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미디어 산업의 제문제

F&B 미디어 산업의 제문제

68곳. 2008년 스위스의 배달노동자 파스칼 앙리가 목표로 삼았던 전 세계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의 개수이다. 그는 3만 유로의 예산을 모아 레스토랑 폴 보퀴즈를 시작으로 매일 3스타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많은 요리사들이 그의 여정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보냈으나, 40번째 레스토랑인 엘 불리에서 여정을 멈추고 돌연 사라져 화제가 되었었다. (후에 그는 과도한 관심과 무리한 일정으로 지쳐 잠적했다고 전했다). 그때가 2008년, 미슈랑 가이도 쟈폰이 첫 선을 보였던 해였다.

2025년 8월 9일 기준 미쉐린 가이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3성 레스토랑의 개수는 157곳이다. 17년 정도의 시간 동안 2배 이상 늘었다. 물론 가이드가 진출한 국가가 늘어난 덕이 클 것이다. 당시 서유럽 주요 국가에 미국 일부 도시, 일본 대도시 정도만 커버하던 미쉐린 레드 가이드는 홍콩-마카오(2008), 상하이, 싱가포르(2016), 서울(2017), 타이페이(2018)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갔고 이제는 인도 정도를 제외하면 북반구의 주요 관광지 대부분을 커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렇게 사업지를 늘리며 미쉐린 가이드가 매번 별을 쏟아낸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빈곤하고 무성의한 셀렉션을 보여주었던 미쉐린 가이드 부산을 비롯, '세계 3대 요리'를 자처하던 터키에게는 3스타 0곳의 굴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가장 엄격한 지역인 파리와 프랑스 본토를 제외하면 '스타 인플레이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영국, 아일랜드 지역에서는 2008년 레스토랑 고든 램지만이 3성을 받았지만, 지금은 영국, 아일랜드 가이드에서 9곳을 안내하고 있다. 서유럽, 비서구권이 아닐수록 기준이 널널해진다는 세간의 의심에 나는 찬성표를 던진다. 동일한 기준을 가진 미쉐린 가이드가 세계로 눈을 돌아봤더니 100곳 이상의 3스타급 레스토랑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의문스러운 이야기이다.

물론, 가이드 산업 자체의 등장이 3스타급 목적지 레스토랑의 건설 동력이 될 수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 곳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미식의 끝을 만들 이유는 별로 없지만, 가이드가 영업 중인 도시에서는 3스타를 받기 위해 도전할 이유가 생긴다.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필요할 수도 있고, 단순히 가이드가 여행객을 끌어들이고 사람들에게 레스토랑에 대한 소비를 촉진하여 그 흐름을 도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미쉐린 가이드를 비롯한 F&B 미디어 업계가 끊임없이 새로운 흥미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압력에 놓여있으며, 앞으로도 스타 레스토랑은 실제 레스토랑의 수준과 무관하게 숫자를 늘려갈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수여에 부담이 적은 1스타 레스토랑의 수는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게 늘어날 것이며(이미 엄청나게 늘었다) 3스타 레스토랑 역시 완만한 상승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에서는 억울할 수 있겠다. 마치 미쉐린이 이런 HYPE 인플레이션의 주범처럼 글을 쓰고 있으니. 사실 이런 흐름을 선도하고 주도하고 있는 업체는 윌리엄 리드다. 영국의 언론홍보사인 윌리엄 리드는 '레스토랑'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영국 내 F&B 미디어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가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이라는 사업을 전개하여 세계 레스토랑의 줄세우기에 도전했다. 그 실상은 첫 해인 2002년 레스토랑 고든 램지를 엘 불리에 이은 세계 2위, 프렌치 런드리를 3위으로 꼽으며 프랑스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3스타급 레스토랑 중에서도 스타가 없는 곳을 포함하고, 그중에서도 순위를 매긴다는 방식이 소셜 미디어와 자극의 시대를 맞아 대흥행에 이르렀다. 초기판을 보면 전적으로 서구 백인들이 갈법한 도시와 레스토랑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성별 분배(50베스트는 투표인단에 50% 여성할당을 실시한다), 지역 안배(투표인은 한 지역에 몰표를 줄 수 없다) 등 의도적으로 다양성을 도입하여 세계를 노리기 시작했다. (참고: 공식 투표 규칙) 이제는 '50 BEST'지만 100곳까지 뽑는 것 정도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수준이다.

이들이 시대의 흐름에 본격적으로 편승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은 'BEST OF BEST'라는 규칙으로, 1위를 달성한 레스토랑을 강제로 명예의 전당으로 보내는 장치이다. 명예의 전당 시스템은 고미요에서 일부 유서 깊은 레스토랑의 평점을 고정, 평가를 중단한 전례가 있는데, 고미요의 이러한 제도가 평가절하로 인한 극렬한 논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에 가깝다면 W50B의 명예의 전당은 의도적으로 새로운 레스토랑을 끊임없이 사업에 포함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엘 불리, 노마(각 5회), 엘 세예르 데 칸 로카, 팻 덕(각 2회) 등 가이드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 역할을 수행했다면, 이제는 우수한 레스토랑을 졸업시켜 새로운 레스토랑의 순위 진입과 상승을 유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요리업계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당장 가장 최근 가이드에서는 2023년 센트랄, 2025년 마이도를 뽑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스타가 존재조차 하지 않는 페루의 레스토랑을 두 곳이나 올려 페루를 바스크를 이은 새로운 요리의 중심지로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 W50B다.

하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최고의 레스토랑이 발굴되는 것이, 정말 최고의 레스토랑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가장 높은 곳'이라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애초에 퀴진의 분류를 달리하는 주방은 서로 경쟁이나 비교의 대상이 되기는 하는지 의문이다. W50B가 꾸준히 노마를 최고로 밀던 기간에도 미쉐린이 2스타를 유지하며 유지되던 긴장은 노마의 명예의 전당 입성과 3스타 수여로 일단락되었으나, W50B는 비-미쉐린 지역, 아사도 에체바리를 위시로 한 저스타 레스토랑에 대한 적극적 평가로 계속해서 미쉐린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압력 속에서 미쉐린이 방치해 오던 호텔 가이드에도 '열쇠'를 도입하고, 국가나 도시 커버리지를 늘려가는 것 외에도 별의 절대적 개수를 늘릴 것이라는 것은 합리적으로 예상 가능하고, 애초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만 해도 재평가가 전면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한 번 수록된 레스토랑이 게재 취소되는 일은 일 년에 몇 곳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몇 년 동안 경험으로 느끼고 있다. 유독 파리의 그랑 셰프를 내세운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만이 2스타에서 노스타, 다시 1스타로 승격되는 등 엄격한 잣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 프랑스계 가이드가 불분명한 잣대 중에서도 가이드의 브랜드 가치의 중심이 되는 프랑스 요리에 대해서는 엄격한 방식을 유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두 가이드의 경쟁은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와 한식진흥원이 미쉐린가이드에 최소 20억을 투자했고, 서울시는 윌리엄 리드의 아시아50베스트 행사에 매년 5억 원 이상의 예산을 책정, 집행하고 있다. 이 사업 역시 한식진흥원이 실무를 보고 있는데, 이 기관이 권력형 비리의 키로 주목받았던 한식재단이 이름을 고쳐단 것이라는 점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사견으로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배경이었던 최 모씨의 비리사업으로 지목받았던 한식세계화사업이 의도와 무관하게 실제로 한식, 한국의 요리 발전에 기여해 버렸다고 생각한다. 돈을 주고 미쉐린을 사오는 것은 아시아 관광청의 유행이 되어 누구도 문제 삼지 않게 되었고, 청와대 만찬에서 트러플을 사용한 것은 본인의 입맛 때문이었겠지만 어쨌거나 시퍼런 한반도색 초콜릿 따위를 상징적이랍시고 내는 것에 비하면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역시 본인 좋아서 한 일인지는 몰라도 피에르 가니에르, 르네 레드제피, 호안 로카라는 서로 다른 요리를 상징하는 인물이 한데 모여 한식에 대한 조언을 남긴 것은 놀라운 장면이었고, 이러한 정권의 호시절에 힘입어 같은 해에는 '모던 한식의 끝판왕'같은 수식어를 가진 레스토랑이 서울에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의 모던 한식(지금은 이런 표현 자체가 쓰이지 않는다)이라 하면 푸아그라 토숑에 된장 소스, 쇠고기에 트러플 된장 소스, 된장을 바른 양갈비, 크림 브륄레에 된장 등 서양의 조리법에 한식 재료를 살짝 곁들이는 것이 당시의 최첨단이었는데, 현대 한식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은 고조리서의 복각 유행을 지나 드디어 순대나 꼬치구이 등 존재하는 현대 음식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요새 이 주방들이 그때 그 주방이 맞는지 생각하면 경천동지할 노릇이다. 최고인데 전보다 더 발전했다? 그럼 전에도 최고였던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레스토랑이 생기고, 팔리고, 요리사가 미국으로 가는 데에는 이런 부류의 사업들이 배경이 되어주었다. 막상 한식세계화라는 표어를 들고 나왔던 광주요와 가온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육수 키트 등을 판매하다가 아라리 같은 곳에서나 만나볼 수 있게 된 슬픈 결말을 맞았다. 갈고닦은 최고급 요리에서 시작해 톱다운 방식으로 한식을 퍼뜨려야 한다는 그의 시각에는 일견 탁월함이 있었으나 정작 그의 발언이 실제가 되고 있는 지금 광주요그룹은 그 잔치에서 보이지 않고 있으니 통석의 염을 금할 길이 없다.

하여간 이런 흐름 속에서 서구인들, 1세계 미디어에게 한식은 페루 요리, 정체를 알 수 없는 크리에이티브 그럴싸함 요리 등과 함께 새로운 미식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요리 외적으로도 대성공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미디어의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하는 F&B 미디어 산업은 양적 확장에는 기여할지 몰라도 질적으로 좋은 식사, 좋은 경험을 확장하는 데에는 비효율을 넘어 종종 부작용까지 보이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부산처럼 가이드를 기껏 출판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오늘날이다. 이런 대형 미디어부터 무수히 많은 무슨 슐랭 무슨 슐랭 뭔슐랭 등 개인 인플루언서들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곳을 찾아 목이 마를 것이다. 그래야 조회수가 찍히고, 장사가 되고, 홍보 의뢰를 받고,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진정으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새로운 곳 따위면 곤란하다. 이런 부류의 담론에 관심이 없는 사람 기준으로 새로운 것이면 족하지, 막상 서로 다른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레스토랑은 비슷한 곳이 많다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말을 왜 늘어놓았는가? 본지는 이런 F&B 미디어가 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분과 쓰는 이의 흥미를 위해 이런 매체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본지의 게시글은 비평이고 미디어는 부차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어떤 요리나 주방을 주제로 하는 글이더라도 여러분은 그 속에서 다른 것을 건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제의 꼬모네 글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꼬모네라는 식당과 요리에 대해서만 따지고 드는 것은 목적이 아니고, 이를 통해 지금 돈가스를 튀기는 주방과 먹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논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본지는 이런 방식을 유지할 것이다. 어떤 글은 요리에 더 주목하고, 어떤 글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이러한 F&B 분야 내 시대의 흐름을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독자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물론 그럴 것이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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