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의 근현대사 ③ : 피자 미식의 시대

피자의 근현대사 ③ : 피자 미식의 시대

I. 미식gastronomy의 대상이 된 피자

물론 피자는 언제나 맛있었고, 또 피자 제조자들은 맛있는 피자를 팔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피자가 본격적인 미시적 관찰대상이 된 것은 매우 근래의 일이다. 이는 일반적인 대중음식들에게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해당 요리의 역사가 짧건 길건 이들은 오래도록 미식의 대상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이는 매우 최근까지, 혹은 지금마저도 미식은 전적으로 부르주아의 예절과 같은 특정 계층의 유희거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미식의 대상으로 할 것인가 하는 시각은 전적으로 인간의 허영, 혹은 문화적 권력 등과 결부되어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50~70년대 세계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중산층 인구가 폭발적으로 확대된 이후, 이들이 종전에 향유하던 일상 음식들 역시 미식의 영역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II. 미국 피자의 발전

체인화된 배달 피자가 미국 전역을 정복했지만, 모든 것이 (심지어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수마저도) 충분한 미국에서는 남다른 시각으로 피자에 새로운 맛, 새로운 완성도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등장한다. Lombardi's와 같은 노포들이 문화의 유지를 잇는 중추를 맡았다면 뉴욕 바깥에서는 나폴리를 벗어난, 혹은 넘어선다고까지 할 수 있는 미국적인 피자들이 등장한다. 시간 순서로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뉴 헤이븐의 클램 파이로, 페페로니부터 시작된 미국의 재료나 환경을 감안해서 만든 피자라는 아이디어에 토마토 소스를 완전히 배제하고 뉴 헤이븐의 환경에 맞추어 제작했다는 데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이후 1980년대에는 피닉스에 위치한 비앙코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피자 미식을 가능케 하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하지만, 80년대 가장 주목해야 할 움직임은 캘리포니아 스타일 피자, 혹은 고메 피자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캘리포니아 스타일 피자는 기본적으로 미국화된 피자 반죽, 즉 크게 높지 않은 수분 비율에 허공에서 돌리는 방식으로 펼친 반죽을 쓰며 나폴리식 화덕 오븐을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피자의 성공 비결은 이러한 빵-부분이 아닌 그 위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캘리포니아 요리의 발전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무화과를 올리는 버릇으로 종종 회자되는 캘리포니아 요리는 프랑스 요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되 신선한 지역 야채와 해산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종종 이탈리아 요리의 문법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정의되는데, 이러한 형식이 최초로 정립된 것은 앨리스 워터스의 Chez Panisse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참고로 셰 파니스는 이후 팜 투 테이블을 퍼뜨린 곳으로 또 역사에 남는다). 1970년대 셰 파니스의 영향을 받아 캘리포니아 지역의 계절 등을 감안한 제철 재료를 쓰는 레스토랑들이 속속들이 등장했으며 볼프강 퍽의 Spago도 그 중 한 곳이었다. 피자이올로 에드 라두의 피자를 먹고 충격을 받아 그를 고용해 오픈한 것으로 알려진 Spago는 캘리포니아 요리의 사고방식을 피자에 접목해 냉동 피자, 배달 피자가 아닌 제철 재료를 올려 만드는 독창적인 방식의 피자로 미 서부 피자의 시대를 연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피자는 역시 훈제 연어 피자로, 록스와 크림 치즈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훈제 연어에 크렘 프레슈로 피자를 만들고 캐비어로 방점을 찍는다. 이와 같이 캘리포니아 피자는 나폴리의 문법에 전혀 구속받지 않고, 오히려 캘리포니아 주변의 수많은 식문화의 전통을 흡수한 새로운 피자의 시대를 연다.

III. 현대 피자/미식 피자Pizza Contemporanea/Pizza Gourmet

각종 협회들을 중심으로 나폴리 피자의 전통에 힘쓰던 사이, 엔초 코치아(Enzo Coccia)와 같이 피자의 과학적인 원리를 밝히고 레시피의 개수를 위해 힘쓰던 피자이올로도 있었지만 나폴리 피자가 본격적인 미식의 시대에 접어든 것은 21세기에 접어선 이후이다. 이들은 대부분 AVPN이 제공하는 표준과 그들과 관련된 나폴리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장소는 1999년 개업한 I Tigli로, 시모네 파도안이 이곳에서 스스로 미식 피자pizza degustazione/pizza gourmet를 주창한다. 나폴리 재료의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료와 방식을 채택하고, 토핑과 피자를 반드시 같이 구워 완성하는 레시피에서 벗어나 부분별로 분리하여 조리하여 조립하는 등 I Tigli는 새 시대의 피자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또한 프랑코 페페의 Pepe in Grani 역시 나폴리 도심이 아닌 외곽의 카이아초에 위치해 밀가루와 바질 등 기본적인 재료부터 지역 생산자와 밀착하여 관리하는 방식의 피제리아로 많은 피자이올리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스타치오와 모르타델라, 감베로 로쏘 타르타르와 스트라치아텔라, 프로슈토 크루도 디 파르마와 부라타 등 중부, 북부의 재료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레시피들이 탄생하였다. 물론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I Tigli와 같이 각 조합에 맞는 반죽 및 레시피를 고안했어야 했지만, 그대로 수용하지 않더라도 많은 피자이올리에게 영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2010년대 이후 현재 피자 씬은 이탈리아 및 유럽 등지에서는 위 흐름의 연장선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더해 반죽의 수분율을 더욱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발효를 강조한 새로운 반죽이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대표하는 이들은 Ciro Salvo, Carlo Sammarco, Francesco Martucci 등이 있다.

미국에서는 동부 대도시를 시작으로 AVPN 나폴리 피자의 영향을 받아 네오 나폴리탄(NEO-politan) 피자가 탄생하였다. 이들 역시 AVPN의 60%대보다 높은 수분율을 보이나, 차이가 있다면 반죽의 크러스트를 두텁게 형성하는 등 나폴리의 황금률인 잘 소화되는 부드러움을 거부하고 먹는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또한 유사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면 나폴리식 돔 형태의 화덕에 의존하지 않고 간이식 장작 오븐 등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I Tigli>의 피자. 사진:Corri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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