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변최고돼지국밥 - 젠트리피케이션

수변최고돼지국밥 - 젠트리피케이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잊었지만, 2000년대 한국의 도심 개발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를 꼽으라면 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었다. 2024년 4월 오늘날 아귀다툼이 된 도시개발사업에 정의를 찾는 사람은 찾기 어려워졌지만 그 어마어마했던 바람만큼은 흔적처럼 남아 20세기 말 로데오 거리의 유행을 비웃듯 전국을 O리단길로 수놓았다. 그 이름마저 군의 조직에서 따온 것이며, 해방의 이름을 내걸었던 곳의 아름다움은 해방과는 거리가 먼 미군들의 씀씀이에서 나왔다는-물론 세계관에 따라 해방의 의미는 상당히 달라진다, 본지에서는 이로 다투지 말자- 우스운 세상 속에서 전국의 관광지는 경리단길풍, 송리단길풍으로 정비하여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면은 달라지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 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있었던 일로 놀라워할 일이 없다. 어딜 가나 비슷한 호객꾼과 더덕과 산채비빔밥, 죽어가는 나물로 무장한 산어귀는 어땠는가? 물론 인근 도시 내지 서울 사람들의 관광지 노릇이나 하게 된 지역도 나름의 사정도 있고 변명도 있고 억울한 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서로 루즈-루즈라는 생각 뿐이다.

K팝 아이돌을 필두로 문화와 관광산업 육성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고 있는 요즘 이처럼 관성적으로 흐르던 한국 식문화에도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우리의 자의와는 무관하게 쏟아지고 있다. 지금은 사어(死語)가 되어버렸으나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치 시대정신Zeitgeist처럼 받들었던 모던 한식의 흐름은 정식당을 필두로 한 유학파들이 이끌었고, 이제는 뉴욕에서 승전보를 타전한 옥동식은 돼지국밥(돼지곰탕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그런 음식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의 새로운 벤치마크가 될 것이다. 다분히 정책적 함의가 느껴지는 미쉐린 가이드 부산의 출간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이 될 것이다. 이제 부산 음식은 부산 사람이 정의하는 것이 아닌, 어쩌면 세계인이 바라보는 대로 정해지는 운명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부산 요리의 일부는 그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 그것이 단순히 외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만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는 자연발생적인 요리의 단계를 지나 다분히 "무엇이 부산 음식인가" 하는 인식을 의식한 요리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예시가 이 수변최고돼지국밥이다.

설렁탕이나 하동관식 곰탕, 평양냉면 등 쇠고기 육수가 크게 발달한 서울과 달리 부산의 돼지국밥과 밀면 등의 국물 요리는 돼지를 바탕으로 서민적인 빛을 내는데, 고형분 넉넉하게 잡아 혼탁하되 지방 특유의 끈적임은 과도하지 않은 국물,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무르기 전에 삶은 항정은 과조리를 피하기 위해 따로 빼는 옵션을 추천하고 있는데, 내장부터 머리까지 잡다하게 넣고 끓이던 돼지국밥의 파격적인 현대화가 놀라우면서도 두렵다. 물론 돼지의 현대화를 이끄는 방향은 분명 옥동식의 그것과는 달리 어쩌면 부산적이다. 쌀밥이 향긋하거나, siwonhan 맛이 나거나, 버크셔K같은 브랜드육의 특징이 느껴지지는 않고, 반대로 돼지 특유의 맛(flavor)이 남은 채로 뼈와 야채 스프가 뒤섞인 감칠맛은 단순하고 강력한 만족감을 밀어넣는다. 하지만 어쩌면 타지인들의 꿈, 뭇 부산 사람의 일상이 쌓여 만들어낸 느낌은 아니다. 부산은 썩 광활한 도시이므로 돼지국밥의 벤치마크를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는 있겠지만, 어느 것을 기준으로 잡더라도 수변최고돼지국밥이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감히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변최고돼지국밥의 가치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부산 사람이라면 감히 갈 이유가 없는 위치를 제외하면(해운대 사람도 부산 사람이지만 분명 그들은 소수이다), 가변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도 하는 웨이팅을 제외하면, 만 원을 넘어버린 한 그릇의 가격을 제외하면 분명 특출난 점도 있는 일상의 음식이다.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경계 위에서 부산 사람에게도 특별한 돼지국밥이라는 단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관문이 되어주며, 외지인에게는 쾌적하게 부산에 왔다는 나름의 만족을 얻고 가기에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돼지국밥의 다음 세대를 정리해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 전문가들은 부산 사람보다도 외지인이 바라는 부산의 모습을 너무나 잘 꿰뚫고 있지는 않은가. 모르긴 몰라도 솜씨 좋은 사업가라는 확신은 들었다. 우연으로는 탄생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결국 "힙"이냐 "젠트리피케이션"이냐 하는 줄타기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