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의 자리를 허하라

케이크의 자리가 없다. 어디에? 바로 디저트 주방에 말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뭇 레스토랑들을 둘러보면 케이크라 부를만한 디저트를 내는 곳을 찾기 어렵다. 전수조사한 것이 아니고 메뉴는 바뀌기 마련이니 있기야 있겠지. 하지만 평가가 높아져도 디저트의 자리는 대부분 간소하며, 대개 무언가를 두른 아이스크림이거나, 간단한 제과와 아이스크림이거나,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이 죄는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아이스크림만 하고 있는 상황은 끔찍하며, 그 아이스크림 자체의 수준이 높지 않을 때에는 더욱 괴롭다.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는(나는 이 용어를 싫어한다!) 국내 유수의 주방에서도 디저트 제작을 위한 설비는 열악하다. 설비의 단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의 수준이 달라지는 아이스크림 제작에 있어 그럴싸한 설비를 갖추고 있는 곳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일이 있는 일부 호텔이 아니면 없다고 보아야 할 수준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아이스크림이 지배하는 후식의 세계는 지루하기 그지없다.

물론 으레 따라붙을 항변사항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 인력, 숙련된 제과 인력이 적고, 굳이 이런 레스토랑에 들어올 유인도 없다. 글씨 쓰는 법, 색소 쓰는 법이나 배워서 불행한 맛의 레터링 케이크나 만드는 것이 더 생계가 되는 제과 시장이다. 더구나 한식 기반의 주방이라면 한국식 과자에 요구되는 능력이 기회가 아니라 위기처럼 다가온다. 약과를 비롯한 일부 히트 작품에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의 대부분 소비자는 한과에 대해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요구하지 않고, 그 비용을 치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주방의 고위 책임자가 제과에 대해 깊은 이해도나 높은 창의성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미쉐린 가이드를 간단히 살펴보아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밍글스***의 디저트가 고정되어 있으며, 정식당** 역시 돌하르방이 10년 넘는 세월을 지키고 있다. 정식당이야 Jungsik***의 이은지 파티셰가 남긴 유산(뉴욕-서울만 해도 그렇다)이 있지만 다른 곳들은 녹록지 않다.

그 결과 짠 요리에 사용되는 특이한 재료로 단순함을 극복하려는 디저트가 서울의 후식을 지배하고 있다. 에빗**의 미역을 넣은 디저트가 이런 부류 중 거의 유일하게 케이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속한다. 대부분은 결국 튀일이나 그레인을 곁들인 아이스크림, 셔벗, 소르베, 그라니타, 단단하지 못한 또다른 무언가. 아이스크림의 무덤 속에서 플레이팅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만 구조, 질감, 조화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양 제과의 전통이 없다? 도시의 상징이 빵과 과자라고 할 수 있는 100만+의 도시가 있는 대한민국이다. 나아가 없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이 이른바 파인 다이닝 아닌가. 평범함에 도전하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요 존재 이유다. 언제부터 예술이 현상에 굴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는가? 반죽과 크림의 교차가, 크림과 크림이 이어지며 형성되는 맛의 레이어와 서사가 있는 디저트의 시대를 허하라. 아몬드가루, 크림, 초콜릿 가나슈, 오븐의 빈 자리를 허하라. 언제까지 열악한 질감의 아이스크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통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훌륭한 요리사만큼이나 훌륭한 제과사가 자라는 요람이 되어야 한다. W50B가 선정한 최고의 파티셰 니나 메타예, 고미요 프랑스판이 선정한 올해의 파티셰 세바스티앙 나발리에는 모두 알레노의 제국에서 솜씨를 익혔다(후자는 아직도 근무 중). 서울에도 서울의 스타 레스토랑에서 제과의 솜씨를 익혀 자신의 세계를 펼치는 파티셰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은 사라져만 갔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스타 레스토랑의 디저트, 누가 만드는가? 이전에 있던 이들은 아직 그곳에 있는가? 떠나서는 어디로 가는가? 디저트를 계속 하고 있기는 한가? 그곳에서의 경험을 살릴 기회가 주어지고 있나? 내게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 도시의 디저트에서는 그들이 일으켰던 열정이, 그들이 겪었던 시련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텔 출신'이라는, 냉혹함과 무미건조함의 연속을 상징하는 수식어만이 도심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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