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페셰 미뇽 - 바바 오 럼

르 페셰 미뇽 - 바바 오 럼

L'Express, Fou de Pâtisserie 등의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는 디저트 평론가 Gilbert Pytel가 바바를 두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시대정신Zeitgeist의 희생자, 구닥다리로 여겨지는 디저트. 오늘날 각종 신선한 재료들의 섬세함, 기술자들의 빼어남을 선보이는 현대 제과의 주방에서 과거의 탐욕적인 제과, 바바 오 럼의 자리는 드물다.

냉동, 냉장기술의 보급으로 알코올을 이용한 보존의 의존도도 극적으로 줄었으니, 럼 없이도 살기 무리가 없으며, 앙투안 카렘의 교재들에 등장하는 건축물같이 생긴 제과들은 이제는 제과학원의 교습과 자격증 시험에서만 부분적으로 등장할 뿐, 바바는 꽤 오랜 세월동안 미식 세계의 바깥에 머물렀다. 2011년 시릴 리냑 선생님께서 바바를 자신의 대표 메뉴로 만들어 내놓았을 때만 해도, 기라성같은 유명 셰프들은 바바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식"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은 셈이다. 그 전후로 하여 관련된 취재 등도 자연히 찾아보기 어렵다.

전형적인 바바는 푹신함 일색의 단조로운 질감과 럼 소스가 지배하는, 옛스러운 풍미를 지녔다. 과거 글에서 언급했듯이, 알코올은 현대적 냉장 기술의 도입 이전까지 제과 주방에서 널리 쓰였지만, 오늘날은 미성년자들도 제과를 시작하면서 그 맛을 몰라도 좋을 만큼 그 비중이 작다. 특히나 플랜테이션의 역사가 없는 한국에서는 오래도록 일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정체불명의 Legoll이나 먹을게 못되는 럼 네그리타, 그나마도 다행이지 옛날에는 캪틴큐같은 가짜 럼을 써왔으며, 지금도 럼을 섞은 싸구려 리큐르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이렇게 제과 주방에서 럼이라는 술이 받는 대접이 박한 만큼, 그 럼 풍미를 앞세우는 바바 오 럼이라는 요리는 그야말로 기피 대상이었다. 색상이 화려하기를 한가, 지방-알코올-당이라는 전형적인 재료들이 아닌 과실이나 향신료 등의 재료들을 부각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를 하나?

그러나 시릴 리냑은 바바의 기술적 복잡성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제과이지만 브리오슈 유사의 빵을 본체로 하여 반죽과 발효, 굽기와 휴지같은 제빵 기술들을, 그것도 특수한 용도-적시기-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섬세함을 지녀야 하며 이에 더해 오늘날에는 특별히 행할 일이 없는 적시기tremper까지 이해하고 있어야 하므로, 주방의 기술이 노골적으로 노출되는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바바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바바는 이내 제과의 주방의 화두로 떠올랐다.

프랑스에서 흥행중인 <탑 셰프>에서도 종종 이를 응용한 요리들이 몇 차례 등장했으며, 시릴 리냑 이후 여러 셰프들은 앞다투어 구겔호프 몰드를 창작의 무대로 삼았다. 바바는 더 이상 전형적인 바바가 아니어서, 바바라는 틀을 적어도 여러모로 변용하며 서로를 자극하고 있다. 이를테면 콩티시니는 크림의 위치를 바꾸면서, 크림의 질감을 두 종류로 늘려 마치 샌드위치를 연상케 하는 가락을 만들었다. 그래서 모양도 햄버거 모양으로 빚어 "바바 버거"다. 세드릭 그롤레(출판사 표기를 따름)가 껍질 속에는 샹티 크림을 가득 채워낸 트롱프뢰유trompe-l'œil 바바와 같은 것을 만들게 된 것은 필연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피에르 에르메가 주창한 제과의 反포르노그래피 정신에 따라 퇴출시켰던 탐욕의 과자가 그 새로운 정신이 깃든 채로 다시 탄생했다. 제과의 지속 가능한 일상화, 대량 생산 제과들이 지워버린 과자들의 매력에 대한 도전. 산처럼 쌓인 크림과 커다란 덩치로 대표되는, 과식과 탐식으로 대표되는 죄악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면서도, 먹는 순간 비로소 삶과 사람이 보이는 요리로서의 바바.

이러한 현대적 바바의 경향에 있어서, 주제의 설정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럼, 아니면 추가 재료다.
첫째로 럼을 주제로 한 바바의 경우, 이미 알랭 뒤카스가 파인 다이닝 단계에서의 바바 오 럼이라는 길을 제시한 이후에도 제과 주방에서 럼은 갈길을 잃어 감히 그를 따르는 사람이 없었지만(오히려 그걸 보고 있던 바바를 메뉴에서 없애버린 셰프도 있었다. 르 베르나르댕의 에릭 리퍼트.) 포스퀘어 증류소의 리처드 실이 주창한 새로운 럼의 시대가 열리며 프랑스도 그의 영향을 짙게 받아 자신들의 자산인 마르티니크 럼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이제는 럼이 단지 적신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닌 풍미의 주인공으로 우뚝섰다. 럼 아그리꼴 이외에도 이미 론 자카파와 같은 타국적의 럼(대표적으로 피에르 가니에르와 리츠 호텔), 럼을 벗어나 테킬라까지도 맛의 주인공 자리에 들어서며, 증류주 본연의 풍미를 살리는 독특한 제과로서 현대에 또다른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둘째로는 과일이나 칵테일 등, 풍미를 더하여 바바를 하나의 무대로 삼는 방식이다. 본 블로그에서 이미 여러번 다뤘다. 알코올이나 단맛에 맞서는 신맛에 더해 과실 풍미 등을 더한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형식의 개량이지만, 의외로 슈토레르가 궁정에 납품하던 시절에도 계절에 따라 과일을 곁들여 냈다는 흔적도 보인다. 그만큼 오래동안 검증을 거쳤고 실패하기 어려운 가운데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국내에서는 세드라의 바바가 이런 카테고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도다.

이러한 경향성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프랑스 제과를 실패로 단정할 생각은 없다. 이는 참고하기에 적당한 이야기들일 뿐이다. 오히려 지나친 맥락 의존적 태도가 좋은 요리를 밝히는데 안개를 드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읽히지 않음을 넘어서, 고전의 기준에서마저 실패를 감지한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음료를 동시에 주문하면서 카드로 결제하기에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KRW 9000을 넘는 어마어마한 바바였다. 눈에 띄는 것은 통상적인 샹티 크림에 비해 한참 점성이 낮아보이는 놀라운 크림과, 모양을 예쁘게 빚은 반죽이다. 시각적으로는 전형적인 바바의 성공 요소들이 감지되지 않는다. 브리오슈의 기공이 넉넉하게 형성될수록 고루고루 젖는데, 그 정도가 점잖다. 바닐라 빈과 유지방이 풍성해야 강한 단맛과 짝을 이루는데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적 기호들은 반전 없이 맛에서 이어졌다. 촘촘한 바바는 속까지 완전히 젖기는 했으되, 부드럽게 가락을 잇지 못하고 속이 부슬부슬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젖어있으면서도 물렁한spongieuse 감촉의 기준에서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크림이 입안에서 구르며 단맛과 럼의 맛을 보좌하기에도 역부족인 가운데, 전체적인 균형이 흐뜨러지지는 않는다. 반죽을 적시고 있는 액체의 풍미 또한 희미하기 때문.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과자를 이렇게 높은 가격에 먹게 될 일인가. 대체 이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서울은 프랑스가 아니고 프랑스 제과는 한국인에게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방황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단지 신기하고 잘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방치할 것인가? 나는 제과사가 혁명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게 아니다. 그저 제과라는 인간 행위가 주는 인간적인 행복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기왕에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주방에서 지내며 열심히 만든다. 나는 식사에 필적하는 비용을 지불한다. 세드릭 그롤레를 제외하면 감히 욕먹을까봐 내걸지 못할 가격을 갖췄다. 올 때마다 팬덤의 견고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 이제 음식만 맛있으면 되는데, 그게 비어있다면. 바닐라의 품질이니 제대로 된 럼주니 프랑스의 기준을 들이밀지 않는다. 바카디 오로를 쓴다고 해도 납득하고도 남을 것이며, 심지어는 네그리타를 그대로 써도 좋다. 바닐라? 어느 세월에 깎겠나, 잘 만든 익스트랙 쓰자. 다만 평범한 재료들을 뭉치고 빚어 구워내는게 바로 주방 아닌가. 나는 그것만큼은 양보하지 못하겠다.

이 바바까지 블로그에서 바바를 다섯 번은 다루었는데, 감히 "바바는 이래야 한다"라는 Maxime을 만들고자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그러한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까, 희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고 처음 먹어본 리뷰, 그리고 단지 많이 먹어본 리뷰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특히나 점수는 섬세하게 소수점 단위로 채점하면서 그 평가의 기준에 대해서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과자와 빵의 세계에서는 더욱이 마음이 급해진다. 이 바바는 그런 나에게 채찍질을 하는 듯 했다.


본 블로그에서 바바를 다룬 게시글들의 모음입니다.