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 - 우래옥의 꿈


나는 날이 추워지면 우래옥을 찾는다. 냉면은 본래 겨울 음식이라는 이북 사람들의 전언 때문도, 여름에만 뜨거워지는 냉면의 열기를 피하고 싶은 청개구리같은 심보도 아니다. 겨울철에 가면 그나마 덜 기다리니까. "30분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의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이 냉면과 공존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냉면을 저녁에 먹는 사람, 냉면을 겨울에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십수년전만 하더라도 우래옥의 위상은 해방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장고한 역사와 오랜 단골들이 하나같이 입모아 말하던 순면이니 옛날 육수니 하는 아름다움을 고루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오죽하면 나마저도 우래옥을 그렇게 자주 찾는 사람은 아니었으니(지금도 긴 줄 덕분에 아니다) 이번 겨울 받아든 우래옥의 냉면에는 새삼스러운 고마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호사가들이 다투는 '평양냉면의 슴슴한 매력'따위의 발상을 거부하는 진한 고기 내음, 그것을 약간 머금은 배가 머금은 매력은 갈색빛으로 삶은 고기와 동시에 약간의 경쾌함을 겸비한 육수는 고기를 마시는 듯한 쾌락을 선사한다. 가끔 느껴지는 편차보다는 자주 느끼는 일관성이 우래옥의 물냉면을 찾게 만든다. 한 그릇 전부보다는 약간을 남기면 다음을 기약할 정도의 인상만을 가지고 자리를 떠날 수 있다.
대북 해빙 무드와 함께 밀어닥쳤던 냉면의 신바람도 잦아들었지만, 호시절 덕에 선택지는 늘었음에도 우래옥에 늘어서는 행렬 속에 섞여든 외국인들을 보면 우래옥의 꿈이 떠오른다. 오히려 그 가세가 가장 내려와 본점 하나만이 남은 지금, 음식으로서 우래옥의 위상은 가장 높은 것 같지만, 세계가 우래옥을 알아주지 않을 때에 오히려 우래옥은 세계의 꿈을 꾸었다. 70년대 신문에 난 우래옥 직원의 자카르타 파견기부터 시작해 미국 각지 한인들의 적적함을 달래주었던 우래옥의 신화는 강남 분점까지 사라짐으로서 끝을 맺었지만, 결국 K-POP으로 맺어진 한국 문화의 훈풍에 우래옥의 평가도 날개를 단 듯 하다.
과연 우래옥의 맛이 세계인들의 맛으로 변한 것일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던 상투적인 표현이 정말로 이루어진 것일까? 어느 쪽일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나보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 한해) 그들이 참으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