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 코리아콜라다

찰스 H. - 코리아콜라다

무언가를 정교하게 만든다elaborar, elaborate는 데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건대 세 가지는 있어야 한다. 평면에 일 차원의 점과 이 차원의 선은 표현이 가능하지만, 삼차원부터는 2차원에 인간의 두뇌를 더해서 만들어지듯이. 한자 문화권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삼간(三間)-인간, 공간, 시간의 축이 존재한다. 바의 주방에서도 오롯이 요리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주, 당, 산이다. 혹자는 기주, 얼음, 리큐르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오늘날 리큐르의 영역에 얼음과 증류주가 아닌 거의 모든 재료를 포함하게 된 이상 이러한 기준은 힘을 많이 잃은 것으로 평가한다.

만드는 영역에서 세 성분의 조화를 추구한다면 평가의 영역에서는 다시 칵테일을 위한 삼차원의 기준이 등장한다. 코어, 균형, 그리고 조미다. 독자적인 견해는 아니고, 본지의 스승이 되주고 있는 데스 & 컴퍼니의 세 바텐더가 제시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결국 칵테일은 무언가를 다르게 먹는 방법이므로,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설정하고(코어), 그것이 다른 것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하며(균형), 마지막으로는 그렇게 하여 어떤 맛을 더할 것인지에 있다(조미). 이를테면 올드-패션드라고 하면 아메리칸 위스키(코어), 설탕/당분(균형), 비터스(조미). 이 기본 틀을 통해서 무수히 많은 점들을 삼차원의 좌표 안에 배치하고 평가할 수 있다. 다이키리? 럼(코어), 산(균형), 귤속의 과일(조미).

피냐 콜라다는 어떤 음료인가? 기주(코어), 지방(균형), 코코넛(조미)다. 럼과 코코넛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말리부같은걸 쓰는 피냐 콜라다를 사랑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기둥 중 두 가지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설정하게 된다면 재미가 있을 공간이 어디있겠는가.

앞서 더 서프 클럽은 역사적 해석에 입각해서 재미를 봤다면, 코리아콜라다는 이곳의 O.G 메뉴로 소개된 만큼 문언적, 혹은 논리적 해석의 눈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세 기둥의 위에 어떤 지붕을 올렸는가?

칵테일 코덱스」에서는 피냐 콜라다를 럼에 묶어두지 않고, 플립의 연장선으로 바라본 바 있다. 본 바의 코리아 콜라다도 그러한 시각의 동일선상에 있는데, 기주를 럼이 아닌 막걸리와 쥬네버를 쓰는데 있다. 플립의 기주는 주정강화와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정강화보다 날것에 가까운 막걸리와 증류를 거치는 쥬네버의 궁합은 썩 일리가 있다.

코어라고 하면 단지 그것이 맛을 의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음료를 만드는 이유또한 그곳에 있어야 한다. 피냐 콜라다의 코어는 그런 의미에서 때로는 럼이 아니라 코코넛 밀크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곳에서는 그 아이디어를 한국의 술을 이용하는 것으로 완성했다. 또 니가 한국이라고 하면 맛없다고 하겠지. 솔직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루 생 막걸리와 정원 진, 둘다 많이 들어는 봤지만 셀러에는 들일 생각이 없는 것들이므로 개별 제품들의 풍미에 대해 논할 이유도 없다. 어쨌거나 그것들이 중심을 잡으니 비로소 그림이 보인다. 피냐 콜라다는 캔버스의 역할을, 실제 그림은 한국의 맛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자리한다.

정원 진부터 막걸리부터 들기름까지. 세계를 누비던 바텐더들을 한국에 모셨으니 그들의 손에 한국 여기저기에 흐뜨러져 있는 풍미들을 모아주었다. 그나마도 나루 막걸리와 정원 진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이어서 한국인도 잘 모를 맛이다. 각각 2019년, 2020년 첫 출시한 제품. 이런 경우에는 그것 자체가 주제가 되고 만다. 단순히 한국에 있는 것들이니 쓰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들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했을까?

막걸리를 썼고, 막걸리 사발에 담아내지만 저가 막걸리의 불쾌한 단맛(아스파탐)은 물론 통상 막걸리가 갖는 발효의 다듬어지지 않은 신맛마저 굉장히 깎아낸 인상인데, 전체적인 풍미를 지배하는건 콩의 고소한 단맛이다. 스포일러로 띄운 세 종류의 기름도 기본적으로 고소함을(지방이니까) 품고 있어, 단맛의 전달 효과는 극대화된다. 물론, 정말 좋은 콩물은 그 자체로 기가막힌 단맛을 보여주지만 그런 단맛은 아니고, 정교하게 짜여진 가당의 단맛이었다. 상기 시각으로 보자면, 코어에는 정원 진이 있고, 막걸리나 콩물의 단맛이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한국적인 풍미들이 각각 조미의 역할이다-세 가지 기름에 더해 토핑으로 오른 과자까지. 코코넛의 자리에 한국적인 고소한 맛들이 자리하면서, 자연스럽게 한식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설득하는 듯 하다. 그들은 서로 섞이지 않기에 더욱 또렷하게 표현된다. 가운데의 얼음이 사발을 들고 들이킬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꺾게 되고, 세 종류 오일을 나누어 맛보며 한국적인 풍미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음료 위에서는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곱씹어볼 여유가 나온다.

그러나 이 칵테일을 주문하고 마음이 편안해진 것은 그것이 고향의 맛이 나서가 아니었다. 반대로 내가 몸을 누인 곳은 탑 노트(오일)-미들 노트(콩, 막걸리)가 아닌 베이스 노트, 코코넛이었다. 풍성한 마우스필을 지닌 음료이기에 함부로 삼키는 대신 입안에서 머금는 시간이 썩 생기는데, 그때서야 코코넛이 입 안의 감각기관을 타고 발향한다. 시각부터 미각에 이르기까지 잊고 있었던 이름, "콜라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래, 너도 피냐 콜라다구나. 과연 한국적인 맛들이 바에 이런 방향으로 서는게 좋은 방향일까? 이것은 100% 자의에 의한 창작일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다가도 마지막의 코코넛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질감은 판이하지만 명절날 유과를 떠올리게 하는 토핑은 아직 이러한 방향을 긍정하게 나를 내버려 두도록 만든다. 그래, 좋은게 좋은 것 아닌가. 한국 문화권 내에 있기에 이러한 방식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미 기억을 타고 흐르는 기호가 있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이 한 잔 안에서는 좋은게 좋다. 어쨌거나 한 잔을 비우고 나면 두 가지 한국의 크래프트 주류에 더해 한식의 짠맛의 세계(savory world)까지 넘나들고 온 셈이다. 험준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온전히 남는건 피냐 콜라다를 마셨다는 기억 뿐이다. 아마도 막걸리가 신맛이 더욱 좋았다면 무언가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었겠지만, 소매가로 500ml 세 병에 삼만 원을 넘는 가격을 보고 나면 부질없는 고민이므로 접어둔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맛에게 "반드시"라는 기억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아쉽게도 실패로 기운다. 특히나 두 한국술은 내게 그들의 가격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대형 마트에서 디플로마티코 레제르바 익스클루시바가 9만원인 세상이라지만 아닌건 아닌거다. 나는 애초에 이것이 여기에 쓰인 맛들이 반드시 필요해서 만들어진 조합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느정도의 낙관주의, 혹은 주어진 과제는 아니었을까? 마치 기념일을 위한 요리처럼, 일단 정원 진이라는 재료를 무조건 써야하고, 그 다음에 무언가 만들기로 한 그런 메뉴. 한식 세계화(?)에 대한 열망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 피에르 가니에르의 파전이나 계란찜같은. 물론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 요리를 정치적으로 주목하는 사람들은 아주 없어져버렸지만, 썩 오래동안 한국에서는 그런 창작에 대한 압력이 있어왔다. 불고기 버거, 불고기 피자, 불고기 베이크... 그리고 김치.....떡볶이.. 한국에서 어떤 역할을 자처해주어야 한다는 바람, 혹은 압력. 그렇다면 반대로 이 맛들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목표였다면 성공이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맛이 아닌 효능을 앞세워 식탁에 끼어드는 판국에서 그 맛의 위치에 대한 의견은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의 선택지라도 늘어난다면 환영할 일이지. 세계 최고를 두고 다투는 바에서 쓸 수 있는 화이트 럼이 단 두 종류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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