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티스트 - 파르페 2021 보고서

디저티스트 - 파르페 2021 보고서

전편의 글의 피로가 여기까지 느껴지지만 마저 매듭지어야 할 일이 있었다. 파르페다. 딸기와 초콜릿, 우유라는 동일한 풍미들로 이루어진 전혀 다른 디저트가 우리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여러번 「디저티스트」에 들르면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파르페를 먹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거의 비어있는 잔이긴 했지만, 덕분에 나도 파르페를 하나 먹을 속셈이 생겼다.

파르페하면 단순하게 떠오르는 것은 몇 가지 있다. 첫째로, 확실히 일상의 물건은 아니다. 이곳에서의 가격(KRW 15000) 뿐만이 아니라, 아예 일상적으로 접할 이유 자체가 없는 물건이다. 수십년 전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는지 파르페를 먹을 수 있는 대학가 카페가 썩 있었던 듯 하지만 이제는 몇몇 기성품에만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롯데의 "트로피칼"이나 "가나 파르페", 라벨리의 라보떼 등. 후자는 세금까지 포함한 가격으로 먹어본 일이 없고 전자는 지독하게도 맛이 없다. 기성품에서 경험이 이러니 파르페라는 형식 자체에 흥미를 가지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통용되는 파르페의 의미 파악을 위해 언중의 용례를 먼저 뒤져본다. "파르페 맛집"같은 키워드면 현실을 적당히 핥을 수 있겠다. 그리고 확인한 것은, 파르페 맛집이라고 몇 년 전 소개된 곳들 중 반수는 닫았다는 사실. 그나마 남아있는 곳들도 파르페보다는 빙수가 주력이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파르페의 시각 자료들을 취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파르페 : 흔히 음료를 담는 잔에 주스와 크림, 아이스크림과 생과일, 때에 따라 시리얼 등을 더해 만든 일종의 디저트.

이러한 요리는 일견 독특해 보이지만 파르페만의 영역을 독자적으로 설정해주어야 할만큼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얼이나 생과는 로투스나 오레오 등이 쓰이는 케이크들처럼 관습의 산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 발짝 물러서서 조금 더 접근 가능한 요리들과 비교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파르페라는 분류가 아닌 컵에 담긴 조립식 디저트, 유리잔에 담긴 아이스크림Coupe glacée의 일종이다.

투명한 잔은 확실히 시선을 잡아끈다. 지금 보는 경우에는 림이 지나치게 좁아 먹는 경험에는 긍정적으로 기여하지 않지만, 그만큼 쌓여있는 모습의 아찔함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진다. 거기에 더해 어쨌거나 단일한 질감을 지닐 수 밖에 없는 아이스크림에 씹히는 감촉을 더해줄 수 있는 젤이나 머랭, 튀일 등을 더하고 아이스크림 또한 여러가지 맛이 등장하므로 한 숟가락의 아이스크림보다는 기대할만한 것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조건들이 전부 동일한 경우ceteris paribus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앞서 말한 잔 입구 크기의 문제. 여러가지가 더해지지만 결과의 값이 덧셈으로만 계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파르페가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는 파르페의 개선 가능성보다는 딱히 파르페 이외에 아이스크림을 사용한 디저트라는 분야 자체가 도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요리 교육을 받았다면 습관적으로 크럼블을 깔아내는 반면 이탈리아 방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곳들에서는 반대로 토핑을 끼얹으려 노력한다. 그 밖에 아이스크림이라면 반드시 크넬 형태로 떠내고 픈 곳들도 있지만, 전부 파르페만큼 복잡하지도 않고 파르페보다 딱히 뛰어나지도 않다. 파르페도 오로지 맛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맛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들도 영 아니라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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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Oberweis,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이용한 카푸치노 타르트.

글을 쓰기 전에는 파르페의 명목상 고향일 유럽 대륙에서 아이스크림을 활용한 디저트를 몇 가지 짚어보려 했는데, 사실 이렇게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바슈랭같은 단순한 응용례들이 뻔히 사전에 등장하는 판에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이 땅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인다. 아이스크림은 사용하는 순간 디저트의 주인공이 될만큼 강력한 만큼 아이디어는 충분히 쌓아왔는데, 주방에서는 여전히 자리가 없다. 파르페 이외의 형식이 이 가게 바깥에 충분히 존재한다면 그때에서야 아이스크림을 활용한 요리의 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갈 수 있겠으나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파코젯과 냉동고, 그리고 유지방이 있는 곳이라면 희망이라도 걸어볼 뿐이다. 「젠틀 몬스터 X 펜디」 협업으로 출시된 끔찍한 돌덩이를 떠올려보면 그래도 시대가 나아지고 있다. 다시 2022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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