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호텔 스톡홀름 - 스뫼르고스보르드

그랜드 호텔 스톡홀름 - 스뫼르고스보르드

뷔페 스타일의 서비스가 상류층의 문화로 자리잡게 된 것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9~20세기를 거치며 세계에 퍼졌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실행이 있다면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의 스웨덴 파빌리온에서 선보인 스뫼르고스보르드(Smörgåsbord)가 그것이다. 간단한 오픈 샌드위치인 스뫼르고스(Smörgås)를 서빙하는 테이블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뫼르고스보르드는 알라카르트가 제공되는 정찬의 사이드 테이블, 또는 그 자체로 제공되는 뷔페 식사로 스웨덴 특유의 식문화를 선보여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으며, 이는 곧 스웨덴식 환대의 상징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의 메뉴.

오늘날 스웨덴에서도 이러한 방식은 아주 일반적이지는 않다. 애초에 상류층이 주로 즐기던 문화인 데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상류층이 격동하게 되면서 과거와 같은 오트 퀴진의 서비스가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스뫼르고스보르드도 그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었으나, 여전히 중요한 행사나 장소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이 주제에 관심이 가는 점은 무엇보다도 뷔페 서비스라는 점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발간 이전까지 한국에서 고급 서비스를 상징하는 식사는 그 어느것보다도 호텔 뷔페였다. 이외에도 한정식이나 가든식당 등 정형화된 서비스는 몇 종류 있지만, 환대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호텔의 얼굴은 여느 레스토랑도 아닌 뷔페였다. 지금도 공공연히 N대 뷔페 따위의 말이 나돌아다니고 있으며, 미식가라는 작자들도 뷔페를 비교하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도 밝혔듯이 기본적으로 호텔 뷔페는 좋고 나쁨의 평가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굳이 평가를 해야만 하는 경우라면 그 가격과 기대하는 서비스를 생각할 때 주로 나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스웨덴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당신은 외국에 나갔으니 그렇게 질책하던 호텔 뷔페마저 아름답다고 할 작정이오?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스뫼르고스보르드는 왜 그 명성과 역사를 지켜오고 있는가? 바로 그 점에서 일반적인 호텔 뷔페와 스뫼르고스보르드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먼저, 이해를 위해 스뫼르고스보르드 서비스의 일반적인 순서를 따라서 내용을 진행해보자. 스뫼르고스보르드는 주로 6~7단계의 코스로 진행된다. 접시에 담은 사진이 있지만 심미적으로 좋지 않고 이해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이 글을 쓰기 위해 정말 예외적으로, 각 섹션의 사진을 촬영해 남겨두었다.

버터(Smör)와 거위(gås)로 이루어진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스뫼르고스보르드의 영혼은 청어에 있다. 가장 먼저 원하는 종류의 청어를 맛본다. 초절임한 청어(Inlagd sill)는 스웨덴 여느 호텔의 조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 세계는 생각보다 넓다. 전통적인 초절임 외에도 초절임한 청어를 크림에 재우는 방식도 즐겨 사용되는데, 차이브나 겨자와 같이 강한 향신의 역할을 하는 재료가 청어의 경험에 레이어를 더한다.

이런 형태의 감자와 곁들이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청어 취식 방법이며, 여기에 약간의 빵이나 치즈를 곁들여도 좋다.

청어를 먹은 뒤에는 차가운 애피타이저를 향하게 된다. 오르되브르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새우와 달걀, 패류 등이 이어지며 샴페인이나 화이트 와인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도맡는다. 청어의 강한 신맛에 다소 지친 혀를 달래주는 여유가 되기도 하며, 스웨덴이 가진 천혜의 자연의 다양성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내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라브락스로 대표되는 연어 역시 빠질 수 없는데, 역시 청어와 유사하게 빵이나 감자를 곁들여도 좋지만 살짝의 레몬과 딜, 머스타드로 방점을 찍어주면 완성된다. 수입 해산물중에는 가장 보편적인 것이 연어라고는 하지만 좋은 연어는 분명 보편적인 경험과는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이렇게 해산물으로 향연을 충분히 펼치고 난 다음에는 치즈나 콜드 컷을 곁들이는 순서로 이어진다. 찬 온도에서 상온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면서 본격적으로 짠맛이 두터워지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식사 내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단맛이 치즈의 컨디먼트를 통해 처음으로 존재감을 알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기서 스웨덴을 대표하는 컨디먼트인 링곤베리를 잊지 말도록 하자. 청어와 연어를 지나고 나면 식사 내내 함께해야 할 동반자이다.

그리고 충분한 대화와 여유를 지니고 본격적으로 배를 채울 때가 되었다면 뜨거운 요리로 식사의 절정에 오를 때가 된다. 스웨덴을 상징하는 고기 요리인 미트볼 외에도 계절에 따라 여러 동물이 식탁에 오른다. 물론 알라카르트가 자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앞서 너무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 그리고 남은 술을 다시 치즈나 콜드 컷과 적당히 처리한 뒤,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피날레는 디저트인데, 이 부분에서만큼은 간단히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당시 북유럽의 여름 딸기가 제대로 제철을 맞은 참이었다. 한국과 달리 유럽에는 여름에 제철을 맞는 딸기가 많은데, 강한 햇빛을 받아 신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점이 차이이다. 국내에서는 실패종으로 분류될 종자들이 유럽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과일이 단맛을 도맡지 않고 설탕과 역할을 나누는 대신, 그 향만큼은 어디에 밀리지 않는다. 링곤베리나 망고, 코코넛과 같은 열대과일은 물론 캐러멜과 부딪혀도 딸기의 향은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그랜드 피날레는 남아있었으니...

옛스런 스타일로 만든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바로 그것이다. 상온에 둔 상태로 살짝 녹았지만 여전히 scoopable-gooey한 마다가스카르 바닐라가 선사하는 탐닉. 그 촘촘한 밀도와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고 만다. 파인트를 붙잡으면 놓을 수 없는 현대인에게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유혹이 아닌가. 여기에 커피나 푼시 한 잔을 곁들인다면 그날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이렇게 간단히 스뫼르고스보르드의 구성을 둘러봤는데, 여러분은 무언가를 느끼셨는가? 고급 뷔페 서비스의 모범이 된다는 방식임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뷔페와는 무언가 다르거나 모자라다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제대로 이해하신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격 서비스에서는 셀프 서빙 방식을 채택한다고 해도 단순한 나열에 그치지 않으며, 오히려 요즈음의 정찬보다 더욱 오래된 기준을 따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국 호텔의 뷔페들이 중화 요리부터 갑각류의 찜이나 구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메인 요리에 강력하게 힘을 주는 반면, 스뫼르고스보르드에서 다양한 종류를 맛보는 재미는 아뮤즈부쉬와 오르되브르에 집중된다. 아주 정교하지는 않지만 개별적인 특징이 강하기에 종다양성의 의미가 있으며, 영역으로 나뉘어 시계열 위에 배치되기에 흐름이 명쾌하다. 강렬하기 그지없는 청어를 가장 먼저 힘껏 먹는다는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합리성에 앞서는 정서적 이유가 이를 정당화한다. 또한 이러한 작은 요리들은 많이 먹기에는 강한 맛을 가지고 있어 술에 곁들이는 음식에 가깝게 느껴지는데, 이 또한 주류 주문이 거의 없는 국내 호텔 뷔페와 차이점이다. 물론 호텔 뷔페의 이용객이 주류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문화의 차이도 있지만, 애초에 그렇게 물로 버틸 수 있는 음식을 내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차이는 발생하는가? 셀프 서비스, 무한정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식사라는 점을 공통으로 갖는 두 문화가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뫼르고스보르드는 주류를 곁들이는 사회적 만남을 바탕으로 발달한 문화로, 음식은 탐욕할 만한 것보다는 익숙함과 정겨움을 주로 향한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 주로 호텔 뷔페가 받는 인식이란 평소에 먹을 수 없는 값비싼 식재료의 다식(多食) 또는 폭식이다. 랍스터와 게, 또는 소고기 구이가 중심이 되는 이유가 그곳에 있다. 그 와중에 곳곳에 배치되는 탄수화물을 두고 고객들은 호텔과 신경전을 벌인다. 환대가 아니라 다툼을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란 말인가.

가격이 조금만 내려와도 우리는 더 이상 뷔페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무한리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게 우리의 인식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서비스는 분명이 리필 가능하며 무한한 양을 표방하고 있다. 분명 원하는 것을 담는 경험은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식사에는 항상 다양한 역할이 있으며, 그중에서 배터지게 먹는 것은 가장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스뫼르고스보르드는 Gourmand의 영역에 빠져든 뷔페 서비스의 세계에서 Gastronomie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서비스이며, 스웨덴의 빛나는 전통이다.

  • 물론 이 날 청어를 충분히 먹은 뒤로는 점심이나 저녁 때 청어를 찾지 않았다. 애당초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그래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가장 첫 접시의 전형적인 구성. 여러 종류의 청어, 감자, 양파와 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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