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아란다, 왜 갑자기 떠났나

하비에르 아란다는 작년 가장 기대를 걸었던 레스토랑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글머리에서 밝혔듯 나는 줄곧 이곳에 대한 의심과 우려를 거둘 수 없었는데, 결국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하비에르 아란다 서울은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이름을 바꿔버렸다. 스페인 요리를 한다는 얕은 연결고리 이외에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하비에르 아란다 본인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식 인터뷰로 나갈 주제는 아니지만, 그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납득이 가는 지점이 있었다. 그와 협의를 마치고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

하비에르 아란다 서울은 태생부터 지속가능성에 큰 의문을 보이는 레스토랑이었다. 주 직원들을 한국어가 아예 되지 않는 스페인 사람으로 채운 것도 그렇지만(이는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였다면 비교적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사실 요리의 곳곳에서 불가능함은 묻어났다. 간만에 복기를 해보자면,

(유통이 실제로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법적 문제의 소지가 있는, 그리고 해양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총알오징어나

국내에서는 아예 생산이 되지 않는 코치니요 등 하비에르 아란다의 메뉴는 전적으로 스페인에서, 스페인의 환경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흔적이 역력했다. 이외에도 기가스에서나 볼 수 있던 피키요, 주방에서 만든 것은 절대 아닌 것 같은 미냐디즈 등 단순히 주방에서의 조리를 넘어선 유통망 자체에 대한 제어를 할 수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들이 많았다. 당시 들었던 대답은 레스토랑 측에서 직접 수입, 유통까지 책임진다는 것이었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검역 등의 문제까지 감안하면 법망을 빠져나가는 편법 운영만이 방법이었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 저품질의 홍보

예산에도 균형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레스토랑의 가격이 높다면 홍보에 쓰는 비용도 커진다. 단순히 비용을 많이 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복잡한 작업이 들어간다. 온오프라인의 공간 경험이 주는 일관성과 같은 것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영역이며, 이외에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업계 유명 인사를 초청한다거나 하는 행사가 뒷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비에르 아란다 서울은 정말이지, 믿기지 않게 저렴한 방식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당시 홈페이지에는 이런 영상이 게재되어 있었는데, 위의 캡처를 보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문법적으로 아주 틀리지는 않겠지만 한국어 화자라면 절대 쓰지 않을 방식이다. 어순부터 한국인이라면 본능적으로 강조하는 미사여구인 유일한을 가장 뒤로 옮기고, 역사에서라는 이상한 표현도 다듬을 것이다. 미슐랭 스타를 우승하다라는 표현은 굳이 지적할 가치조차 없다.

덧붙이자면 애초에 1스타를 몇 년에 걸쳐 수여받았다고 해서 2스타, 3스타처럼 표현하는 방식 자체도 굉장한 문젯거리였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게 되었다.

이런 번역 문제는 운영하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도 똑같이 발견되는데, 영문 문장을 작성하고 기계로 번역한 듯한 성의없는 게시글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사진과 영문 카피는 프로가 작성한 느낌이었지만 한국어의 번역은 질이 낮아 마치 사기 사이트처럼 보였다. 할로윈 호박을 호박귀신이라고 번역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니, 한국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누가 이런 마케팅을 하자고 하겠는가?

협력업체에게 사기 수준의 계약을 당했손 치더라도 아무도 검수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렇게 아낀 돈은... 네이버와 캐치테이블 블로거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데 쓰인 듯 하다.

그래서 하비에르 아란다는?

(이하 내용은 아직 명확히 확인된 사실이 아니며, 하비에르 아란다 본인의 주장에 주로 기반하고 있다.)
하비에르 아란다와 직접 대화한 결과, 그의 퇴단은 스스로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계약 상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그와 그의 직원들은 임금을 일부 및/또는 전부 받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반입했던 주방용품 등 잔여 설비에 관해서도 양 당사자간 분쟁이 존재하고 있다.
하비에르 아란다는 본인 명의와 브랜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를 원하며, 본인을 포함한 직원들 뿐 아니라 식자재 대금 납부도 거부당해 더 이상 해당 사업자와 동업할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밝혔다.

현재 하비에르 아란다는 국내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으로, 앞으로 서울에서 그의 요리를 다시 만나는 일은 당분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빈트 청담(舊 하비에르 아란다 서울)은 DiverXO 출신의 요리사를 채용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광고하고 있으나, 주방장은 한국인으로 파악되며 스페인측 여러 소스에 문의한 결과 나는 그가 DiverXO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물론 외교적 수사를 동원한다면, 그것은 참이기는 하다. 하지만 DiverXO의 요리, 무뇨즈의 아이디어나 스킬과 이곳의 요리가 관련이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하비에르 아란다 서울에서 빈트 청담으로 변경하게 된 경위에 대해 레스토랑 측에도 문의한 바 있으나 소유주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담당 직원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유라고만 답했다.

게시글에 대한 최신 알림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