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반 - '하동관'식 곰탕

곰탕반 - '하동관'식 곰탕

수십년 전 신문 기사에서 "한국에는 라 투르 다르장같은 역사 깊은 식당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읽었다. 당시 라 투르 다르장의 40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가 「뉴스위크」지(지금은 위상이 참 많이 내려왔다)에 보도된 것이 계기였을 테다. 문인과 예술가, 명사들의 사랑을 받았기로는 명동의 은성이나 사직동 명뤙옥(대머리집)이 으뜸이었겠지만 이런 대포집들은 터만 남기고 사라졌다. 오히려 서울에 한 필 남긴 것은 일제시대부터 떠오른 서울식 국물 요리였다. 용금옥을 필두로 하는 추탕(추어탕), 하동관을 필두로 하는 곰탕이 그들이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부터 유사한 요리의 양식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한다. 음식의 역사가 긴 것이 그 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며 길어봤자 '반만년'에 비할쏘냐? 이제 반올림으로 만 년을 부를 수 있다는 겨레의 역사에서 국물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그중에서도 제대로 도약한 것은 곰탕이다. 농경 문화의 쇠퇴와 함께 먹거리로서의 쇠락한 미꾸라지와 달리 메여있던 밭에서 축사로 옮겨온 소는 현대 서울 사람들이 가장 자주 찾는 먹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설렁탕이 일제시대를 주름잡았다면 현대를 주름잡은 쪽은 하동관식 곰탕이 아닌가 한다. 미디어에서 얻은 인기에 더해 특유의 시스템도 팬몰이를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옥동식과 같은 경우를 보면 이제는 하동관식 곰탕은 하나의 레퍼런스로 남았다고 할 정도라고 본다.

이제는 '스무공'이 더 이상 럭셔리로 취급되지 않는 오늘날 곰탕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추운 날씨에 따스한 국물이라는 이유, 소고기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다는 이유만으로는 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운 시기에 이르렀다.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본질적인 밋밋함이다. 마구리를 섞을 수 있는 갈비탕과 달리 마땅이 지방을 끌어올 요소가 더 이상 없고, 그렇다고 살코기나 내장을 턱없이 끓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수 없는 경우는 모양에 집착한 나머지 거적떼기같은 내장을 씹어 삼켜야 할 때도 있다.

국물이나 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중복이 많으므로 오늘은 나머지에 시선을 돌려보자. 곰탕을 둘러싼 주변환경은 크게 파와 후추로 대표되는 향신, 바디가 되는 밥, 그리고 지방을 위한 김치와 양념장의 신맛으로 나뉜다. 가장 큰 문제는 향신이다. 끓는 상태가 아닌 적당한 온도로 나오는 하동관식 곰탕은 잃어버린 전통을 제대로 잇고 있으나 두껍게 썬 생파를 잠재우기에는 에너지가 모자라다. 입천장을 넘어서 코를 자극하는 느낌까지 나면 지방과 단백질을 맛보기 위한 보조제로서의 역할을 넘어서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한계까지 잘게 분해하는 옥동식의 고명 방식은 일견 탁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이 방식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펄펄 끓는 싸구려 국물 속에서 한 번 풀이 죽은 채로 두둥실 떠다니는 파에게서 친절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찰나에 국물에 약간의 단맛이라도 더했을지 누가 아는가. 후추 쪽의 관성도 문제다. 언제까지 맥코믹-오뚜기로 이어지는 가난한 후추의 맛에 가두어 둘 셈인가?

밥의 경우 '공기밥' 시대 이후의 따로국밥식과 전통의 토렴 사이에서 본질에 대해 고민한다. 토렴은 분명 나은 조리법이지만 탄수화물 조리에 비해 혀에 닿는 자극이 극적이지 않다. 그토록 강조하던 이탈리아의 '만테까레'를 기억하시는가? 국밥집에서는 그 누구도 찾지 않던 탄수화물의 조리 정도에 대한 용어가 남발하는 라멘 가게는 어떤가("저는 밥을 15초만 덜 토렴해주세요"-이걸 이제 "절반토렴"으로 부르고 무언가 매니아들만의 전유물로 하면 어떤가? 마치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초짜를 보듯이 하고 블로거들은 국밥집에 갈때마다 밥의 익힘 정도 타령을 해보자). 국밥에 대해 그러한 요구가 없는 것은 결국 조리로 인해 차이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접같은 접시에 국물을 가득 채워 넣는, 양적 조리의 시대가 끝났다면 조리의 눈을 말아내는 밥으로 돌릴 법도 하다. 흔히들 접시에 남은 소스를 빵으로 닦아대지 않는가? 그를 빗대서 초밥집에서 남은 무언가를 닦으라고 밥 한 덩이를 주곤 한다. 개념적으로라도 곰탕 역시 그러한 음식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신맛의 경우 단순한 딥 방식이 아닌 양념장의 가능성이 절실하다. 가장 흔한 대안은 쌈일 것이다. 하지만 편리함을 본질적 요소로 삼는 국밥과 쌈은 상극이다. 얹어내는 방식이 가능한 새우젓은 신맛이 부재하니 쌈장과 같이 점도가 있는 소스의 가능성을 물색해볼 가치가 있다. 언제까지고 간장에 식초 타는 것으로 갈음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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