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an Ramen - 인간의 개성

Ivan Ramen - 인간의 개성

차이나타운 일대에 우르르 몰려있는 라멘 가게들의 왕은 이제는 제국이 된 0세대 모모푸쿠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맨해튼의 라멘집들은 모모푸쿠의 꿈을 꾸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일본인, 심지어 일본인에 감화된 한국인들마저도 "뉴욕의 라멘" 따위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미국의 방식이 전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뉴욕의 라멘은 분명히 서울의 라멘보다 존재의 고유함이라는 측면에 있어 긍정적이다-과는 다르다. 어느 쪽이 우월한가를 따지자는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종류라는 점을 이해하달라.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서울에는 이러한 접근 자체가 없다. 반대의 극단은 있다. 역시 미디어-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라멘 피버>-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나카무라의 본점인 아후리를 그대로 복사한 모점과 같이. 그런 것은 뉴욕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라멘 역시 미디어-주로 유튜브-에 노출되고, 그만큼 나름대로 유명세를 얻은 가게도 늘었지만 선택지는 여전히 좁다. 궁극적으로 지향점이 일본 따라잡기로 수렴하기 때문은 아닌가? 일본 유명점의 사진이나 잡지를 발견할 때마다 별로 좋은 인테리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궁극적으로 또 다른 원피스 피규어같기도 하다). 지로로 카피하냐 이에케로 카피하냐, 교카이풍이냐 맑은 청탕이냐 등등 세부적인 사연은 나뉘지만 결국 영혼은 거의 공통이다. 틀이 되는 레시피의 합리성은 오로지 '일본에서의 성공'만이 보증한다는 점.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아이반 라멘은 사실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훨씬 두껍고 튼튼하다. 크게 봐야 일본의 학원이나 관련 기업에서 제공하는 교육 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의 일본향 라멘과 달리 아이반 오르킨은 2007년 이미 도쿄에서「아이반 라멘(アイバンラーメン)」을 경영하며 그야말로 현장에 투신했던 요리사다. 하지만 뉴욕으로 돌아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아이반의 라멘은 도쿄 따라잡기를 일절 거부한다. 도쿄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그는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라멘을 만든다.

Maine Beer Company, Another One IPA
Curry flower

하지만 단순히 오리지널을 거부한다고 곧바로 그것이 창의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데, 창의적이라고 내세우면서 실상은 고객이 모르기를 바라는 조악한 레퍼런스의 모음집이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기술만 겹겹이 쌓은 분자 요리나 음식을 닮다 만 칵테일 따위가 그렇듯이. 하지만 선술집 안줏거리를 닮은 이 요리가 그러한 걱정을 완전히 씻어냈다. 영국-인도/파키스탄 쪽에서 종종 보이는 커리와 컬리플라워의 궁합을 바탕으로 가다랑어와 간장으로 안줏거리 분위기를 냈는데 큐민과 가다랑어의 향이 썩 조화롭기도 했지만 컬리플라워의 조리 상태가 썩 신경을 쓴 티가 나서 놀랐다. 기분 좋은 정도의 바삭거림으로 메인 비어의 맥주와 곁들이니 그야말로 일본 술집 같은 분위기가 되면서도 정작 요리는 다른 레퍼런스를 연상케 하니 참으로 개성이라고 부를만한 경치였다.

Tokyo Shio

오소독스한 방법으로 만든 차슈, 적당한 선에서 머무르는 옛 분위기의 스프에 특유의 그을린 토마토로 완성한 도쿄 시오는 도쿄 영업 시절 완성한 시오라멘을 여전히 계승하고 있었는데, <셰프스 테이블>에서 소개된 아이반을 떠올리게 하는 메뉴 이상의 감흥은 없지만 흠 없는 한 끼 식사로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Triple Pork Triple Garlic

도쿄 시오를 비롯한 <도쿄> 라멘이 도쿄 시절을 상징한다면 뉴욕 매장의 시그니처는 마제멘이라고 할 수 있는데-나뿐 아니라 켄지-로페즈 알트도 동일한 의견을 표한 바 있다-, 마제라는 형식만을 빌렸을 뿐 대만이나 일본 어느 쪽에도 레퍼런스를 두고 있지 않고, 굳이 따지자면 구마모토식 돈코츠에서 영감을 얻은 흔적이 보이지만 완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녹여낸다. 바디가 되는 돼지고기는 삼겹살이지만 먹다보면 삼겹살이 아닌 베이컨 향이 차슈와 뒤섞여 훨씬 강렬한 염도를 느끼게 되며, 진득한 소스에 가깝게 졸여낸 스프의 지방이 이러한 맛을 지탱한다. "감히 한국인 앞에서 마늘맛을?"이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돼지의 강렬한 맛에 부딪히고 나면 약간의 마늘도 기대 이상으로 반가워지는 식으로 해결을 본다. 매니아틱한 라멘이 추구하는 극단성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한 모습이다.

일본에서 왔다는 화제성부터 셰프스 테이블 출연까지 여러 번 큰 주목을 받았던 아이반 라멘이지만 요리에서 빛나는 지점은 유명세를 설득하기 위한 가식적인 창의성이나 무의미한 옛 흔적보다도 나름의 합리성을 추구하며 요리를 한다는 지점이었다. 유지방을 바탕으로 만든 소스와 파스타를 떠올리게 하는 마제, 일본의 중국요리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스타터 요리 등이 특히 빛난다. "일본의 라멘"이 라멘의 절대 기준이라면 아이반 라멘은 1차 예선에서 탈락할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아이반 라멘은 그러한 기준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난다.

  • 팔자가 좋은 동네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이반 라멘의 맥주 리스트는 매우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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