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토 돌체 - 영리한 프로

푼토 돌체 - 영리한 프로

성수동의 푼토 돌체에 대한 글을 언젠가 쓰고 말리라 마음을 먹은지 지나치게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푼토 돌체는 여러모로 변화를 거듭했는데, 이제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만 할성 싶다.

푼토 돌체는 '이탈리아'를 표방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이런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일단 이 정체성을 대변할 구성이 충분치 않다. 작은 케이크는 오늘(2022/04/29) 기준으로 고작 3종류에 불과하며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한 두가지가 더해지거나 바뀌거나 할 뿐이다. 끼니가 되는 식사를 제공하는 곳에서는 작은 가게를 중심으로 한 가지 요리만을 내세워도 정체성이라는 것을 확보할 수 있지만, 제과나 빵은 아직 그런 형태와 친하지 않다. 식빵 정도가 그런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그나마도 일본이 모델이다). 많은 협업, 백화점 진출 등 흥행과 더불어 푼토 돌체의 생산량은 초기에 비해 썩 늘었으나 자신만의 제과 세계를 넓히거나, 혹은 질적인 발전을 노리기보다는 오히려 그간 영업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종류를 추리고 줄인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제는 세트로 판매되는 세 가지만이 쇼케이스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기이다. 냉장고 없이 보관할 수 있는, 택배 발송 전문점으로 변모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더 이상 줄어들 곳도 없다. 거의 가게를 대표하는 메뉴들만이 남았다. 그 중 '신기함'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칸놀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2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다.

Maritozzo Bronte

푼토 돌체를 여기까지 이끈 공신은 다름아닌 마리토쪼인데, 이 날 먹고 나서도 역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 마리토쪼라는 양식 자체의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브리오슈에 휘핑 크림을 끼우는 음식인데, 브리오슈 사이에 패티와 치즈를 끼우면 햄버거가 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간식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브리오슈는 이미 버터의 처방이 강하게 들어있는데 여기에 다시 크림을 쌓고 폭발하는 유지방을 온전히 크림과 단맛이 받아내야 성공한다. 현실적으로는, 특히 생크림의 품질은 커녕 수급을 걱정할 때도 있는 한국에서는 공상에 가까운 도전이다.

그렇다면 마리토쪼의 인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인스타그램이 원인이라고 본다. 배경을 설명하자면, 애초에 이 빵은 로마~라치오 근교에서나 종종 발견할 수 있을 뿐 정교하게 만들어진 역사가 극히 짧다. 몇 년 전까지도 그랬고, 보통 이것만 파는 가게에서 1~2유로 정도 받고 파는 간식이었다. "황금 마리토쪼"라고 해서 치즈나 야채, 토마토 등을 사이에 끼워 파는 셰프도 있었는데.. 브리오슈 사이에 치즈와 야채, 토마토를 끼운 것을 우리는 "햄버거"라고 부르곤 한다.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여전히 마리토쪼는 로마에서나, 관광객은 거의 찾지 않는 오래된 빵가게들에서 저렴하게 잔뜩 만들어둔 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리라 짐작한다. 마리토쪼의 팔자가 급변한 곳은 일본인데, 구체적으로 유행의 진원지가 된 곳은 후쿠오카의 아만 다코탄(アマムダコタン)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베이컨부터 소시지 등을 채워 만든 샌드위치를 파는 곳인데, COVID-19의 유행으로 인해 빵이 남아돌게 되자 간식용으로 채택한 아이디어가 소셜 미디어상에서 큰 화제가 되며 원래의 메뉴를 밀어낼 정도의 인기품이 되어버린 경우이다. 기존의 제품과 마리토쪼의 차이는 용도(식사와 간식)도 있겠지만

보다시피 압도적인 시각효과가 유행의 직접적 계기이다. 사이에 끼운다는 개념을 아득히 넘어서 가득 벌린 입이 주는 과잉에 대한 갈망과 유혹, 그와 대비되게 스패츨러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선이 주는 깔끔한 인상. 전자는 동물적인 식탐을 자극한다면 후자는 시각적인 관능욕을 자극한다. 아만 다코탄의 마리토쪼는 조금 거칠게 다듬은 감이 있지만 하여간 감염병의 시대에 실내에 갇혀 이상적인 간식에 대해 떠올려 본다면 마치 그 상상 속에 자리할 듯한, 욕구의 화신같은 모습의 음식이다.

푼토 돌체의 마리토쪼는 이로부터 벗어나 합리적인 맛을 추구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역부족이다. 없는 맛을 만들 수는 없는 처지이므로 크레마의 맛을 적극적으로 변형, 피스타치오를 넣고 "브론테"라는 이름을 붙였다. 피스타치오의 볶는 정도는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배운 습관이 베었는지 다른 견과와 구분되는 피스타치오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를 더해서 압도하는 지방의 파도를 막겠다는 구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피스타치오의 향은 역부족이었고, 팔레트의 끝까지 이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밀려드는 유지방의 해일에 숨겨둔 신맛이 마지막 방파제 역할을 하지만 이 순간 마리토쪼라는 이율배반적인 구성은 무너진다. 크림과 브리오슈를 먹기 위해 로마식 마리토쪼라는 형식일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빵 반죽의 비중이 훨씬 큰 진짜 시칠리아식이 차라리 낫고, 그 위에는 나폴리식 바바가 군림하고 있다. 푼토 돌체의 마리토쪼는 고민의 기색이 역력하며 일견 그럴싸하기까지 하지만, 형식이 지닌 모순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Diplomatica

기에 비해 디플로마티카는 푼토 돌체를 다시 찾을 가치가 있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었다. 기본적인 토르타 디플로마티카Torta diplomatica와 달리 스펀지 층이 없어 외형상으로는 거의 프랑스 밀푀유와 같은 구성인데, 상단의 크림의 꽃향기가 하단 크림의 타히티 바닐라가 가진 플로럴 노트와 이어지면서 거대한 충격을 선사한다. 서울의 뭇 가짜 피에르들이 만드는 타르트들과는 다른 복잡한 향이 피어오르며 입안은 꽃으로 가득찬다. 몸까지도 무겁게 만드는 유지방이 그 순간만큼은 봄내음처럼 가볍게만 느껴진다. 이와 달리 퍼프 패스트리는 가능한 마지막까지 바싹 구워 제 역할을 온전히 해낸다. 라 바즈에서 맛보았던 밀푀유 정도가 서울에서는 이에 근접하게 제대로 구운 맛을 내는데, 서울에서 이런 종류를 먹고 싶다면 선택지가 두 종류나 있는 셈이다. 하여간 푼토 돌체의 디플로마티카는 그야말로 흠 잡을 데 없는 완성품이다. 크렘 디플로마, 파트 푀유떼 각각이 흠 없이 완성되어있고 둘을 단순히 쌓지 않고 꽃을 넣고 끓인 크림으로 마무리해 밀레폴리에가 아닌 디플로마티카의 인상을 완성한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매장에서 제공하는 빅토리녹스 칼은 이걸 잘 자르기에는 턱없는 물건이라는 점. 포장을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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