대한 평가는 바뀔 것이다.
V. 결어
이상으로 막걸리 제조의 과거, 그리고 현재, 마지막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소비자의 시각에서 제시했다. 막걸리는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아갈 방향이 제시되지 않고 있어 혼란스러운 발걸음만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막걸리를 사랑하고 우리 음식을 사랑하는 뼛속까지 토종으로서 막걸리의 미래를 우려한다.
1: 이상훈. (2020). 조선시대 누룩과 양조법의 변화-누룩 제조법의 변화를 통해본 양조법의 변천. 불교문예연구, 16, p. 400.
2: 국가기록원, 1963년도 국무회의 안건 목록.
3: 최영기, 강대석. 2009년 10월 15일. 대통령의 맛집 ③ 박정희 전대통령이 뒤봐준 막걸리.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825182
4: 성기옥. (1989). 탁·약주의 제조와 판매현황.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4(3), p. 288.
5: 대법원 1998. 5. 22. 선고 97다57689 판결
6: Takahashi, T., Ohara, Y., Sawatari, M., & Sueno, K. (2017). Isolation and characterization of sake yeast mutants with enhanced isoamyl acetate productivity. Journal of bioscience and bioengineering, 123(1), 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