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의 잘토와 유니버셜 글라스

최근 중국에서 그럴싸한 크리스털 글라스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구매한 뒤 한참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여느 날 도착한 택배는 나에게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사진의 오른쪽의 상자와 잔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가난한 자의 잘토" 잔이다. 물론 내게는 이미 또 다른 "가난한" 잘토가 있다. 바로 슈피겔라우의 데피니션 유니버셜. 그렇다. 셋 중 오리지널은 왼쪽의 잘토 유니버셜 하나 뿐. 가운데는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유니버셜, 그리고 오른쪽이 중국제 "덴크 아트 스타일" 유니버셜. 잘토 특유의 나이테 문양의 상자를 모방해놓은 모습이 아주 깜찍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이런 글까지 쓰게 되었을 정도로.

이 "모든 와인을 가능하게 하는 한 잔"의 개념은 매우 현대적이고, 어쩌면 위험한 아이디어이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아는 한 현대적인 유행의 뿌리는 오스트리아의 "와인 사제"로 불리는 한스 덴크와 잘토가 손을 잡고 출시한 "덴크 아트DenkArt", 독일-스위스의 와인 비평가이자 바이어로 활동했던 르네 가브리엘이 제작한 "스탠다트StandArt" 두 곳에 있다. 이후 리델과 즈위젤을 비롯한 시장 지배적 기업들에 더해 잘토의 지분을 팔고 독립한 쿠르츠 잘토가 설립한 조세핀 등 신진 기업들까지 가세해 이 새로운 글라스 유행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유니버셜 글라스로, 핸드블로운으로 만든 파괴적인 두께, 충분한 표면적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와인을 품기에 부족하지 않지만, 단순한 와인을 죽이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과 '원 포 올' 솔루션이라는 솔깃한 이야기에 소비자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빠르게 매료되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Le Bernardin이 리노베이션 직후 잘토 유니버셜로 서비스를 했었고, 한국에서는 모수가 오픈 이후 여러 와인은 물론 일본술까지 가브리엘 골드에 서비스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한 종류로 전부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유니버셜 잔들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으니, 그 사이를 비집고 등장한 희대의 문제아가 슈피겔라우의 데피니션이다. 대놓고 잘토와 유사한 구성과 형태를 가지고, 단지 조금 더 작은 형태로 만들어진 이 제품군은 기계로 만든 저렴한 잘토를 원하는 소비층의 니즈를 노골적으로 노렸으며, 지식재산권법 분야에서 곧바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매년 가장 부끄럽고 뻔뻔한 모조품을 선정하는 독일의 소비자단체 Aktion Plagiarius에서는 이 데피니션 글라스를 '올해의 짝퉁'으로 선정했고, 디자인권 침해에 대한 소송이 계속 중인 것으로 안다(2025년 4월 기준). 그리고 이렇게 그 둘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데피니션보다 더 노골적으로 따라한 물건을 만나게 되었다. 적혀진 주소지에는 알 수 없는 건물만 존재하며, 중국에서는 어떤 상표로 판매하는지도 모르겠는 유니버셜 글라스. 하지만 잘토 본품에 필적하는 얇은 림과 가벼운 무게, 그리고 그럴싸한 형상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로고가 지워진 잘토로 착각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

이러한 흐름은 유니버셜 글라스가 그만큼 너무나도 유용하기 때문일까? 나는 20세기를 회고해 본다. 와인잔에 'Form follows function'의 철학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은 클라우스 요제프 리델의 시대 이후이다. 리델은 다양한 와인의 스타일에 맞는 수많은 잔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였으나, 이제 다시 시대가 하나의 범용 잔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진정 당신을 위한 잔은 무엇일까? 지금은 캄파리로 적을 옮긴 크룩의 CEO는 플루트 잔에 크룩을 따라 마시면 귀를 막고 오페라를 듣는 것이라는 혹평을 쏟아내었지만, 많은 항공사에서는 불행하게도 좁은 플루트 잔에 크룩을 서브한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서 그녀의 명언을 크루에게 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잔의 퍼포먼스보다 분위기일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배회하는 사이 이렇게 가지고 있는 잔과 소금의 종류만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