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티브 - 우롱하이

포지티브 - 우롱하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차의 거성을 양옆에 두고도 한국의 차 문화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일전에도 다룬 바 있으므로 또 반복하지 않겠지만, 그 여파로 피해를 보고 있는 분야가 하나 있으니 음료만을 주로 제공하는 BAR라 하겠다. 분자 칵테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침출, 혹은 우리기infusing는 BAR에서도 핵심적인 기술 중 하나가 되었는데 그야말로 침출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차를 잃는다는 것은 뼈아프다.

그런 와중에도 차를 내세우는 BAR가 있다면 본래 기억나는 곳은 「티 센트」정도였는데, 우연히 다른 티 칵테일을 마시게 되었다. 아마도 낮에 영업하기 때문에 들르지 않았을까.

일단 입장한 순간 무엇이라도 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입구에 깔린 차 대부분이 호지차인걸 보고 아차, 싶었다. 이곳에서 차라는 것은 그렇게 다루어지고 있었다. 블렌드로 만드는 가향차 몇 종, 이외에는 차를 일종의 가향 매개정도로 인식해 얹은 정도. 티 푸드와 칵테일을 설계한 아이디어가 대충은 감이 잡히는 가운데 KRW 20000 언저리를 지출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나머지 방치되는 손님으로서 이런 칵테일에 선뜻 비용을 치르고 싶지 않았다. 대안은 저렴한 가격의 우롱하이(KRW 11000)이었는데, 마침 제대로 된 주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차를 전문으로 하는 바라면 이걸 잘 만드는게 어줍잖게 찻잎 향을 좀 더한 신기한 칵테일을 만드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롱하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하이볼은 산토리라는 회사가 전폭적으로 밀어줘 부활한 음료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본질은 술자리에서 들이키는 음료다. 왜 우롱차인가 하면 단지 일본에서 차 종류 중 차게 마시는 페트 음료로 제일 흔한게 우롱이니까. 하지만 좋은 우롱이 가진 굉장한 향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다홍파오를 쓴 카프리스 바의 다홍파오 사워가 좋은 예시였다. 인퓨징과 우롱이라는 두 주제를 훌륭하게 이해하고 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는데, 사워와 위스키 하이볼은 핵심 가치를 달리하는 음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스키 하이볼이라는 음료가 가진 맛의 이해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신맛+탄산의 청량함이 경험을 장악하지만 보통 위스키 하이볼의 좋은 기억은 첫 맛에서 전해지는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라는 느낌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위스키는 대량의 탄산음료에 의해 희석되고 있으므로 원래는 강하게 느껴질 수 없지만 순간적인 착각은 가능하다. 그래서 당을 넣어 단맛을 당겨 올리고 기주로도 단맛이 강한 산토리 가쿠빈이나 짐 빔과 같은 최소 수준의 버번을 쓴다. 조금 그럴싸한 하이볼을 만든다면 피트 캐릭터가 사는 조니 워커 블랙. 익숙한 맛이라 더 그런지 몰라도 첫 두 모금 정도는 정말 위스키라는 인상을 주니까. 이후로는 시원한 맛에 들이키는 음료이기에 큰 상관이 없다. 기본 얼개는 이정도로 생각을 해두고 다음은 왜 몸통으로 우롱을 쓰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로는 당연히 산토리 우롱차같은 페트병 우롱차들이 가지고 있는 강한 곡향이다. 현미녹차를 마시는 이유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거부감이 없다. 둘째로는 만약 가능하다면, 우롱이 가지고 있는 향과 위스키의 향을 잇는게 자연스럽다. 차창에 따라 개성은 천차만별이라고 하지만 산화를 강하게 시킨 우롱을 우려 갈색빛 도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오크 숙성에서 얻는 향들과 어울리기가 쉽다.

그래서 포지티브의 레모닉 우롱 싱글톤이라는 우롱하이는 어떘는가? 싱글톤을 정확히 무엇을 쓰는지 정확히 관찰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더프타운 12였으리라. 슬프게도 나는 이 음료에 포지티브할 수 없었다. 단맛이 없는 수준인 가운데 위스키도 향이 옅고 차도 옅으니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잔이라도 꽁꽁 얼려 탄산 가득하게 한 잔 마시는게 낫지 않을까. 요새같은 날씨 여기까지 걸어오는 더위를 해결해주기는 하이볼로서 역부족이오, 그렇다고 하이볼이라는 음료가 가진 맛을 즐기는 쾌락의 음료로서도 기능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게 있다면 시각적인 유희거리였다. 무언가 장식이 많았다. 우롱의 향을 인지하도록 돕는다는 우롱차와 분자 칵테일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듯한 foam까지. 본질에는 한치도 다가가지 않고 주변만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마 이 칵테일을 만들어준 바텐더는 자신이 만드는 음료를 직접 생각한 사람이 맞을까. 그렇다면 그는 지나치게 방자한 사람이리라. 누군가 이 매장을 만든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요리학교와 스타지 몇 번을 거쳐 개업하는 식당에서 느껴지는 바이브. 기술을 알기 때문에 일단 기술을 쓴다. 자본을 대는 사람들은 맛이 아닌 설정에 주목한다. R2D로 나온 밀크티 제품을 보니 외주 공장 주소가 적혀있었다. 이곳의 장인이라는 로스터는 주스 시럽을 만드는 공장에서 매일 차를 덖고 있을까. 왜 나는 맛있는 우롱하이 따위를 마시고 싶었던거지? 나는 너무 네거티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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