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제로 - 피스타치오

젠제로 - 피스타치오

누군가의 제안 덕분에 젠제로의 젤라또를 먹게 되었는데, 꽤 바뀐 인상에 자못 놀랐다. 해외가 대비 덤탱이를 맞는 사정이 유제품에 있어서도 주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가격은 수용할 수 있지만, 가격에 맞는 가치를 보여준 적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전보다 여러모로 나아져 있었다. 특히 말차보다는 피스타치오가 그랬다. 말차는 색은 진하되 특유의 감칠맛을 우려내지 못해서 일본의 나나야를 카피했다 사라진 녹턴 넘버 5를 떠올리게 했지만, 피스타치오는 밝은 색과 더불어 미약하나마 피스타치오의 화사한 고소함을 간직하고 있는 젠제로의 새 피스타치오는 그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침 비슷한 셀링 포인트를 내세웠던 후발 주자인 피에트라를 다룰 때에도 이야기했지만, 젠제로를 다룬다는 것은 내게는 매우 피로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제로에 대한 시각을 조금은 바꿀 수 있다고 굳이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이뤄낸 진보가 가치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피스타치오의 꿈에 다다른 느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형분과 지방 그리고 맛 덩어리인 피스타치오를 쓴다면 점도와 맛, 지방의 느낌이 모두 한층 더 높아야 한다. 아이스크림의 영역에 있어서 피스타치오는 와인으로 치면 구조감이 크고 뚱뚱한 레드와인 정도의 체급을 지닌 재료라고 생각한다. 유럽경제구역 내에서는 Caput Mundi같이 재료의 함량을 한껏 끌어올린 경우를 종종 마주할 수 있는데, 피스타치오의 매력을 표현하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다.

그럼에도 젠제로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피스타치오 자체를 바꾸거나 하기도 했곘지만, 무엇보다 굽는 정도가 달라졌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녹색 황금이라는 찬사를 받는 지중해 문화권의 보물인 피스타치오인 만큼, 살짝이라도 녹색빛이 도는 상태가 이상적이다. 견과의 맛을 충분히 끌어올리되, 과하게 구워 평범한 견과류로 전락하지 않는 지점에서만 피스타치오는 온전히 빛을 발할 수 있다. 집중도가 아쉽기는 하지만, 애초에 피스타치오란 이랬어야 했다.

2020년경 젠제로의 피스타치오(우).

이 시절에 나는 피스타치오는 이러지 않았어야 한다고 말했고, 무수한 원성을 샀다. 5년이 지난 지금, 젠제로는 그때와 같은 요리를 하지 않으니, 평가도 그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전혀 다른 듯한 두 요리에 같은 평가를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물을 뿐이다.
무엇을 평가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